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듣는 짠한 노래

2016년 10월 22일 18:00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노래를 끝까지 듣느라고 시동을 끄고도 차에서 내리지 않은 적이 있다. “고동을 불어본다. 하얀 조가비. 먼 바닷물 소리가 다시 그리워”로 시작되는 박인희의 「하얀 조가비」였다. 참 오랜만이었다. 가을바람 같은 스산한 음색 뒤에 깔리는 파도 소리 배경음을 듣노라니 마치 승용차 안이 고동의 빈 조가비처럼 느껴졌다.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걷는 동안에도 그 노래는 귓전에서 계속되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두운 창공에 뜬 노란 달에서부터 들려오는 듯도 했다. 달이 밀물과 썰물을 만드니…….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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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떤 여성분은 어느 날 퇴근 후 일산 방향 자유로(自由街)로 차를 몰고 귀가하다가 차 안에서 듣던 어떤 재즈 블루스 앨범 음악에 심취해 노을을 따라 무심결에 차를 강화도까지 몰아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분은 무엇에 마음이 이끌렸기에, 음악이 마음을 어떻게 조종했기에 점점 붉게 시드는 석양을 따라 마냥 그곳으로 달려가서는 사윈 저녁 서해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한편 15년 전에 나는 서울 방향 자유로를 통과해 출근하던 중 차 안에서 Helloween의 “A Tale That Wasn’t Right”을 듣다가 그 노래의 절정에서 문득 합정역 방향 나들목을 그냥 지나치고 싶은 강한 유혹을 간신히 뿌리친 적이 있다. 그때 직장으로 가는 그곳으로 진입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내 차는 구리 방향 강북강변로를 따라 그대로 직진해 속초의 외옹치 해변쯤에서 멈춰 섰을 것이었다.


이처럼 차 안에서 듣는 노래는 어느 날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느닷없이 다른 세계에 데려다 놓는다. 그곳은 평생을 적요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선친께서 어느 가을 취중에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라고 부르셨던 30여 년 전의 저녁 밥상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들만 선곡해 녹음했다며 카세트테이프를 내밀던 하얀 손이 다소곳이 놓여 있던 캠퍼스 벤치이기도 하다. 그 시절, 그곳, 그 장면을 오버랩시키는 어떤 음악이 어느 날 혼자 차를 몰고 가던 중에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면 어느새 운전자의 마음은 도로 저편을 향해 달려간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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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신호 대기 중 옆 차선에 나란히 서 있던 어떤 차 안에서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우연히 엿듣게 되는 날도 있다. 그 음악이 내 취향일 때, 일테면 세련된 일렉 기타 연주가 구슬처럼 도로에 쏟아질 때면 저절로 나의 고개는 귀를 따라 그곳으로 향한다. 그러곤 차의 외형이 아니라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시선이 닿는다. 반가운 동질감에 눈인사라도 건네고 싶지만, 그 곡을 마저 엿듣고 싶지만 신호등은 우리를 흩어놓는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온종일 그 음악을 흥얼거리게 된다.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은 왜 종종 새삼스러울까. 혼자 있는 나에게 음악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은 아닐까. 차 안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기에 음악의 가사나 멜로디나 연주가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바로 당장을 살고 있는 심정에 투영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하필 어떤 음악의 빛살이 마음을 관통하여 어떤 스펙트럼으로 눈앞에 발현되는 게 아닐까. 그것이 환희의 노랑이든 열정의 빨강이든 슬픔의 파랑이든 말이다. 그러니, 차 안에서 혼자 듣는 음악은 늘 함께 있으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나’를 발견케 하는, 내면의 자아를 이끌어내는 소리일 테다. 100년 전에 태어난 시인이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라고 썼던 「자화상」의 ‘우물’처럼 말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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