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몰락한 사교집단을 계속 추종할까?

2016년 11월 01일 14:00

바쁘신 분들을 위해 4줄로 요약!

 

1. 사교집단과 결탁한 권력은, 내적 모순으로 인해 반드시 무너진다. 마치 모래성처럼.
2. 모래성은 무너질 수 있지만, 그것을 쌓아 올린 숙명적인 인간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3 .모든 인간은 안전한 이너서클(inner circle), 은밀한 지하세계에 대한 강력한 무의식적 동경을 가지고 있다.
4. 고통스러운 실존적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다시 누군가 모래성을 쌓아 올릴 것이다.

 

지난 번에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나치 독일의 사교(邪敎)적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숨어 있는 강력한 가학-피학성의 충동이 강력한 권력욕과 만나, 비정상적 컬트집단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착적 권력집단은 내부의 모순적 속성으로 인해서 반드시 무너집니다. 끊임없이 가학적 혹은 피학적 욕망을 실현시키다 보면, 도무지 현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고 맙니다. 강력한 권력은 그러한 임계점을 무한히 확장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치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독일 국민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히틀러의 독재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았을까요? 혹은 긴 전쟁으로 인한 빈곤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을 누렸을까요? 아니면 그동안 침략한 주변 국가, 그리고 국내의 유태인에게 반성하고 사죄하였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치’식 탈나치화(Denazification)


독일이 패망한 이후, 연합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즉 나치의 세력을 일소하기 위한 작전을 펼칩니다. 이를 탈나치화(denazification) 이라고 하는데, 1943년에 미 국방부에서 처음 승인되었습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네 점령지로 나뉜 지역에서 이른바 ‘탈나치 형사’들에 의해서 실행되었고, 서독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수십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탈나치화 조치는 곳곳에 설치된 나치의 상징과 기호, 출판물의 제거, 나치 관련 기관이나 기업, 조직의 해산, 나치 부역자들의 재산 몰수와 체포ㆍ처벌 등 다방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독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학살 장소에 견학을 시키거나 관련 교육을 하는 방식 등으로, 집단적인 사죄 및 책임감을 강요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탈나치화 조치로 인해, 독수리 상징 밑의 하켄크로이츠 마크가 지워져 있다. - S. Kasten(W) 제공
탈나치화 조치로 인해, 독수리 상징 밑의 하켄크로이츠 마크가 지워져 있다. - S. Kasten(W) 제공

나치 독일은 주변 국가의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사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집단은 바로 독일 국민 자신이었습니다. 제 2차 대전으로 인한 미국의 인명 피해는 약 42만명, 영국은 약 45만명 정도였는데, 독일의 사망자는 무려 약 800만명에 달했습니다. 독일 국민의 피해는 실로 막대했습니다. 그러니 독일 국민들이야말로, 탈나치화 조치를 두 팔 들어 환영하고 지지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밀조직, 은밀한 회합, 투옥, 위협, 강탈, 친척의 구속 등이 끊이지 않는다. 탈나치화 조치는 나치가 즐겨 쓰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착하고 정직한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나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집과 사무실을 염탐하며, 독일은 나치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 만하이머 모르겐(Mannheimer Morgen), 미국 점령지역의 한 신문, 1948년 5월 25일자


종전 직후이던, 1945년 경 50%를 넘던 탈나치화 조치에 대한 독일인의 찬성률은 몇 년 만에 10% 대로 떨어지고 맙니다. 독일의 침략과 압제에 시달리던 주변 국가의 국민이나 유태인이 들으면, 정말 당황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독일 국민은 이러한 탈나치화 조치에 대해서 반대하였고, (괘씸하게도) 자신들이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치 독일이 무너지자, 그들을 지배하던 괴상한 컬트적 사상과 정책은 금새 일소되었습니다. 하켄크로이츠를 비롯한 나치의 상징물은 철거되었고, 전체주의적 법과 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을 지지하던 국민들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진심으로, 일부는 습관처럼, 그리고 일부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서, 과거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기다리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신비주의 사상가였던, 그는 ‘히틀러의 이너서클(Hitler’s inner circle)’ 내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으며, 나치의 사상적 토대를 수립하고 실천했다. - United States Army(W) 제공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기다리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신비주의 사상가였던, 그는 ‘히틀러의 이너서클(Hitler’s inner circle)’ 내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으며, 나치의 사상적 토대를 수립하고 실천했다. - United States Army(W) 제공

