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삶에 봉사하는 방식에 대해: ‘과학적 삶의 양식’에 대한 소고 ①

2016년 09월 09일 15:00

 김우재 오타와대 교수

김명호 작가 제공
김명호 작가 제공

“과학적 세계이해는 삶에 봉사하며, 삶은 그것을 받아들인다.1)” 오토 노이라트, 한스 한, 루돌프 카르납, “과학적 세계 이해: 비엔나 학단”의 마지막 문장.

 

과학은 양날의 검이다. 한국사회에서 과학은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로 더욱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과학적’이라는 수사는 ‘절대적’, ‘객관적’, 그래서 ‘틀림이 없는’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것이 무엇이건 대중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 된다. 그 대상이 ‘과학적’이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크게 상관 없다. 과학이라는 말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무엇이다. 심지어 침대조차 한국에선 과학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종교만큼의 권위를 지닌 신비의 세계다.


과학이 이렇게 절대적인 지위를 점유하는 공간에서, 이 사회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사회는 과학적이지 않다. 여기서 ‘과학적이지 않다’라는 의미는,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이 베풀 수 있는 봉사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을 필자의 용어로 풀면, 한국사회는 ‘과학적 삶의 양식’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이 글은 바로 그 ‘과학적 삶의 양식’이라는, 초파리를 연구하는 필자의 전공 이외에, 필자가 항상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유에 대한 소고의 성격을 지닌다.

 
어류학자 천황, 의학사회학자 대통령


일본에 과학이 전해진 시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전후로 일본에 서양의 근대과학이 전해졌고, 수많은 일본 유학생들이 서양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미 일본의 과학자들은 입자 물리학을 비롯한 최첨단 분야에서 20세기 초반 두각을 나타냈다. 일본이 계속해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이유에 대해 애국심이나 자존심을 내세울 시기는 지났다. 일본의 과학은 이미 150여년 전에 근대화를 시작했고, 그 결실들이 현재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서울 관측소에 처음 도입, 설치된 은반직달일사계로 일사량을 관측하고 있는 이원철 박사의 생전 모습(1959년). - 한국천문연구원 자료 제공
서울 관측소에 처음 도입, 설치된 은반직달일사계로 일사량을 관측하고 있는 이원철 박사의 생전 모습(1959년). - 한국천문연구원 자료 제공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는 천문학자 이원철로, 그는 192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인 최초의 이학박사 야마카와 겐지로가 학위를 받은 해가 1888년이니 이미 시작에서부터 한국은 40년 이상 뒤쳐져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단순히 한국의 과학이 늦게 시작했다는 점이 아니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식민지 하에서 과학이란 그다지 매력적인 학문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 권력을 잡았던 친일파 부모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쉽게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법학과 의학쪽으로 자녀들을 유학보냈다. 당시 이학과 공학을 전공한 이들은 상류층 자제들이 아니라 중산층의 자녀들 중 공부가 뛰어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근대과학이 탄생한 유럽에서, 과학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일종의 지적 사치이기까지 했던 과학활동을 즐길 수 있는 여유란, 귀족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은 일본과 미국에도 전해졌다. 유럽에서 과학을 물려받은 미국과 일본의 상류층은 과학을 존중했고, 그들 중 일부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그런 부류였고, 일본 동물행동학의 창시자인 이마니시 긴지가 그런 귀족이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일본 아키히토 천황은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어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실제 십수편의 과학 논문을 국내 및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진짜 과학자이기도 하다. 바로 이 사실이, 일본의 과학이 지닌 저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천황은 과학 연구를 했고, 과학자였으며, 바로 이 사실이 보여주는 교훈은 일본 사회에서 과학이 그만큼 자연스러운 문화라는 뜻이다.


얼마전 오바마 대통령이 의학논문을 출판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장식했다. 자신의 집권 시절 야심차게 추진했던 건강보험제도 개혁, 즉 ‘오바마캐어’에 대한 내용을 ‘건강보험 개혁의 진전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의학협회저널(JAMA)에 실은 것이다. 대통령이 의학저널에 논문을 출판했다는 것 자체가 큰 뉴스거리이기도 했지만, 실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 논문을 직접 작성했고, 실제로 평소보다 더 엄격한 2개월의 심사를 거쳐 어떤 혜택도 없이 출판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미국의 과학자들이 과학연구를 심사함에 있어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미국은 유럽의 과학이 지닌 물질적 구성요소 뿐 아니라, 정신적 요소까지 사회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두 국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논문이 올해 8월 미국 의학협회저널에 실렸다. - JAMA 제공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논문이 올해 8월 미국 의학협회저널에 실렸다. - JAMA 제공

