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맛 1: 막걸리 편

2016년 10월 01일 18:38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종종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애주가라고 일컬어도 무방할 것이다. 좋게 말해서 ‘애주가’(愛酒家)지 상당수의 그는 ‘알코올릭’(alcoholic)일 테다. 그렇다고 막소주를 컵에 따라 들이키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마시는 술의 양은 많지 않지만 집에서도 맥주든 소주든 와인이든 막걸리든 두세 잔 정도의 술을 자주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적지 않다. 나 역시 그 부류에 속하기에, 그 정도라면 알코올중독자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애주가라고 여기고 싶다. 그런 음주 습관은 우리 부모 세대에는 흔했던 ‘반주’(飯酒)를 떠올리게 할뿐더러 일상의 저녁 밥상 풍경이었다.

 

GIB 제공
GIB 제공

그래서인지, 적당한 음주는 생활과 건강에 활력을 준다는 국내외 의학 연구 기사를 접할 때면, ‘그래서 약주(藥酒)라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위안한다. 그와 동시에 오늘처럼 가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신 김치를 송송 썰어 밀가루와 튀김가루에 적절히 풀어서 냉동 오징어라도 한 마리 썰어 넣고 얇게 부친 김치전을 떠올리며 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귀가하는 애주가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그러고는 저녁밥에 앞서 시원한 막걸리 한두 모금을 빈속에 들이키고는 방금 부친 김치전이나 호박전을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으면 애주가의 입안에는 소박한 행복이 가득 찬다.


말 나온 김에 내가 집에서 가끔 즐기는 음주 이야기를 꺼내본다. 누구든 상황과 기분에 따라 집에서 마시는 술과 안주의 종류는 달라질 것이다. 내 경우는 대략 다섯 가지인데, 앞서 막걸리를 언급했으니 이번 주는 막걸리를 소재로 삼는다. 어떤 막걸리가 맛있을까. 나로서는 생막걸리든 살균막걸리든 쌀막걸리든 밀막걸리든 ‘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막걸리는 ‘단맛’이 강하다. 또한 그 상당수는 맥주의 장점을 도입하려 했는지 탄산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는 탄산도 단맛도 거의 없이 신맛만 있는 전통 막걸리가 맛있다. 그러나 그 두 맛을 충족시켜 주는 막걸리를 우리 동네 마켓에서는 찾을 수 없다.


물론, 전국으로는 유통되지 않지만, 양조장 소재의 지역에서는 판매되는 맛있는 막걸리는 지방 곳곳에 (숨어) 있다. 나는 그 서너 가지를 마셔본 적 있지만 20병 단위로 택배 주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야말로 우연히, 수도권에서 가장 흔한 막걸리도 내 입맛에 맞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몇 달 전이다. 장을 보다가 눈에 띈 홍어회 무침을 한 팩 사서 귀가한 날이었다. 이런 안주라면 막걸리가 넉넉해야 할 듯해 그 흔한 ‘ㅅㅈ생막걸리’도 두 병 구입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유난히 막걸리의 단맛이 강해 한 병만으로 술잔을 치우고는 이튿날 마시려고 김치냉장고 바닥에 넣어 두었다. 그러고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여러 날을 보냈다.

 

Kijun Kim(F) 제공
Kijun Kim(F) 제공

그러던 어느 날, 김치냉장고를 뒤적이다가 그 막걸리를 발견했다. 생막걸리였던 터라 먼저 생산 날짜를 확인했다. 유통기한이 딱 하루 남아 있었다. 마침 냉장고에 두부 한 모가 있었다. 팔팔 끓는 물에 한입 크기로 썬 두부 한 모를 넣어 1분간 데치는 동안 김치 통에서 신 김치 반쪽을 꺼내 숭숭 썰어 접시에 놓았다. 그러고는 오래되어 침전된 막걸리를 흔들어 술잔에 따랐다. 그런데 술 냄새가 달랐다. 발효 냄새가 훅 끼쳤다. 궁금한 마음으로 한 모금 마셨다. 아니 그런데, 그 맛은 평소에 내가 찾던 맛이 아닌가! 그 순간, ‘막걸리 맛이 왜 이렇게 좋아졌지?’ 하고 생각했다. 병 속에 살아 있던 효모가 배가 고파서 막걸리의 당분을 죄다 잡아먹은 거였다. 그러니 단맛은 사라지고 식욕을 돋우는 ‘신맛’만 남을 수밖에.


나는 무릎을 쳤다. 입맛이 나와 같은 독자라면, 어쩔 수 없이 달달한 막걸리를 구매했다면 일부러 여러 날 묵혔다가 유통기한 전날이나 마지막 날에 마셔보시라. 탄산가스도 모두 날아간 오리지널 전통 막걸리 맛을 만나 미각이 호강할 테니 말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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