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 출세하는 더러운 세상! 살고싶지 않아요. 어떻게 할까요?

2016년 11월 14일 15:00

▶ 고민

자기가 책임질 일은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공은 혼자 독차지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늘 칭찬을 받습니다. 이러한 고충을 윗선에 보고하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저기 자기 편도 많아서, 자칫하면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은 하지 않으면서 매사를 적당한 거짓말과 책임 돌리기로 일관하니, 결국 뒷수습은 다른 성실한 동료 몫일 뿐입니다. 같이 억울해 하던 주변 동료들도 이제는 이 친구가 ‘대세’라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그 사기꾼 같은 녀석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열심히 일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모든 인간의 깊은 마음 속에는 공통의 사기꾼 원형, ‘트릭스터(trickster)’가 있다.
2. 긴 사회적 적응의 과정을 통해서, 타인을 기만하기 위한 심리적 모듈이 진화하였다.
3. 하지만 보다 강력한 심리적 모듈, 즉 ‘사기꾼 탐지 모듈’이 같이 진화하였다.
4. 사기꾼의 짧은 성공에 혹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전략을 취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이다.


 

▶ 답변

사기꾼이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좁게는 학교와 직장에서부터, 넓게는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기꾼’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습니다. 도덕군자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거짓과 잘못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오히려 정반대인 것만 같네요. 명백한 거짓말과 분명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뭐가 문제라는 거냐!’라고 큰 소리치는 사람들이 큰 보상을 받으며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심지어는 초강대국의 대통령도 되는 현실입니다.

 


사기꾼 원형, 트릭스터


사실 이러한 사기꾼 기질은 ‘모든 인간의 깊은 심성’에 자리잡은 공통된 원형입니다. 이를 흔히 ‘트릭스터(Trickster)’라고 합니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신화적 원형입니다만,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서부 아메리카 원주민의 ‘코요테(Coyote)’ 이야기입니다.

 

이 코요테는 여성을 유혹하는 전문가일 뿐 아니라, 항상 필요한 것 이상으로 음식을 훔칩니다. 이를 위해서 강물도 바꾸고 지형도 변화시키는 술법을 부리지요. 사기와 계략을 꾸미고, 마법을 부리는 비도덕적이고 탐욕적인 존재가 바로 트릭스터입니다.


재미있게도 트릭스터는 자신의 ‘외양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화적으로는 ‘샤먼(shaman)’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늘 기발한 꾀와 천재적인 계략으로 남의 것을 빼앗고 사람들을 조종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인간의 ‘창조성’, 그리고 ‘문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자연의 위대한 창조력에는 비할 수 없지만, 인간이 문화를 통해 성취하는 작은 창조를 뜻합니다. 샤먼이나 창조, 문화라고 하니, 뭔가 연상되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만…….

 

아메리칸 인디언 신화에 등장하는 트릭스터, 코요테 (Coyote), 기발한 잔꾀를 부려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만, 거의 항상 자신과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고 만다. - F.N. Wilson (1915) 제공
아메리칸 인디언 신화에 등장하는 트릭스터, 코요테 (Coyote), 기발한 잔꾀를 부려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만, 거의 항상 자신과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고 만다. - F.N. Wilson (1915) 제공

기만 전략의 진화심리학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 이는 사실 인류가 오랜 적응을 통해서 진화시킨 고유한 심리적 형질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모두, 잔 꾀를 부려서 이익을 취해본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한번쯤이 아니라, 아마 거의 매일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골적으로 새빨간 거짓말과 악의적인 계략을 꾸미지는 않더라도, ‘소소한’ 거짓말과 ‘얕은’ 꾀는 사실 우리의 일상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취업시에 내는 이력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은 경력은 크게 부풀리고, 안 좋은 과거는 슬쩍 숨깁니다. 이력서 작문이라는 ‘문화적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모습의 자신’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만 전략은 집단 사회에서 대단히 유리합니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예외적인 수준의 높은 사회성을 보입니다. 아주 복잡한 계층화와 분업화를 이루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한 집단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사기꾼’ 전략을 통해 자신의 희생은 최소화하면서, 전체 집단의 이득은 나누어 가지는 개체는 아주 유리해집니다. 속된 말로 ‘사기 못 치는 놈이 바보’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꾀를 부려서 남을 속이는 것을 좋아하고 즐깁니다. 꾀쟁이 생쥐가 큰 고양이를 골탕먹이는 식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있는 만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재적인 계획과 기발한 작전을 세워, 용감하게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도둑들’이라는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사실 나쁜 절도범일 뿐이지만, 관객은 배우들에게 자신을 투사시키며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그들의 ‘도둑질’이 부디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음을 졸입니다.

 

영화 ‘도둑들’, 사람들은 남을 기만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보편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종종 큰 인기를 얻는다. - 쇼박스 제공
영화 ‘도둑들’, 사람들은 남을 기만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보편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종종 큰 인기를 얻는다. - 쇼박스 제공

사기꾼 탐지 모듈의 진화


그러나 기만 전략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전략입니다. 어떤 행동 전략이 지속적으로 집단내에서 유지될 수 있을 때, 이를 ESS (Evolutionary Stable Strategy,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기만 전략은 집단 내에 협력적인 개체가 훨씬 많을 때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기꾼이 어느 정도 이상 많아지면, 집단은 무너져 버립니다. 즉 기만 전략은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전략입니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사기꾼 전략을 억지하는, 사기꾼 탐지 모듈 (cheater-detection module)이 동시에 진화하였습니다. 남을 기만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은 기만 당하지 않으려는 전략이죠. 실제로 한번 속은 사람에게, 다시 속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기만을 당한 경험은, 절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자발적으로 알립니다. 게다가 이러한 가십(gossip), 즉 뒷담화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사실 아주 재미있게 느끼도록 진화했습니다. 물론 이런 점을 역이용해서, 모략을 꾸미는 사기꾼도 있습니다만.