한국의 정치인들 중 과학자를 찾는 일은 가시덤불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렵다.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과학자일리 없고, 과학연구를 수행해서 논문을 출판했을리 없다. 정치인 중에 과학자가 많아야, 한 사회가 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과학자가 정치를 해야 그 사회가 더 과학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도대체 왜 일본과 미국은 위와 같은 일이 자연스레 벌어지며, 한국은 아닌가 하는, 왜 한국사회에 과학은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 근대과학의 시작: 정치와 경제에 종속된 과학


노벨상이 수상되는 10월마다, 한국은 한바탕 홍역을 치룬다. 이젠 언론의 연례 행사가 되어버린 듯, 한국은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냐는 똑같은 분석이 벌써 10년도 넘게 반복되고 있다. 과학은 올림픽이 아니다. 김연아나 박태환처럼 뛰어난 스포츠 영웅 한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행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과학은 시스템이다. 과학은 한 사회가 동의하고 지지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 비로서 그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는 시스템에 가깝다. 즉, 어쩌다 한국인 한 명이 노벨과학상을 탄다 한들, 한국의 과학이 일류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노벨상이 꾸준히 계속되지 않는다면, 과학은 한국사회에서 겉돌 뿐이다. 김연아나 박태환이 영웅이 되어도,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이 국민 스포츠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벨위원회 제공
노벨위원회 제공

한국사회는 영웅을 좋아하고, 그 영웅으로부터 착시효과를 얻는데 길들여져 있다. 미안하지만, 김연아도 박태환도, 그리고 미완의 과학영웅 황우석도 모두 시스템을 만드는데 실패한 영웅들일 뿐이다. 한 명의 김연아가 탄생하는 조건보다, 백 만명의 피겨스케이팅 동호회원이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노벨상이란 백 만명의 과학자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자연스레 흘러 넘치는 부가가치일 뿐, 과학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노벨상을 거부해야 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과학조차 소영웅주의와 노벨상에 가두는 문화는 어디에 기원을 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완결된 대답은 없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한국사회에 근대과학이라 불릴만한 시스템이 정착했고, 그 제도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그 시기는 1966년 미국의 원조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세워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미국을 방문한다. 연구소 설립을 제안한 미국 존슨의 제안을 들은 그는 ‘기술진흥5개년계획’으로 불렸던 경제발전계획을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으로 변경한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을 기술 앞에 세운 이유는, 과학을 앞세우면 그의 정치적 야심을 더 효과적으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당시 KIST의 주요보직은 금속공학자인 최형섭을 중심으로 한 파이클럽이 차지했고,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충성심은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정책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가 과학기술에 대해 듣고, 보고, 사고하고, 또 은연 중에 느끼는 모든 패러다임이 바로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즉, 과학은 경제개발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이며, 과학자는 국가에 충성하는 애국자라는 인식이다2).


불과 10년 전 황우석은 여전히 이 패러다임이 한국사회의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주었다. 한국에서 과학이란 그런 것이다.3) 과학은 기술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과학기술이라는 하나의 단어로만 국가의 지원 속에서 통제되어야 하는, 그런 학문체계인 것이다. 이런 체제 속에서 한국 사회의 과학자는 흔히 중인계급으로 진화했다고 분석된다. 권력에 다가가려는 욕심도 없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려는 희생정신도 없이,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그런 중인계급이라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문제는 도대체 왜 그들이 중인계급이 되었느냐는 맥락적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한국사회의 과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왜 한국의 과학은 사회에서 겉돌기만 하는 것인가?4)

 

문화로서의 과학: 과학적 삶의 양식의 기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사회가 과학을 도구로만 받아들이고, 사유의 방식이나 문화로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과학이 겉도는 이유다. 필자는 미국과 일본에는 존재하고, 한국에는 없는 그런 형태의 과학을 ‘문화로서의 과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류학자인 천황이 어색하지 않고, 대통령이 의학저널에 논문을 투고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사회, 문화로서의 과학은 바로 그런 사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과학의 한 단면이다5).