이미 무너져 버린, 모래성을 지키던 자들의 반응


나치 독일이 무너진 후, 나치에 부역하던 수많은 독일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의 정체가 다 밝혀진 후에도, 더 이상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의 선전에 시달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 세계에 대한 믿음 체계, 그리고 삶의 근거지와 오래된 행동양식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었습니다. 나치는 이미 패망했지만, 독일 국민은 여전히 나치식으로 생각하고, 또 행동했습니다. 그들이 주로 보인 반응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죄가 없다. 그건 단지 실수일 뿐이다.
- “나치에 동조하는 글을 쓰기는 했다. 그러나 그냥 써본 글이 실수로 출판된 것이다.”


2. 나는 단지 속은 것뿐이다.
- “나치가 하는 말을 순진하게 믿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나치는 국가 자체였고, 나는 국가가 하는 말을 믿었다.”


3. 주변에서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다.
-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똑 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당연히 나도 그렇게 믿었다.”


4. 처벌이 공정하지 않다.
- “어떤 사람은 큰 잘못을 하고 조금 처벌받고, 나는 작은 잘못에 큰 처벌을 받는다. 이런 탈나치화는 공정하지 못하므로, 나는 처벌을 거부한다.”


5. 잘못된 전제로 처벌하고 있다.
- “독일의 모든 사람이 잘못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나의 무죄를 스스로 증명하라고 하지 말라. 당신이 나의 잘못을 증명하라.”


6. 당신들도 나치를 돕지 않았느냐?
- “영국 수상도 히틀러가 독일인에게 큰 선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느냐?”


7. 국가가 크게 발전을 하지 않았느냐?
- “나치 독일은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해서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 올림픽도 개최했고, 사람들은 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


8. 어쩔 수 없는 독일인의 사고방식이다.
- “독일인은 원래 정치적으로 순진하다. 시키는 대로 하는 국민성이 때문이다.”


9. 의견을 함부로 말하면 혼났을 것이다.
-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부당하다.”


10. 지식인들이 침묵해서 그렇다.
- “나치는 정치적으로 무능했고, 그로 인해 학자와 기술자, 과학자들이 사라졌다. 지식인들이 문제를 지적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11. 두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
- “내가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으면, 나는 직장을 잃었을 것이다.”


- Sträter, Artur (1948), Denazification에서 의역.


결국 이러한 반대와 반발로 인해서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과 잔재의 청산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실제로 종전 1년 후인 1946년 한 조사에서는, 독일인의 37%가 ‘유태인이나 폴란드 인에 대한 학살은 독일인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고 응답했습니다. 비슷한 수의 응답자가 ‘유태인은 아리안 족과 동일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심지어 무려 7년이나 지난 1952년의 한 조사에서, 세 명 중 한 명은 ‘유태인이 없으면 독일이 더 잘될 것이다’고 생각했고, 네 명 중 한 명은 ‘히틀러가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탈나치화 조치를 통해, SS 친위대가 학살한 800명의 노동자가 묻힌 장소를 강제로 참관하는 독일 여성. 그러나 수많은 독일인은 이러한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 Edward Belfer(W) 제공
탈나치화 조치를 통해, SS 친위대가 학살한 800명의 노동자가 묻힌 장소를 강제로 참관하는 독일 여성. 그러나 수많은 독일인은 이러한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 Edward Belfer(W) 제공

흔히 독일은 과거 청산을 잘 한 모범적인 국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로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다른 전범국가에 비해서, 과거에 대한 사과와 청산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독일인이 양심적이고 선량해서,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정부는 종전 후 수십년 이상, 아니 현재까지도 강력한 탈나치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흔들림 없는 조치를 끊임없이 지속해서, 겨우겨우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처럼 잘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입니다.