그런데 왜 이렇게 사기꾼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일까요? 현대 사회는 이러한 진화적 게임이론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만 전략이 성공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첫째 집단의 구성원이 자주 바뀔 때, 둘째 (위협이나 강압적인 통제를 통해) 집단 내의 정보 확산이 원활하지 않을 때, 셋째 (개명, 변장, 신분세탁 등으로) 사기꾼 개체가 자신의 정체를 잘 위장할 때, 넷째 소속된 집단을 변경할 의사가 있을 때 (즉 크게 한 탕하고 도망가려고 할 때) 등입니다. 그래서 종종 사기꾼들은 도리어 피해자에게 협박을 하곤 합니다.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름도 바꿉니다. 직장도, 종교도, 사는 곳도 바꾸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을 계속 바꿉니다. 외국에도 나가고, 심지어는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도 바꿉니다. 

 

제삼자 처벌, 즉 이타적 처벌 시 활성화되는 대뇌 쾌락 중추, 인간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때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네이처 뉴로사이언스). - Joshua W Buckholtz & René Marois (2012) 제공
제삼자 처벌, 즉 이타적 처벌 시 활성화되는 대뇌 쾌락 중추, 인간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때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네이처 뉴로사이언스). - Joshua W Buckholtz & René Marois (2012) 제공

내 안의 다크사이드 길들이기


하지만 기만 전략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전략 자체의 내적 속성이 모순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만 전략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그 전략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납니다. 아무리 자신을 숨기고, 이름을 바꾸고 혹은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겨도, 점점 넓은 집단의 많은 사람에게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무리 강압과 위세를 통해서, 이러한 정보의 확산을 억제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집단 내에 가십이 점점 퍼져 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는 언론이 가십에 대한 정직한 중개자의 기능을 합니다.


이에 더해서 인간은 이러한 사기꾼, 즉 무임승차자 (free-rider)를 혼내 주는 이른바 제삼자 처벌 (third-party punishment) 혹은 이타적 처벌의 심리적 모듈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이러한 이타적 처벌이 과연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실재 그런 모듈이 존재하는 것은 맞는 듯 합니다. 사기꾼이 처벌받으면 대뇌 속 쾌감중추가 활성화됩니다. 그 사기꾼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심지어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이러한 사기꾼을 찾아내서 벌 주려고 합니다. 나쁜 사람이 성공하면 분이 나고, 그들이 처벌받으면 기쁨을 느낍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불의에 타협치 않고 의를 구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변에서 얕은 꾀를 부리며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억울하고 화가 납니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사실 이러한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나 트릭스터의 원형은 인간의 보편적 심성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 (Karl Gustav Jung)은 트릭스터에 대해서, 인간의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인 무의식의 어두운 부분, 즉 “다크사이드” (primitive, irrational dark side of the unconsciousness)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칼 융은 트릭스터가 인간의 창조성과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하였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꾀는 사기꾼으로 처벌받지만, 적절하게 통제된 꾀는 지혜로운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됩니다. 사기꾼 전략은 반드시 그 내적 속성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역사, 그리고 지금 우리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크 사이드에 넘어가지 말고, 자신 안의 트릭스타를 잘 길들여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안의 다크 사이드. 촉망받던 제다이,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자신 안의 다크사이드를 통제하지 못하여, 결국 다스 베이더가 되고 만다. - Mon0Lith (2008) 제공
우리 안의 다크 사이드. 촉망받던 제다이,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자신 안의 다크사이드를 통제하지 못하여, 결국 다스 베이더가 되고 만다. - Mon0Lith (2008) 제공

에필로그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에서 다스 베이더에 대해 묻는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스승 요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어두운 힘은 결코 강하지 않습니다.


루크: 베이더… 다크사이드가 더 강한가요?
[Luke: Vader… is the dark side stronger?]
요다: 아니, 아니, 아니. 더 빠르고, 쉽고, 유혹적일 뿐.
[Yoda: No, no, no. Quicker, easier, more seductive.]

 


※ 참고문헌
Buckholtz, Joshua W, and René Marois (2012) The Roots of Modern Justice: Cognitive and Neural Foundations of Social Norms and Their Enforcement. Nature Neuroscience 15(5). Nature Research: 655–661.
Fehr, Ernst, Urs Fischbacher, J. Andreoni, et al. (2004) Third-Party Punishment and Social Norms.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25(2).
Jung, C.G. (1969). Archetypes of the collective unconscious (Vol. 9, Pt. 1).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Jung, C. G. (1969). Four archetypes: Mother/rebirth/spirit/trickster.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Leeming, David A (2015) Encyclopedia of Psychology and Religion. Springer
(본 칼럼의 주제는 정신분석가 박신 선생님의 조언에 영감을 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편집자주: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뉴스를 보면 도처에 안좋은 소식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 중장년 층은 노후 걱정에 노심초사합니다. 경제, 정치 심지어 날씨까지 우리 편은 없어 보입니다. 본지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한번쯤 고민할 법한 주제를 선정, 지면을 통해 상담을 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마음에 품고 사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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