과학이 문화로 한 사회에 스며든 곳에서는, 과학이 삶에 봉사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곳에서는 과학자들이 수 백년 동안 다듬어온 과학적 방법론이, 정책의 입안과 결정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근거 없이 국민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입안할 수 없고, 설사 정책이 실수로 입안되었다 하더라도, 그 실험은 또 다른 근거가 되어 기존의 정책을 반증하고 수정한다. 정책의 결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고, 언제나 열린 공간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해당 정책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양분되는 정책의 경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끊임 없이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 어디에서도 절대 독단과 권위가 끼어들어서는 안되며, 충분한 근거와 설득력이 있는 모든 주장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은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말한 과학자들의 규범 ‘큐도스 CUDOS’와 일치한다.


머튼은 과학자 사회가 과학이라는 매우 엄밀한 지식을 빠르게 생산해내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던 사회학자다. 오랜 연구 끝에 그는 과학자 사회가 작동하는 그 기저에 네 가지 규범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첫째, ‘공유주의 규범(communism)’은 과학적 발견이 과학자 사회의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므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고, 모두와 함께 공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보편주의 규범(universalism)’은 과학적 연구의 타당성은 계급, 인종, 성별, 국적 등과 같은 과학자의 사회적 배경과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탈이해관계 혹은 이해관계의 초월 규범(disinterestedness)’은 과학자가 연구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수행하고 평가할 때,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조직화된 회의주의 규범(organized skepticism)’은 모든 과학적 주장에 대한 판단은 과학적 증거에만 입각해야 하며, 그 출처의 권위와 상관 없이 확실한 지식에 이를때까지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자사회는 바로 이런 규범들을 암묵적으로 지키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엄청난 결과물들을 탄생시켰다. 위의 규범들이 작동하지 않는한, 과학은 없다. 어쩌면 과학이란, 우주선을 화성에 보내고, 암을 치료하고, 인간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보다,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삶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체계다. 그것은 과학이 발견한 사실과 법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방법론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과학자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켜온 몇 가지 단순한 규범들의 틀 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사회가 과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또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은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에 과학자들이 동의해온 규범을 적용하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이러한 사회를 ‘열린 사회’라 불렀고, 필자는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과학적 삶의 양식’이라고 부른다.

 
과학대중화의 기원


한국사회는 과학이라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곳이다. 과학은 분명 기술 혹은 공학과 구별되는 영역을 가진 학문인데, 개발독재 시대에 한국사회에 이식된 과학은 과학기술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부여받아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학문으로 각인되었고, 그 과학기술의 설계도를 그리는 일은 과학을 전혀 모르는 정치인들에게 종속되었다. 바로 그런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과학은 한국사회에 스며들어 삶의 양식이 되지 못하고 겉돈다. 그런 상태는 과학자들을 일종의 중인계급으로 퇴보시켰고, 적극적으로 과학적 사유와 삶의 양식을 사회에 전파해야할 그들을 연구실에 가두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문화라는 체제가 어떤 시공간에서 존재했던 사람들에 의해 정착하고, 또 그것이 전승되는 과정을 지닌 하나의 진화적 체계와 유사하다면, 한국사회의 문화는 가깝게는 조선시대로부터 물려받아 대한제국과 일제식민지 그리고 현대사를 거치며 수정되고 변화하면서도 어느정도의 항상성을 가진, 막을 가진 생명체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문화는 위대한 민중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의주로 피신을 했을 때도, 핍박받던 백성들은 그 막되먹은 나라를 지켰다. 아마도 그것은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내 부모, 형제, 자식과 친구가 사는 공간이 침략당했다는 분노였을 것이다. 마지막 황제가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겼을 때, 드디어 조선의 민중은 그 지긋한 계급체계를 벗어던지고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다. 왕족과 귀족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낸 일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독재자가 나타났을 때, 그들은 격렬히 저항했으며,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와 독재자를 내쫓았다. 한국은 거리에서의 투쟁으로 독재와 군사정권을 정치에서 몰아내고 평화적 정권이양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아시아의 국가이며, 그 문화적 승리의 기억은 사회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삶의 양식으로 스며 있다. 그들 중에 과학자들도 있다.

