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272] 보톡스 맞으면 뇌도 마비된다

2016년 05월 16일 18:12

‘어떤 물질이 독이 되느냐 약이 되느냐는 용량의 문제’라는 유명한 약리학의 명제가 있다. 독 가운데 가장 강력한 독이라는 보툴리움톡신(botulial neurotoxin)도 예외는 아니다. 보툴리움톡신은 1kg당 3나노그램꼴의 용량(몸무게 50kg인 경우 150나노그램)으로도 복용한 사람의 절반이 죽는다고 한다. 즉 70억 지구촌 사람들이 보툴리움톡신 1kg를 몸무게에 비례해 골고루 나눠먹는다면 35억 명이 죽는다는 말이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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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마어마한 맹독임에도 요즘 보툴리움톡신은 많은 사람들(대다수는 여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얼굴의 주름을 펴준다는 보톡스가 바로 보툴리움톡신으로 만든 약물로, 물론 피코그램 수준(피코는 10의 -12승)으로 용량을 낮춘 상태다. (보톡스(Botox)는 성형수술용 보툴리움톡신 주사제의 제품명이지만 스카치테이프처럼 일반명사화돼 쓰이고 있다.)


지난 주 한 신문에는 최근 미국의 성형산업이 뜨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가 성형 수효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난해 성형수술건수는 전해에 비해 23%나 늘어난 1590만 건에 이르렀다. 유형별로 보니 보톡스 주사가 680만 건으로 단연 1위다. 아무래도 비용이 덜 들고 수술이 간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맹독을 주름을 펴는 주사제로 쓸 생각을 하게 됐을까.

 


● 200년 전 증상 처음 보고


보툴리움톡신은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소로 1820년 독일의 의사 저스티누스 케르너가 소시지를 먹고 탈이 난 사람들의 임상사례를 자세히 보고하면서 처음 존재가 감지됐다. 당시 케르너는 환자들의 증상이 운동신경계가 마비된 결과라는 걸 파악했고, 독소의 실체는 몰랐지만 신경계의 과도한 흥분으로 인한 질병을 고치는데 쓰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선견지명이다.


1897년 독일의 세균학자인 에밀 반 에르멘겜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넘(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세균이 이 독소를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보툴리움톡신은 1928년에야 실체가 밝혀졌는데 꽤 덩치가 큰 단백질로 효소활성을 띠고 있었다.

 

즉 클로스트리디움에 오염된 식품을 먹을 경우 보툴리움톡신이 소장에서 혈관을 타고 들어가 근육의 신경계 말단에 침투해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방출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파괴한다. 그 결과 신경신호가 전달되지 않아 근육이 마비된다. 섭취량이 어느 선을 넘어 심장이나 호흡기 근육이 멈추면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보툴리움톡신이 약물로 적용된 건 1970년대로 미국의 안과의사들이 사시를 치료하기 위해 도입했다. 사시는 안구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근육들이 제대로 조율이 안 돼 생기는 질환인데, 안구를 지나치게 당기는 근육에 보툴리움톡신을 주입하자 근육의 밸런스가 돌아와 증상이 완화했다. 그 뒤 다양한 근육계 이상 질환에 보툴리움톡신이 적용됐다.


이 가운데 하나가 안검경련이라는 질병으로, 눈 주위 근육(눈둘레근)의 과도한 활동으로 눈꺼풀이 자꾸 닫혀 심할 경우 (눈은 멀쩡함에도) 반 실명상태가 된다. 1990년대 초 의사들은 근육의 활동을 줄이기 위해 보툴리움톡신을 주사했는데 많은 환자에서 눈가 잔주름이 없어지는 ‘부작용’을 발견했다.

 

그 뒤 보툴리움톡신이 눈둘레근이나 추미근(미간의 세로주름에 관여) 등 표정근육의 주름을 펴준다는 보고가 이어지면서 2002년 ‘보톡스’ 주사가 미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성형수술을 대표하며 널리 쓰이는 보톡스 주사도 알고 보면 그 역사가 십여 년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보톡스 역스 알레르기반응을 비롯해 다양한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고, 특히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시술해 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얼굴표정을 보고 ‘슬픔’과 ‘행복함’ 가운데 감정상태를 선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테스트다. 맨 왼쪽이나 맨 오른쪽의 경우 보톡스 수술 여부가 영향을 주지 않지만 그 사이 두 사진의 경우 보톡스를 맞고 난 뒤 결정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즉 얼굴표정에서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 톡시콘 제공
얼굴표정을 보고 ‘슬픔’과 ‘행복함’ 가운데 감정상태를 선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테스트다. 맨 왼쪽이나 맨 오른쪽의 경우 보톡스 수술 여부가 영향을 주지 않지만 그 사이 두 사진의 경우 보톡스를 맞고 난 뒤 결정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즉 얼굴표정에서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 톡시콘 제공

