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족’으로 산다는 것

2016년 08월 13일 18:00

싱글족, 나홀로족, 혼자족, 혼밥족, 혼술족, 혼행족, 와이즈(WISE)족 등의 조어(造語)들은 아직 한국어 사전에는 없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말이다. 그런 ‘나 홀로 생활인’은 점점 늘어나 여러 생활에서 어느덧 ‘특수한 성격의 무리’라는 뜻을 갖고 있는 접미사 ‘-족’(族)으로 이름 지어졌다. 그것을 나열해보면, 혼자서 외식하는 ‘혼밥족’, 혼자서 디저트 먹는 ‘혼디저트족’, 술집에서 혼자서 술 마시는 ‘혼술족’, 혼자서 여행을 즐기는 ‘혼행족’, 혼자서 영화를 관람하는 ‘혼영족’ 등인데, 그 구조에서 알 수 있듯 식생활 및 문화생활의 명사에 억지스럽지만 접두사 격으로 ‘혼-’을 붙이기만 하면 뭐든 다방면의 ‘혼자 생활인’이 된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나 홀로 생활인’은 누구일까. ‘와이즈(WISE)족’이라는, 서양에서 이식된 조어를 보면, 그 ‘누구’의 상당수는 ‘여성’이다. ‘혼자만의 경험을 고집하는 여자들’(Women who Insist on Single Experiences)이라는 그것은 그야말로 위에서 언급한 생활을 ‘혼자’ 행하려는 목적성을 띠고 있다. ‘혼자’이기에 ‘집단성’이 없다. 그래서 그 주체는 전체를 위해 감수할 필요도 없고, 일행을 위해 배려할 필요도 없으며, 서로를 위해 합의할 필요도 없다.


‘나홀로족’은 왜 여성이 더 많을까. 이 땅의 여성은 여전히 경제적 수입과 사회적 위상 등에서 여러 불이익에 처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여성은 직접 경제 활동을 하면서 예전처럼 남성에게 의존해 의식주를 해결하는 세태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니 양육을 비롯한 가사에서 더 많은 부담을 떠안는 여성이 굳이 혼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독신을 선택하거나 혼기를 늦추는 경우가 흔해진 이유일 테다. 반면, 주 5일 근무제 이후에 여가 시간은 늘었지만 노동 강도는 세져 일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세상사에 지친 여성들이 ‘나 혼자 편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게다.


그런 ‘나홀로족’은 여성만으로 구성된 겨레[族]가 아니다. 나 같은 남성도 적지 않다. 나는 밀린 산문 원고를 쓰거나 방금 날아간 조약돌 시(詩) 한두 줄이 물결 짓는 물수제비의 행로를 이어가기 위해 가끔 ‘혼술족’이 되곤 하는데, 단골 맥줏집에 들어서면 종종 일본 책을 펼쳐놓고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또 다른 중년 남성 혼술족을 만날 때가 있다. 한번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궁금해서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필자 같으면 잠시 앉겠느냐고 예의상 되묻겠건만, 그는 무뚝뚝하게 “소설인데요.” 하고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차가운 반응에 머쓱했지만, 그런 태도야말로 ‘나홀로족’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을 때만큼은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이해는 되면서도 나는 씁쓸했다. 단지 무시당한 느낌 때문만은 아니었다. 따져보면 그는 내게 무례하지도 않았고, 폐를 끼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쑥 끼어들어 그의 독서를 방해한 셈이었다. 그럼 내가 받은 불편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실망감’이었다. 혹시 나와 동질적인 관심으로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호의에 대한 상대의 냉소적인 반응은 마치 유년 시절에 운동장을 건너질러 하교하는 아이에게 축구공을 굴려 보냈음에도 그 공이 다시 내게 되돌아오지 않았을 때와 같았다. 그 후 그 아이는 주로 혼자 공놀이를 하게 되었다. 누구든 ‘우리’가 없는 인생은 그저 쓸쓸할 것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