모래성이 무너진 뒤, 우리가 해야할 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이 한편으로는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고 말합니다. 불안과 무기력, 외로움에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은, 무엇인가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게 됩니다.

 

착취적인 사교집단이나 정당성을 잃은 권력집단에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내맡기는 것은, 불안과 외로움에서 해방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밀한 이너서클에 가입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지 돈과 권력이 탐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은밀히 지배하거나 혹은 은밀한 지배자에게 순응할 때 느껴지는, 그 편안하고 안락한 소속감은 우리를 무조건 순응하는 자동인형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른바 ‘아가르타(Agarta)’, 즉 지하세계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구의 내부, 깊숙한 어느 곳에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가르타’는 산스크리트 어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아가르타’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힘, 즉 지하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히말라야 혹은 남극에 ‘아가르타’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실제로 이곳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 번이나 히말라야에 원정대를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은밀한 이너서클. 지하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트바타바르의 여신(The Godness of Atvatabar)이라는 윌리엄 브래드쇼의 소설은 지구 내부 공동에 있는 지하세계, 즉 아가르타(Agarta)의 이야기이다. 지상세계를 지배하는 은밀한 지하왕국의 이야기는 수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무의식적 상징이다. - William Richard Bradshaw(W) 제공
아트바타바르의 여신(The Godness of Atvatabar)이라는 윌리엄 브래드쇼의 소설은 지구 내부 공동에 있는 지하세계, 즉 아가르타(Agarta)의 이야기이다. 지상세계를 지배하는 은밀한 지하왕국의 이야기는 수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무의식적 상징이다. - William Richard Bradshaw(W) 제공

컬트 집단은 겹겹이 쌓인 복잡한 의례와 서열, 비의적 규칙, 그리고 내부자에게만 공개되는 비밀 등으로 스스로를 신비롭게 포장하지만, 그 핵심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도자가 정말로 신통한 기적을 행하거나 혹은 아주 영리해서, 컬트 집단의 세가 점점 확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아가르타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던 지하세계가 어느 순간 ‘존재’하게 된 것 것입니다. 나치도, 인종주의도, 지하세계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정부도, 모두 인간의 불안이 일으킨 상상의 존재들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동안 의지하던 강력하고 은밀한 지배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혹은 그 지배자가 아주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커다란 정신적 공황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다른 가학적 집단에 자신을 의탁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환상이 깨어진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진정한 자유를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실존하는’ 땅, 미지의 세계(Terra Incognita)로 말입니다.

 

후 4줄 요약:

 

1. 사교집단과 결탁한 권력은, 내적 모순으로 인해 반드시 무너진다. 마치 모래성처럼.
2. 모래성은 무너질 수 있지만, 그것을 쌓아 올린 숙명적인 인간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3 .모든 인간은 안전한 이너서클, 은밀한 지하세계에 대한 강력한 무의식적 동경을 가지고 있다.
4. 고통스러운 실존적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다시 누군가 모래성을 쌓아 올릴 것이다.

 

※ 에필로그: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한 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분노하고 또 절망했습니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능한 쉽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쉽게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네요. 깊은 심연 속에 꽁꽁 감추어 둔 인간의 무의식을, 몇 마디 글로 다룬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컬트성을 가진 은밀한 권력집단은,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이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어두운 속성입니다. 따라서 이 컴컴한 지하세계의 그림자는 잠시 몸을 감추었다가, 이내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일 년 후에, 혹은 십 년 후에 이 글을 다시 뒤적이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문헌
에리히 프롬 (2012),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휴머니스트
Encyclopedia of psychology and religion (2010), Leeming, David Adams, Springer
Sträter, Artur (1948), Denazification.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260.
움베르트 에코 (2009),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열린책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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