● 표정에 담긴 미묘한 감정 파악하는 능력 떨어져


독성학분야 학술지인 ‘톡시콘(Toxicon)’ 최근호에는 보톡스에 관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의 가능성을 제기한 논문이 실렸다. 이탈리아 고등연구국제대학(SISSA) 연구자들은 보톡스 주사를 맞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타인의 말이나 얼굴표정에서 감정을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미간과 눈가 근육에 보톡스 주사를 맞기로 한 여성 11명을 대상으로 수술 전후에 인지심리테스트를 했다. 즉 슬픔 또는 행복에 관련된 문장이나 얼굴표정을 보여준 뒤 이를 평가하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모니터에서 “당신 친구가 불치의 병 진단을 받았다”는 문구를 읽고 난 뒤 그 아래 가로 막대에서 자신의 감정상태에 해당하는 위치를 클릭한다. 막대 왼쪽 끝은 ‘아주 슬픔’, 오른쪽 끝은 ‘아주 행복함’이라고 표시돼 있다. 한편 얼굴표정의 경우 화면에 뜨는 남성 얼굴을 보고 역시 마찬가지로 막대에 감정상태를 체크한다.


테스트 결과 동일인임에도 수술을 전후해 평가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즉 “당신 친구가 불치의 병 진단을 받았다”나 명백히 슬프거나 행복한 표정의 경우는 보톡스 주사가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당신은 자신이 친구의 기분을 낫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약간 슬픈’ 문장이나 감정이 약간 실린 표정을 접했을 때는 보톡스 주사를 맞고 2주 뒤 실시한 테스트에서 이에 대한 감정상태를 훨씬 약하게 평가했다. 즉 막대에 표시한 지점이 중앙(중성 감정)에 더 가까워졌다.


다음으로 얼굴을 보고 ‘슬픔’과 ‘행복함’ 가운데 감정 상태를 선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테스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즉 명백하게 슬프거나 행복한 표정에서는 보톡스 수술 여부가 선택에 걸리는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약간 슬프거나 약간 행복한 표정에서는 수술 뒤가 선택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즉 보톡스 주사를 맞으면 타인의 말이나 표정에 실린 미묘한 감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톡스를 맞아 얼굴 근육이 약간 마비되는 게(그 결과 주름이 펴진다) 왜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을 손상시키는 부작용을 낳은 것일까.

 

펜을 입술로 물고 있으면 이로 물로 있을 때보다 코믹한 카툰이 덜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연구결과는 체화된 인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입술로 물고 있을 경우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감정을 피드백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사이언스 제공
펜을 입술로 물고 있으면 이로 물로 있을 때보다 코믹한 카툰이 덜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연구결과는 체화된 인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입술로 물고 있을 경우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감정을 피드백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심리현상으로 이 결과를 설명했다. 체화된 인지란 우리 몸의 감각 또는 행동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즉 슬픈 얼굴을 보면 우리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띠게 되면서 상대가 슬프다는 사실을 보다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얼굴의 표정근육이 작동해 피드백을 해줘야 우리는 상대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좀 엉터리 같은데...’ 체화된 인지 이론을 처음 접하면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뜻밖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 그룹은 펜을 입술로 고정하게 하고(약간 화난 표정이 된다) 다른 그룹은 이로 물게 한 뒤(웃는 표정이 된다) 같은 카툰을 보게 한 뒤 평가하게 하면 펜을 이로 문 그룹이 더 재미있다고 평가한다. 펜을 입술로 고정한 그룹은 재미있는 내용을 봐도 웃음을 지을 수 없게 근육이 배치돼 있기 때문에 표정근육에서 피드백이 오지 않아 뇌가 덜 재미있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보톡스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즉 눈살을 찌푸리는데 관여하는 근육(추미근과 비조근)이나 웃음을 짓는데 관여하는 근육(눈둘레근)에 보톡스 주사를 맞을 경우 슬픔이나 행복감에 관련된 자극을 접했을 때 표정근육이 제대로 피드백을 못하게 된다.

 

이 경우 감정 상태가 명백한 자극일 경우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미묘할 경우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되는 건 미묘한 말이나 표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경우”라며 보톡스 주사의 인지심리학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표정에 관여하는 근육들. 추미근(corrugator supercilii)은 부정적인 감정일 때 찌푸린 표정을 띠게 하고 눈둘레근(orbicularis oculi pars)과 큰광대근(zygomaticus major)는 웃음을 지을 때 작용한다. 올림근(levator labii alesque nasil)은 혐오감을 나타낼 때 쓰인다. - 사이언스 제공
표정에 관여하는 근육들. 추미근(corrugator supercilii)은 부정적인 감정일 때 찌푸린 표정을 띠게 하고 눈둘레근(orbicularis oculi pars)과 큰광대근(zygomaticus major)는 웃음을 지을 때 작용한다. 올림근(levator labii alesque nasil)은 혐오감을 나타낼 때 쓰인다. - 사이언스 제공

독일의 정신과 의사 미하엘 빈터호프는 최근 번역된 책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의 2장 ‘이미지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이미지를 우선시할 경우, 오직 자신의 주위만 맴돌 위험이 크다”며 오늘날 “이미지를 최상의 가치로 만든 사회가 나르시시스트를 길러낸다”고 진단하고 있다. 보톡스 역시 나르시시스트 양산에 한 몫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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