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충류를 위한 커튼콜

2016년 08월 03일 10:00

파충류는 지난 3억1000만 년 동안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지구 곳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 긴 역사가 우리의 부주의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밀렵 때문에 수많은 파충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정부와 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종류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수가 삶의 터전을 잃고 있으며 수많은 종이 암거래되고 있다

 

인도의 가비알은 물고기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악어다. 수컷은 최대 몸길이가 6m까지 자라며 몸무게는 160kg까지 나간다. 간혹 뱃속에서 귀금속이 발견돼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실수로 흘린 귀금속을 삼켰을 가능성이 높다. - public domain 제공
인도의 가비알은 물고기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악어다. 수컷은 최대 몸길이가 6m까지 자라며 몸무게는 160kg까지 나간다. 간혹 뱃속에서 귀금속이 발견돼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실수로 흘린 귀금속을 삼켰을 가능성이 높다. - public domain 제공

필리핀 제도의 서쪽에 위치한 팔라완섬에는 작은 필리핀숲거북이 살고 있다. 이들의 등딱지 길이는 20cm 정도 되며 물과 뭍을 자주 오가는 반수생 민물거북이다. 필리핀숲거북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이들의 표본은 1920년 미국 캔자스대의 양서파충류학자 에드워드 테일러가 처음 채집해 학계에 보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표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돼버렸다. 그 후 거의 100년 동안 야생에서 이 거북을 본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필리핀숲거북이 멸종해버린 게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데 2001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팔라완섬에서 필리핀숲거북의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새로 발견된 야생 거북은 겨우 2300여 마리. 필리핀숲거북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멸종 위험이 아주 높은 종’으로 등록됐다. ‘멸종될 위기에 이른 종’으로 등록돼 있는 중국의 자이언트판다보다 더 희귀한 종이다.

 


거북이 병장 구하기


2015년 6월, 미국의 거북생존연합회(TSA)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필리핀의 한 창고에서 3800여 마리의 필리핀숲거북이 발견됐다는 신고였다. 거북생존연합회의 환경활동가들과 수의사, 그리고 거북학자들이 필리핀으로 총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경악했다. 물이 있는 넓은 공간에 살아야 할 필리핀숲거북이 비좁은 창고 안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거북들은 모두 야생에서 채집된 개체들이었다. 이 비좁은 창고 안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필리핀숲거북의 거의 전체가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구조된 필리핀숲거북 중 3000여 마리는 야생으로 돌려보내졌다. 하지만 나머지 800여 마리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필리핀에 있는 거북보호센터에 입원해야 했다. 비좁은 공간 안에 다른 거북들과 뒤엉켜 있다 보니 껍질이 부서지고 피부가 상해버린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물과 먹이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탈수증상을 보이는 거북도 많았다.


거북생존연합회의 대표 릭 허드슨에 따르면, 창고 안의 필리핀숲거북들은 중국으로 밀반출돼 식재료로 쓰일 예정이었다. 이처럼 식재료로 취급돼 중국으로 넘어가는 동남아시아의 거북은 필리핀숲거북 외에도 수십 종류가 있다.


비록 필리핀숲거북들을 멸종시킬 뻔한 것은 중국의 밀렵꾼들이었지만, 이런 밀렵꾼들이 필리핀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 거북의 숫자는 적었다. 팔라완섬 주민들이 믿는 미신 때문이었다. 창고에서 구출된 필리핀숲거북 중에는 껍질 가장자리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팔라완섬의 주민들이 거북을 잡아다가 집 주변에 밧줄로 묶어두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주민들은 집 주변에 필리핀숲거북을 묶어두면 복이 온다고 오래 전부터 믿어왔다.

 

몸길이가 약 4m까지 자라는 버마비단구렁이는 반려동물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 때문에 관리가 힘들어서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유기된 버마비단구렁이들이 야생에 적응해버리는 바람에 ‘외래 침략종’으로 지정됐다. - Dolovis(W) 제공
몸길이가 약 4m까지 자라는 버마비단구렁이는 반려동물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 때문에 관리가 힘들어서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유기된 버마비단구렁이들이 야생에 적응해버리는 바람에 ‘외래 침략종’으로 지정됐다. - Dolovis(W) 제공

죽어서 가죽 백을 남긴다


올해 1월 중국에서는 16명이 뱀 가죽을 밀수하다가 적발됐다. 이들이 몰래 들여온 뱀 가죽은 약 7만 점. 우리나라 돈 약 55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게다가 이들이 가져온 가죽은 IUCN이 ‘취약종’으로 등록한 버마비단구렁이(위 사진)의 것이었다.


버마비단구렁이는 몸길이가 약 4m정도 자라는 거대한 뱀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무늬와 순한 성격 탓에 반려동물로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런 특징 때문에 이 뱀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표적이 됐다. 특히 가죽은 신발이나 핸드백 재료로 인기가 많다.


