설날 노동에 지친 아내를 달래려면?

2016년 02월 09일 07:00

※ 편집자주: 설날 연휴입니다. 무려 5일입니다. 즐겁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명절이 즐겁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명절 가사 노동으로 고생할 분, ‘결혼 언제?’ ‘취업은?’ 등 애정(?) 어린 한 마디에 상처 받을 분에게 설날 인사하기 꺼려집니다. 명절에 가족들과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을까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에게 지혜롭게 갈등을 풀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가정 내 성적 분업의 역사는 아주 깁니다. 원시 사회에서 남성은 주로 수렵과 방어를, 그리고 여성은 주로 채집과 육아를 담당했다는 오래된 주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설 명절 때, 아내가 부엌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대신 남편은 나가서 꿩을 사냥해오면 됩니다. (네. 당연히 진심이 아닙니다.)

 

사실 많은 원시 부족의 성적 분업 수준은 아주 다양합니다. 상당수의 원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심지어 육아에 대해서도, 남성이 거의 여성만큼 개입하는 부족도 있습니다.

 

 

인류학자 스코트 콜트레인에 의하면, 아카족 남성은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달래는 모든 일을 잘 해내는데, 심지어 우는 아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기까지 합니다(물론 젖은 안 나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부부간의 양육권 분쟁이 일어나면 엄마 쪽이 거의 승리하지만, 아카족의 경우라면 막상막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은 집안일을 하고, 남성은 바깥일을 한다는 식의 전통은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산업화 사회 이전에는, 사실상 집안일과 바깥일의 구분이 불명확 했습니다.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패며 농사지어 수확한 곡식으로 밥을 지어 먹는 일련의 과정에서, 과연 바깥일과 집안일의 경계가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장작과 땔감이 석탄으로 대치되고, 직접 손으로 경작하거나 옷감을 짜던 일들이 기계화된 농업이나 방직업으로 옮겨지면서, 집안일은 여성의 몫으로 오롯이 남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은 탄광이나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유교적 전통이나 기독교적 가치관 등이,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원더박스”의 작가 로먼 크루즈나릭에 의하면, ‘19세기 프랑스 농가에서 여자는 식탁에 앉은 남편의 시중만 들 뿐, (중략) 서서 식사를 하거나 벽난로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라고 합니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하지만 5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고 양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역할 분담에 대한 문화적 태도도 상당히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전체적으로는 여성이 집안일을 훨씬 더 많이 하지만, ‘모름지기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지!’라는 수준의 인식은 차차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아무튼 설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명절 때는 설음식 준비 등, 해야 할 집안일은 아주 많아집니다. 하지만 명절의 복잡한 상황은 단지 일감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첨예한 문화적, 정치적 긴장이 주원인입니다.

 

 

우선 전통적인 성적 역할에 익숙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갓 쓰고 도포 입던 때가 불과 100년 전입니다. 게다가 동서 간에서 서로 지지 않겠다는 경쟁이 벌어집니다.

 

 

‘아내의 일을 돕고는 싶지만, 제일 먼저 나서고 싶지는 않아’와 같은 일종의 치킨게임 입니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시누이(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동지애를 찾기 어렵습니다)가 가지는 정치적 무게까지 고려하면, 여성의 한숨은 깊어집니다.

 

 

저는 집안일이나 명절 준비는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물론 입장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ㅠㅠ).

 

 

하지만 지난 80년간 할아버지께서 지켜온 완고한 가부장적 세계가 와해되는 것을, 굳이 설날 아침 차례상 앞에서 목격하시도록 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이때야말로 남편의 슬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내의 명절 준비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남편은 평소의 집안일을 통해서 두 배, 세 배 보상해 주겠다는 굳은 밀약을 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 내키지 않으신다고요? 그렇다면 그 대신에 떡국에 넣을 꿩이라도 사냥해오시면 되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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