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 인터넷 신조어] 판사님 저는...읍읍

2016년 11월 25일 13:40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관용어] 인터넷에서 수위가 높은 발언을 보았을 때, 해당 게시물을 보았지만 그 게시물로 인한 피해는 입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현하는 관용구

 

[연관 표현] 오늘만 사는, 코렁탕,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고양이가 타자를 쳤나봐요

 

인터넷에서 유머를 빙자한 특정인에 대한 강도높은 모욕, 음란,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 등을 접했을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게시물이 웃고 넘길 수준을 넘어 모욕이나 명예훼손,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저촉 소지가 있을 때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댓글을 달면 적절하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합성 사진. 모욕과 유머, 비판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위 높은 발언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합성 사진. 모욕과 유머, 비판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위 높은 발언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 댓글을 다는 행위는 게시물을 읽고 암묵적으로 동감하며 함께 즐겼지만 처벌은 피하고 싶다는 마음, 순수하게 글을 올린 사람의 처벌 가능성을 걱정하는 마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자기 검열을 유도하는 공권력에 대한 역설적 반항 등 다양한 의미를 포괄한다. 세계적 IT 강국으로서 그 어느 나라보다 격렬한 키보드 배틀과 인터넷 사건사고를 겪은 한국 네티즌들의 섬세하고 중층적인 의식 세계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5년 상반기 일베에서 처음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베에서는 강도 높고 적나라한 표현이 일상적이라 모욕 및 명예훼손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소송을 하거나 당하면 그 과정을 인증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만큼 보다 절박하게 댓글로 '소송 후'를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키보드 배틀이 일상화된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나 아슬아슬한 수위의 발언이 수시로 나오는 포털 뉴스 댓글란 등에 쓰이면서 급격히 퍼져나갔다.

 

'판사님'을 언급하는 이 댓글의 유행은 2013년 SBS에서 방송된 '학교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와도 연관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소년법원 판사는 학교폭력 혐의로 재판정에 서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비는 가해 학생들에게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S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이 사진을 판사님 드립과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 SBS 화면 캡처 제공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S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이 사진을 판사님 드립과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 SBS 화면 캡처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는 댓글은 짧은 시간 안에 인터넷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판사님 드립'이라는 서브 장르를 만들었다. '판사님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판사님 저는 문맹입니다' '판사님 저는 시신경이 없습니다' 등 다양한 변형이 나왔으며, 반대로 '판사님도 솔직히 웃기지 않습니까'라며 역공하는 댓글도 등장했다. 

 

비슷한 표현으로 '고양이가 타자를 쳤나 봐요'도 있다. 소녀시대 태연이 악플러를 고소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악플러들이 태연의 SNS에 선처를 호소하는 글들을 남겼는 바 그 중 하나에서 유래했다. 이 네티즌은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고양이가 우연히 타자를 쳤나봐요. 악플은 고양이가 단 거예요”라고 댓글을 남겼다.

 

소녀시대 태연의 악플 대응을 다룬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소녀시대 태연의 악플 대응을 다룬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고양이 변명' - KBS 화면 캡처

'판사님' 댓글이 달리려면 먼저 '오늘만 사는' 게시글이 있어야 한다. 키보드 배틀의 상대방이나 이슈가 된 연예인, 논란의 정치인들에게 앞뒤 가리지 않고 모욕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면 '이분 최소 오늘만 사시는 분'이라는 평을 듣는다.

 

'판사님 드립'은 인터넷에서의 논란과 논쟁이 법정으로 이어지는 일이 일상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사이버 수사대는 쏟아지는 온라인 명예훼손 사건의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인터넷에서 험한 소리를 쏟아내던 사람들은 몇십 만원에서 몇백 만원의 벌금을 받는다. 표현과 논쟁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소화하지 못 하고 판사님의 법률적 판단에 의존하는 현실이 한국의 열악한 공론장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물론 실제 모욕죄로 고소당했을 경우 '판사님...' 운운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은 처벌을 피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우회적으로 더 조롱한 것으로 간주되어 양형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생활 속 한마디]

A: 트럼프와 김정은이 손잡고 ISIS를 격파한 후 공동 세계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B: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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