비단구렁이의 가죽이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유럽과 미국. 해마다 50만 점의 비단구렁이 가죽이 이 두 곳으로 향한다. 대부분 농장에서 키운 버마비단구렁이의 것이다. 하지만 워낙 많다 보니 그 수가 모자라다. 그래서 야생에서 몰래 채집돼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버마비단구렁이도 많다. 중국에서 이번에 적발된 7만여 점 중에도 야생개체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고퍼육지거북은 초식동물이다. 300여 종의 식물을 먹는다. 이들은 땅굴을 파기로 유명하다. 학계에 보고된 고퍼육지거북의 땅굴 중에는 길이 약 15m, 깊이 3m나 되는 땅굴도 있다. - www.birdphoto.com 제공
미국의 고퍼육지거북은 초식동물이다. 300여 종의 식물을 먹는다. 이들은 땅굴을 파기로 유명하다. 학계에 보고된 고퍼육지거북의 땅굴 중에는 길이 약 15m, 깊이 3m나 되는 땅굴도 있다. - www.birdphoto.com 제공

땅과 미래를 빼앗기다


미국의 고퍼육지거북은 등딱지 길이가 약 30cm 되는 중간 크기의 거북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육지거북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동남부 지역의 핵심종, 그러니까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이다.


고퍼육지거북이 사는 서식지는 덥고 메마른 황무지로, 햇빛을 피할 만한 그늘이 거의 없다. 고퍼육지거북은 튼튼한 앞다리로 땅굴을 파서 몸을 숨긴다. 재미있게도 이 거북과 같은 지역에 사는 동물 대다수는 땅굴을 팔 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 육지거북의 땅굴을 애용한다.


고퍼육지거북은 손님을 거부하지 않는다. 게다가 예비용으로 크고 깊은 땅굴을 여러 개 만들기 때문에 자리는 항상 넉넉하다. 이 육지거북의 땅굴을 애용하는 동물은 지금까지 알려진 종류만 해도 360여 종이며, 이중에는 방울뱀과 쥐, 그리고 아르마딜로도 있다. 그러니까 고퍼육지거북의 땅굴은 찜통 같은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그런데 요즘은 고퍼육지거북의 땅속 호텔을 사용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거북이 살던 지역에 건물과 농장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의 환경 전문 변호사 블레이크 허드슨에 따르면, 고퍼육지거북의 서식지가 줄면서 19세기 이후 개체수가 약 80% 감소했다. 이들의 땅굴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동물 360여 종까지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이다.


서식지 파괴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거대한 포식동물인 악어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가비알은 댐 건설로 서식지가 파괴돼, 1940년대까지 약 5000~1만 마리에 이르렀던 개체수가 2006년에는 235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현재는 인도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가비알의 수를 늘리려 애쓰고 있다. 야생에서 채집한 알을 곧바로 동물원의 인공배양기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아기 가비알은 동물원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다.

 

찰스다윈연구소에서 쉬고 있는 ‘외로운 조지’. 2012년에 숨을 거둬 이 거북이 속한 핀타섬육지거북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 putneymark(W) 제공
찰스다윈연구소에서 쉬고 있는 ‘외로운 조지’. 2012년에 숨을 거둬 이 거북이 속한 핀타섬육지거북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 putneymark(W) 제공

외로운 조지의 작별 인사


2012년 6월 24일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핀타섬육지거북의 마지막 개체가 찰스다윈연구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이름은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파충류였던 이 거북은 하루아침에 ‘멸종된 종’이 됐다.


핀타섬육지거북은 몸무게가 100kg정도 나가는 거대한 거북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핀타섬에서만 살았다. 이 거대한 거북은 약 140년 전인 1877년,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양서파충류학자 앨버트 귄터가 처음 학계에 보고했다. 하지만 핀타섬육지거북의 존재는 이미 17세기 때부터 서양 뱃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바다를 떠도는 배에서 유용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핀타섬육지거북은 물과 먹이를 섭취하지 않고도 1년을 견딜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배에 육지거북을 여러 마리 싣고는 바다 위에서 이들을 도축했다. 과학자들은 핀타섬육지거북을 포함해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육지거북 약 20만 마리가 20세기 이전에 도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북들을 직접적으로 멸종으로 몰아간 존재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아니었다. 염소였다.


염소는 거북보다 인기가 좋은 식량이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핀타섬에 염소를 방목했고 섬에 다시 들를 때마다 이들을 다시 실었다. 그런데 섬에 방목된 염소들은 핀타섬육지거북들이 즐겨 먹는 키 작은 식물들을 모조리 뜯어먹었다. 항상 초록으로 물들여있던 섬은 갈수록 황폐해졌다. 먹을 것이 모자라다 보니 거북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수컷 한 마리만 남았다. 그게 바로 외로운 조지였다.


2014년까지 공식적으로 보고된 파충류의 종류는 1만 38종. 이중 약 30%가 우리 인류 때문에 멸종할 위기에 있다. 비록 핀타섬육지거북은 지키지 못했지만 아직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수백 종의 파충류들이 남아 있다. 3억1000만 년 된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끝나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 필자소개
박진영. 국내 유일의 도마뱀 전공 고생물학자이자 파충류 마니아. 공룡이나 도마뱀, 악어 등의 화석이 있는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청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마뱀 화석을 연구했으며, 블로그와 강연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다. ‘박진영의 공룡열전’을 펴냈다.


※ 편집자 주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파충류의 속사정’ 연재를 마칩니다.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글 박진영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방문연구원 | 에디터 윤신영

stegosau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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