1935년 4월 19일 제 2회 과학데이를 상세하게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 동아일보 DB 제공
1935년 4월 19일 제 2회 과학데이를 상세하게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 동아일보 DB 제공

독립운동 시기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과학이 지닌 우월함을 일찍 알아챘고, 그 과학을 대중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미 조선말부터 청나라에서 들어온 과학서적들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읽히기 시작했고, 혜강 최한기는 서양의 과학이 빠르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미 19세기 말에 간파하고 있었다. 최한기의 ’기측체의’, ‘기학’, 그리고 ‘인정’으로 이어지는 저술은 조선말 서양의 근대과학의 성과를 접한 지식인이 어떻게 그 지식을 전통적인 학문과 융합하려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식민지 시대가 되면, 조선은 의지와 상관 없이 서구의 문물에 노출된다. 당시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사상들은 다양했지만,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아나키즘 등의 정치이념, 기독교와 같은 종교와 더불어 자연과학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논의된 주제 중 하나였다. ‘동도서기’ 등의 말이 유행했으며, 자연과학을 통해 서구의 ‘물질적’ 성취를 흡수해 제국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자는 계몽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중 하나는 김용관의 발명학회가 1924년 만든 ‘과학데이’이고, 한국 과학대중화의 기원은 그렇게 멀리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계몽주의에 대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은 서구의 물질적 토대를 이룬 학문으로 여겨졌고,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민중을 계몽하면, 조선은 곧 개화되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사상이 퍼져있었다. 정확히 한 세기전 유럽을 휩쓸던 계몽주의의 흐름이 식민지 시대의 조선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17세기 근대과학의 출현은 정치 및 사회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18세기 계몽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계몽주의가 아름다운 귀결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질적으로 엘리트 사상과 권위주의를 내포한 계몽주의 사상은 사회의 급격한 변혁에 이바지했을지는 몰라도, 그와 비슷한 정도의 반작용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과학의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기 시작했고, 과학은 국가가 국가를 침범하는 정당화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우생학은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백인을 가장 우월한 인종으로 규정했고, 일반지능이론은 우생학적 차별을 지능으로 환원시켜 서양인들의 타지역 지배를 정당화했다.


왜곡된 과학적 정당화의 희생양이 된 식민지 지식인들이, 다시금 우생학을 받아들여 자국의 민중을 계몽하려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우생학회를 창설하고 이를 보급하는데 열중했으며, 다윈의 이론을 왜곡해 국가간의 경쟁으로 외삽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가장 유행했던 사상이기도 했다. 과학의 대중화는 바로 이런 운동의 조류에 속해 있었으며, 민중은 무지하고, 과학지식은 우월하다는 위계의식과 권위주의 속에 과학대중화 운동은 산업화시기로 이어졌다.


과학대중화운동이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한 것도 박정희 정권 즈음이었다. 과학은 정권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좋은 도구였으며, 경제발전의 도구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정치권력이 과학을 대중화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의 과학대중화는 과학이라는 낯선 사고체계를 소개하는 것에 그쳤지만, 산업화 시대의 과학대중화는 이미 대중이 알고 있는 과학을 쉽게 포장하는데 열중했다. 과학은 어렵다. 대중이 과학을 낯설어 하는 이유는 바로 그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쉽게 가르치자. 바로 이 단순하고 검증되지 않은 삼단논법이 과학대중화 정책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붇는 근거였다. 그 정책은 성공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박정희 시대를 거쳐 군사독재 시기, 그리고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수십년간 과학대중화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었지만, 이공계기피현상은 심해졌고, 여전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 시대에 태어나 과학대중화의 세례를 받은 사이언스키즈들은 현재 일자리가 없어 과학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심지어 직업을 구하기 쉬운 공학자들마저 한국을 버리고 실리콘 밸리로 이주하기를 꿈꾸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과학대중화 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


최재천 교수는 1990년대 한국 과학대중화의 명맥을 이어간 대중과학자다. 그도 바로 이런 과학대중화의 맹점을 인식했고, 과학의 대중화가 과학이 지닌 세밀하고 우아한 지식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오히려 과학을 저질화한다고 주장했다. 과학대중화가 과학을 쉽게 만드는데에만 집중하는 한, 진정한 과학대중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재천 교수는 ‘대중의 과학화’라는 패러다임을 들고 나왔다. 최재천 교수가 보기엔, 한국 과학의 문제는 과학이 대중화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과학은 오히려 너무 대중화되었다- 대중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대중을 과학화해야 한다. 문제는 최재천 교수의 분석은 옳지만, 대중을 과학화한다는 것의 명확한 의미도, 그 방법론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떻게 대중을 과학적으로 만들 것인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몽주의적 발상은 언제나 뼈아픈 귀결을 초래한다. 특히 21세기처럼 대부분의 현대인이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계몽이란, 상아탑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헛도는 바퀴일 뿐이다. 더이상 계몽은 필요하지 않다. 대중은 충분히 현명하며, 그들의 의사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정보는 충분하다. 대중은 충분히 과학적이다. 문제는 대중이 아니다. 사회에 과학이 흘러 넘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사회를 이끄는 제도들을 만들어야 할 권력층과 바로 그 권력을 과학적으로 견제해야할 과학자집단이 과학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과학대중화란 21세기엔 의미 없는 활동이다. 대중과학화란 표적을 잘못 설정한 공허한 캠페인이다.

