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사교집단, 그 뒤에 숨은 인간의 심리

2016년 10월 27일 10:32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즉 나치당(the Nazi)의 지도자였고, 나치 독일의 제 1대 총통이었죠.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태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천하의 악당이자 인류의 원흉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외로 괜찮은(?) 인물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했고, 또한 청렴했습니다. 여자와의 스캔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담배와 술을 멀리 했고, 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예술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39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독일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자부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 위키미디어(Heinrich Hoffmann) 제공
아돌프 히틀러 - 위키미디어(Heinrich Hoffmann) 제공

나치(Nazi)와 신지학(Theosphy)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25살의 나이로 독일 제 14보병연대에 자원 입대합니다. 그는 조국 독일을 위해서 진심으로 봉사하려고 했습니다. 비록 부모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살았으며, 바라던 미대 입시에는 계속 낙방했지만, 그의 애국심은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입대 4년 후, 히틀러는 한 전투에서 영국의 화학가스 공격을 당하여 시력을 잃습니다. 그는 후방의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조국 독일이 결국 패전을 선언하고, 황제는 외국으로 망명해버린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큰 충격을 입습니다. 조금씩 나아지던 시력도 다시 나빠집니다. 그런데 시력을 잃고 쓰러져 있던 중, 그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독일 국민의 구원자가 되라는 계시를 들은 것입니다.


사실 나치는 일반적인 정당이라기보다는, 사교(Cult) 집단에 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나치당의 이러한 컬트적 특징은 히틀러 집권 이후에, 그의 괴이한 성향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반유대주의 집단에서 신지학적 사교성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는 이를 충실히 계승발전(?)시켰을 뿐입니다.  

 

Unknown (2006), 스와스티카, 평화를 상징하는 인도의 고대 문양. - 위키미디어 제공
Unknown (2006), 스와스티카, 평화를 상징하는 인도의 고대 문양. - 위키미디어 제공

예를 들면 나치의 문양,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대표적입니다.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스와스티카(the Swastika)라고 하는데, 평화를 상징하는 고대 상징 기호입니다. 인도지역에서 일 만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상징인데,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에서 폭넓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신지학자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를 통해서 유럽의 컬트교에 이 기호가 들어왔고, 이를 나치가 차용한 것입니다. 또한 유명한 신지학자인 그레고리 굴디제프(Gregory Ivanovich Gurdijieff)와도 접촉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치는 비밀결사조직, 프리메이슨(the Masons)의 여러 의식이나 제도도 도입합니다.  

하켄크로이츠, 나치는 신지학자 블라바츠키의 도입한 스와스티카를 변형하여 당의 상징으로 삼았다. - 위키미디어(RsVe, corrected by Barliner) 제공
하켄크로이츠, 나치는 신지학자 블라바츠키의 도입한 스와스티카를 변형하여 당의 상징으로 삼았다. - 위키미디어(RsVe, corrected by Barliner) 제공

신지학(theosophy)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신의 계시를 스스로의 직관으로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의 연금술과도 맥이 닿지만 본격적인 신지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세기 말, 앞서 말한 블라바츠키가 소위 신지학협회를 설립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신지학의 목적은 개인적 수준에서 보다 나은 정신을 연마하려는 것이었지만, 나치는 이를 변형하여 국가주의에 도입합니다.

 

