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기자의 온도차 ②] 캘리포니아 국립공원 산불, 火는 火로 잡아라?

2016년 11월 07일 21:00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가 있는 곳,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세쿼이아(sequoia) 국립공원입니다. 이 곳의 상징은 국립공원의 이름 그대로 어마어마하게 큰 세쿼이아 나무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큰 세쿼이아인 ‘제너럴 셔먼 트리(General Sherman tree)’가 현재 지구상에 살아 있는 나무 가운데 단일 품종으로는 가장 큽니다.

 

‘제너럴 셔먼’이라는 이름은 미국 시민전쟁 당시 장군이었던 윌리엄 셔먼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셔먼 장군 밑에서 중위로 있던 박물학자인 제임스 울버톤(James Wolverton)이 1879년 이 세쿼이아에 제너럴 셔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1931년 제너럴 셔먼 트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라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현재 제너럴 셔먼 트리 높이는 83.8m, 나무 둘레는 31.3m, 나무 단면의 지름은 7.7m나 됩니다. 나이는 2300~2700년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에는 제너럴 셔먼 트리 외에도 고개를 뒤로 젖혀야 그 끝이 보일 만큼 거대한 세쿼이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 나무들 자체가 국립공원의 귀중한 자산인 셈입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상징인 자이언트 세쿼이아. - 툴레어=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제공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상징인 자이언트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들어서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끝이 보이는 거대한 세쿼이아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 툴레어=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연례행사’가 돼버린 대형 산불

 

그런데 얼마 전 흥미로운 보도가 나왔습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불을 지를 계획이라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일부러 국립공원에 불을 낸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국립공원과 산불은 최악의 조합으로 꼽힙니다. 미국의 국립공원 규모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 부지는 1635.19㎢에 이릅니다. 광활한 국립공원 어딘가에서 시작된 불길은 쉽게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주변 마을까지 번져 피해를 입히는 일도 많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가뭄으로 바짝 마른 캘리포니아 주 국립공원의 산불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2013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생한 ‘림 산불(Rim Fire)’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생한 역대 산불 중 세 번째 최악의 산불로 꼽힙니다. 당시 산불은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San jose), 오클랜드, 새크라멘토를 다 합친 면적만큼 태웠고, 이 불을 잡기 위해 투입된 소방관은 9000여 명, 비용은 9000만 달러(약 1029억 원)가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대형 산불은 2000년대 들어 사실상 ‘연례행사’가 되고 있습니다. 산불을 잡는 데 투입되는 사회경제적인 비용도 엄청납니다. 2009년에는 텍사스 주에서 맨해튼 10개에 맞먹는 면적이 불타 4억530만 달러(약 원)의 피해를 입혔고, 2011년에는 텍사스 주에서 5600여 가구가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2013년에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500여 가구가 이재민이 됐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산불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비용도 점차 늘어난다는 겁니다. 2000년대 들어 미 정부가 산불 진화에 투입한 예산은 1990년대의 3배에 이릅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상징인 자이언트 세쿼이아. - 툴레어=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제공
세쿼이아 국립공원을 걷다 보면 불에 검게 타 쓰러진 세쿼이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는 산불이 발생했다. - 툴레어=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불로 불을 잡는다

 

산불이 번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을 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간 미국 산림청(U.S. Forest Service)은 국립공원에 불이 날 경우 소방관을 투입하는 등 강제적으로 불을 끄는 방침을 오랫동안 유지해왔습니다. ‘불이 나면 끈다’는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정책입니다. 일단은 산불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식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정책이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의 ‘건강’도 악화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불은 비와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구성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소나무의 솔방울 껍질이 불에 타서 녹으면 그 안에 들어 있던 씨앗이 퍼지고, 이는 결국 소나무 종자 번식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생태학자들은 불에 타고 남은 죽은 나무들이 다음 번 산불이 발생할 때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해 높은 나무에까지 불이 번지도록 부채질한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이전에 강제로 불을 끄면서 생긴 죽은 나무들이 다시 타들어가면서 조금 타오르다 꺼질 산불이 더 큰 산불로 이어지고 국립공원 전체를 훼손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 산림청은 ‘산불로 산불을 끄는’ 정책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마치 약을 처방하듯 국립공원에 산불을 처방한다는 의미로 이를 ‘Prescribed Burn’이라고 부릅니다. 국립공원의 정해진 지점에 불을 내고 2~3일 동안 타 들어가게 한 뒤 불을 끄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세쿼이아 국립공원에서 산불이 발생했는데, ‘산불 처방’을 미리 진행해놓은 덕분에 산불이 크게 번지지 않은 것으로 최근 확인됐습니다. 게다가 오히려 산불 자체가 국립공원의 생태계 전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미 불에 한번 데인 세쿼이아 나무에는 빈 공간인 공기 주머니가 많이 생겨 있어 불씨가 쉽게 전달되지 않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또 세쿼이아 나무가 타면서 그 결과 수백만~수천만 개의 씨앗이 땅에 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2011년 애리조나 주의 ‘월로우 산불(Wallow Fire)’이나 2012년 오레건 주의 ‘폴 크릭 산불(Pole Creek Fire)’ 등도 산불 처방을 미리 진행한 덕분에 최악의 피해는 막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상징인 자이언트 세쿼이아. - 툴레어=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제공
불에 탄 흔적이 남은 세쿼이아. 세쿼이아 표면을 주먹으로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속이 비어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빈 공간이 많이 만들어지면 산불이 쉽게 옮겨가지 못한다. - 툴레어=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1도 상승하면 산불 위험 35% 증가

 

국립공원의 산불 대응 전략이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상학자들은 21세기 말이 되면 미 서부의 평균온도가 4~6도 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평균온도가 1도 올라가면 산불이 일어날 확률은 35% 늘어납니다. 산불 처방 프로그램을 통해 국립공원이 산불에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입니다.

 

산불 처방 프로그램이 가야 할 길은 멉니다.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불을 다스리겠냐는 겁니다. 소방관들이 산불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도 있습니다. 일례로 2000년 뉴멕시코 주에서는 산불 처방을 하던 도중 불이 다른 구역까지 번져 400가구가 불에 탄 사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불 처방이 현재로서는 국립공원을 장기적으로 산불에서 보호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강조합니다. 한 산림 전문가는 올해 5월 미 공영라디오 방송 NPR에서 현재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상태에 대해 얘기하면서 “산불 처방을 지속하는 것이 어린 세쿼이아 나무가 1000년 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밝혔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얼바인=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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