 


‘과학의 과학화’를 위한 초석


한국 사회의 과학이 우리의 삶에 봉사하게 만드는 방식은 과학의 대중화도, 대중의 과학화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흘러넘치지 않는 이유가 대중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정치권력은 과학적 삶의 양식에 물들어 있다. 과학이 그들을 지배하고, 과학자들이 정치를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도움을 받고, 과학적 방법론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의미다. 또한 그런 사회에선 과학이 정치권력을 감시한다. 과학적 발견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이 지닌 많은 장점들이 자연스럽게 권력을 견제하는 데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근거를 가지고 말해야 하며, 비판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되고, 언제나 열린 토론 속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협상하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그런 사회의 과학은 과학화되어 있다. 머튼이 말한 규범들이 과학자사회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과학자사회는 그 규범들에 따라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연구실에 있지만, 그들이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연구들의 성과는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대중과 사회를 적신다. 그렇게 스며든 과학은 한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며, 그렇게 형성된 문화, 즉 과학적 삶의 양식은 한 사회의 상식이 된다. 그 상식이 바로 권력을 견제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한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이 존중하는 상식을 어길 수 있는 권력은 없다. 바로 그 상식의 기저에 과학이 기여한 문화적 요소가 얼마나 있는가가, 한 사회의 과학적 태도를 결정한다.


한국 최고의 국공립 과학기술대학 카이스트(KAIST)는 얼마전 창조과학자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려다 학생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심지어 카이스트엔 전국에서 가장 큰 창조과학 동호회가 인가되어 있으며, 그들 중 일부 교수들은 버젓이 자신의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과학을 믿으라는 설교를 하고 있다. 그들은 교진추라는 단체의 주축이며 대부분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종교를 믿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자, 교진추는 그 권력의 힘을 믿고 중고등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려는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개인적 영역에 있어야할 종교적 신앙이, 권력의 힘을 빌어 공공의 영역으로 탈주한 것이다. 이 어이없는 사태가 국제적인 저널인 네이처지에 보고되고 나서야 교육과학부는 부랴부랴 청원을 기각했지만, 여전히 교진추는 중고등 교과서를 노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과학분야 인수위원장은 장순흥 교수로 창조과학의 신봉자였다. 창조과학자가 한 국가의 과학정책을 다룰 인수위원장이 된 것이다. 논란이 일자, 그는 자신의 개인적 신념을 정책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으나, 그 선정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창조과학자가 한 국가의 과학정책을 다루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앞세우는 국가의 수장이, 사이비과학자를 과학정책의 수장으로 앉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려는 계속된다.

 

미래부의 X프로젝트는 기획 단계부터 비판을 받았다. X프로젝트를 비판한 패러디 포스터. - 동아사이언스 제공
미래부의 X프로젝트는 기획 단계부터 비판을 받았다. X프로젝트를 비판한 패러디 포스터. - 동아사이언스 제공

얼마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발주한 X프로젝트라는 사업의 기획단계에서부터 관여한 인물은 제로존 이론이라는 사이비과학을 신봉하는 기자 출신의 과학정책전문가였고, 그의 지인인 영구기관을 믿는 과학자는 이 프로젝트로부터 실제로 연구비를 수주할 뻔 했다. 한 신문의 과학기자가 제보하지 않았다면 묻히고 말았을 일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미래부는 프로젝트의 위원회를 전부 싹 갈아 버렸지만, 과학기술 연구의 핵심인 정책결정과정에 사이비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과학기술정책이 보여주는 비과학성 때문이다. 한국 과학기술정책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국가주도 하향식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연구자들은 자율적인 연구 대신 국가가 원하는 연구를 단기간에 수행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선진국의 사례를 보아도, 한국과 같은 경제규모를 지닌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이 이처럼 후진적이지는 않다. 한국의 과학기술연구비가 심사되는 과정은 번개불에 콩을 구워먹는 것처럼 빠르고, 그 연구비 선정과정 자체는 공개되지도 않는다. 연구비 선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누구도 그 정책입안자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 전체에 퍼진 불공정 경쟁이, 과학계라고 피해갈리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제대로된 연구를 할 리 없다. 황우석은 바로 그런 비과학적인 과학기술정책이 키운 괴물이다. 그리고 여전히 변혁되지 않는 그 제도들은 또다른 황우석을 키울 것이다. 혹은 곧 과학자의 멸종을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정책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하는 정책들의 입안과정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처럼 사건사고가 많고 그에 따라 법률이 유행가처럼 만들어지는 국가도 드물것이다. 하나의 법안이 만들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엄격한 과정은 사라지고, 언젠가부터 법안은 여와 야가 협상하기 위해 필요한 포장지가 되어 버렸다. 내용물이 되어야 할 법안이 포장지가 되고, 그 포장지는 곧 버려지는 것이다. 이는 국회에 과학자를 더 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해마다 40% 이상 바뀌지만, 국회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유와 같다. 시스템과 제도, 그리고 이를 견제하는 문화가 결여된 것이다.