신지학회의 상징 문양, ‘진실위에 있는 종교는 없다’고 적혀있지만, 나치는 신지학의 다양한 이론을 도입하여 일종의 유사종교로 만들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신지학회의 상징 문양, ‘진실위에 있는 종교는 없다’고 적혀있지만, 나치는 신지학의 다양한 이론을 도입하여 일종의 유사종교로 만들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이렇게 변형된 신지학에, 오딘(Odin, 게르만 족의 신)을 숭배하는 북유럽의 이교적 전통이 결합합니다. 그리고 1935년 독일은 이른바 뉘른베르크 법을 통과시킵니다. 이 법에 의하면, 유태인은 독일인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결혼 시 강제노동형에 처해집니다. 그런데 이 법은 오딘을 숭배하던 신비주의자, 귀도 본 리스트(Guido von List)가 이미 1911년에 작성한 관련 초안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나치는 오르도 노비 템플리(the Ordo Novi Templi)라는 이단적 수도회를 창립한 란츠 본 리벤펠츠(Lanz von Liebenfels)의 극단적 사상도 받아들입니다. 리벤펠츠는 가톨릭 수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안 족만이 신의 인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흑인과 같은 하등 이민족이나 병자는 불임수술을 통해 단종시켜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수도사 리벤펠츠의 주장은, 나치 당의 부총통이 된 루돌프 헤스(Rudolph Hess), SS 친위대를 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에게 큰 감명을 줍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독일의 주요 인물은, 아마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투철한 애국심, 근면함과 성실성, 목표에 대한 강한 확신과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것은, 지도부가 사리사욕을 챙기고 부정부패에 물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치 당, 즉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주요 강령과 정책, 방향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비 이교집단의 왜곡된 신앙과 사상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정상적 이교사상을 받아들인 나치당이, 히틀러의 강력한 리더십을 만나면서 엄청난 규모의 국가적 컬트 집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원시 종교와 권력, 그리고 가학-피학성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자신의 책,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에서 종교의 심리적 기반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강력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이 인간에게 강박적인 신경증을 유발하며, 이러한 강박적 신경증이 모든 종교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의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이러한 주장을 더 발전시켜서, 가학-피학성(Sado-masochism)을 통해 나치 독일의 유사 종교적 특징에 대해 분석한 바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가학성은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고, 피학성은 그 반대입니다. 그런데 대개 이러한 가학성과 피학성은 한 개인에게 같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을 주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알고 보면 고통을 받으면서도 비슷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모두가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적절하게 조절되지 못하거나 너무 욕구가 강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러한 가학-피학성을 사랑의 관계가 아닌, 권력의 관계에서 추구하려고 합니다. 라이히는 히틀러가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즉 전쟁을 일으키고 약자를 괴롭히고 학살하는 권력의 가학성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 서 말한 것처럼, 가학성은 피학성과 함께 나타납니다. 따라서 히틀러는 자신을 지배해 줄 강력한 존재, 즉 피학을 제공할 대상을 필요로 했고, 그 역할을 컬트적인 나치당의 사이비적 사상이 대신해 준 것입니다.


소설에서 흔히 보는 악의 무리나 사이비 종교 집단은 우두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우두머리를 조종하는 더 은밀한 정신적 리더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는 더 깊은 곳의 진짜 우두머리에게 복종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끝도 없이 가학-피학적 권력관계가 계속 됩니다. 누군가를 권력으로 지배해야, 그리고 권력을 통해 스스로 지배를 당해야만 쾌감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이러한 소설이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건강한 사회의 조건: 권위로부터의 자유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틀러는 다른 사람을 통치하고 지배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그들을 위한 일, 그리고 자연의 영원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지배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어떤 힘에 복종하고 싶어했다. 그러한 복종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욕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1941년(의역).


불안은 인간의 근원적 속성입니다. 그러나 프롬은 시대에 따라서 사람들의 불안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근대 사회는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 그리고 종교의 탈 권위화로 인해서 사람들의 불안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 2차 대전 직전, 가장 발전된 문화와 과학의 국가였던 독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학-피학적 권력관계에 매몰되어 버린 것은 참 아이러니 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 정신과 의사, 유태계 독일인으로 나치가 집권하자, 이를 피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히틀러와 독일 국민이 근대적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해 남을 지배하고, 권위에 복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 flickr(Arturo Espinosa)  제공
에리히 프롬, 정신과 의사, 유태계 독일인으로 나치가 집권하자, 이를 피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히틀러와 독일 국민이 근대적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해 남을 지배하고, 권위에 복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 flickr(Arturo Espinosa)  제공

우리는 불안을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 대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일부는 맹랑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일부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전통적 가치에 매달립니다. 혹은 자포자기하여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걸핏하면 세상을 욕하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자유는 필연적으로 우리는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과거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절대적인 권위는 없습니다. 나치도, 국가도, 신지학도 아닙니다. 그리고 나도 누구에게 그런 권위가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타인을 지배하고 마음대로 다루고 싶은 충동, 혹은 타인에게 기대어 자아를 버리고 의존해버리고자 하는 충동에서 자유로워 질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로운 시민이 많아질 때,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 참고문헌
에리히 프롬(2012), 자유로부터의 도피, Fromm, Erich, 휴머니스트
Encyclopedia of psychology and religion(2010), Leeming, David Adams, Springer
토템과 터부(2009), Freud, Sigmund, 지식을 만드는 지식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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