모든 변화가 한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한국의 과학자사회는 정치권력에 길들여져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처지이고, 권력은 이런 과학자 사회를 길들이려 할 뿐,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처음부터 건설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항해 중인 배 위에서 배를 수리하는 사람들이다. 이 총체적인 난국의 상황에서, 우리는 과학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미 위에서 기술했듯이, 한국사회가 비과학적인 이유는, 대중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권력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며, 다음으로는 그 권력에 길들여진 과학자 사회가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그 두 집단을 좀 더 과학에 가깝게 만드는 일, 필자는 그것을 ‘과학의 과학화’ 과정이라고 부를 것이다. 상류의 물이 오염되었는데 하류를 소독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 상류에 정치권력과 과학자집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는 중심엔 과학기술정책이 있다.6)


‘과학의 과학화’란 과학을 과학답게, 머튼의 규범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는 한국사회에 특수한 작업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실험이다. 우리는 우선 한국사회의 과학을 과학답게 만들어야 한다. 그 치열한 변화의 노력은 한국 사회를 바꾸는 초석이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사회를 구하는 과학은, 과학 스스로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를 구하기 위해선, 과학을 구해야 한다.

 

※주 

1) Neurath, Otto, Hans Hahn, and Rudolf Carnap, “The scientific conception of the world: The Vienna Circle.” Empiricism and Sociology (1973).

2) 김영식; 김근배. 근현대 한국사회의 과학.창작과 비평사. 1998.

3) 박정희 시대의 정착한 한국의 근대과학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들을 참고할 것.
김우재. [새사연] 노벨상과 경제발전, 그리고 박정희의 유산.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10 Apr 26;
김근배. 과학기술입국의 해부도. 역사비평. 2008;85.

4) 김우재. [새사연] 영원한 중인계급.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2010 Aug 13;

5) 이 글에서 ‘문화로서의 과학’을 자세히 다루기는 어렵다. 필자의 졸고, “김우재.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과학사 – 과학사는 창의성을 증진하는가? Sciencetimes. 2010 Sep 30”을 참고할 것.

6) 과학자들에게 정치란 국회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환경을 결정하는 과학기술정책에 관여하는 일이다. 이런 견해에 대해 다른 곳에서 자세히 다룬 필자의 글을 참고할 것.

김우재. 노벨상보다 필요한 건 아인슈타인이다 – 한국과학자 사회에 고하는 제언. Sciencetimes. 2010 Oct 13;
- 김우재. 프랑켄슈타인이 된 아인슈타인. Sciencetimes. 2011 Apr 4;
- 김우재. [새사연] 아인슈타인을 위한 정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2010 Sep 15;

 

※편집자주

한국 사회가 ‘합리적’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요? 과학기술이 각종 논란의 중심이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런데 대안을 내는 과정에 과학기술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기술자들의 의견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다양한 의견이 아닌, 어떻게 결정됐는지 모호한  ‘일치된 의견’이 성명서로 발표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과학기술자들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ngineers & Scientists for ChangeㆍESC)’를 만들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과학기술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ESC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주로 △나의 연구, 나의 실험 △내가 보는 과학과 사회 △연구윤리/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 △확실한 과학, 논쟁적인 과학 등 4가지 분야의 글이 소개됩니다. 동아사이언스를 통해 과학기술계의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합리적이고 건강한 토론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ESC 창립 기사]과학기술인들이 모여 ‘ESC’를 만들었다... ESC의 정체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목소리(1)] 연구윤리와 연구자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책임 


※ESC에 대한 정보는 ESC 홈페이지(www.esckorea.org)를 참고하세요. 궁금한 사항은 office@esckorea.org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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