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이유

2016년 11월 30일 09:00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고 약자를 억누르려고 하는 현상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예컨대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백인 특히 남성들이 성차별 발언과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은 트럼프 후보에 몰표를 던지다시피 한 일에 대해서는 백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하려한 발버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정당에 투표하는 것 역시 세금을 덜 내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이야기 된다.


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왜 약자들이, 유색인종들이 인종차별을 내세우는 후보를 지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축소하자는 정당을 지지하냐는 것이다.

 

 

GIB 제공
GIB 제공

이전에 미국에서 한 히스패닉계 남성이 공공장소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불법 이민자들이 아주 큰 문제이며 이들을 전부 내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이민자를 반대하는 정서가 생기면 가장 큰 불이익을 볼 대상들이 히스패닉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왜 본인에게 불리할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가 정말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나는 불법 이민자가 아니다. 나는 미국의 적이 아니다. 나는 너네 편이야”였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불법 이민을 반대하고 백인들 입장에서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이민자들이랑 달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약자’임을 주지시키면 약자들에게 불리하고 기득권에게 유리한 인식들을, 논리적으로는 거부해야 할 것 같지만, 되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친’기득권 세력이 되어 콩고물이라도 얻는 것이 싸우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유리한 생존방식이기 때문일까?


관련 실험을 살펴보자(Craig et al., 2012). 조건은 두 개로, 한 조건은 차별을 당하는 조건이고 다른 한 조건은 통제조건이었다. 차별을 당하는 조건에서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의 임금 격차라던가 직장내 성추행이라던가 하는 글들을 읽게 하고 통제 조건은 일반 기사문이나 과학 관련 글을 읽게 했다. 그 후 차별 조건의 여성들이 다양한 인종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반응은 무의식적인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 각 인종에 관련된 단어를 보고 이어 긍정적 단어와 부정적 단어를 봤을 때 그 반응 속도를 통해 측정했다.


컴퓨터 화면에 각 인종(흑인, 라틴계, 백인)과 관련된 단어들과 중립적인 단어들(자동차, 집 등)이 나타났다. 그 후 긍정적인(아름다운, 좋은) 또는 부정적인 단어(이상한, 나쁜)들이 나타났다. 참가자들의 과제는 인종 단어나 중립적인 단어들이 지나간 후 나오는 긍정적/부정적 단어에 따라 긍정적이면 키보드 상의 어떤 버튼(예컨대 H)을, 부정적이면 또 다른 버튼(예컨대 G)을 누르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있어 흑인이 긍정적인 이미지라면 '흑인' 이라는 단어가 나온 후에 '아름다움' 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키보드에서 H 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빠를 것이고 나쁜 이미지라면 속도가 느릴 거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이런 방법은 어떤 대상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인식을 직접적으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특히 인종 문제의 경우 다들 겉으로는 좋다고 응답할 가능성이 높음) 간접적인 방법으로 많이 쓰인다.


그 결과 통제 조건의 여성들은 인종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에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차별 조건의 여성들은 인종에 있어 주류 집단인 '백인'에게 특히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백인 관련 단어 후에 긍정적인 단어가 나타났을 때 'H 버튼'을 제일 잽싸게 눌렀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추가로 한 두 개의 실험에서도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연구자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되면 (social identity threat), 즉 약자가 되면, 그 위협을 방어하고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집단과 가치관에 편승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자가 명예기득권이 되는 현상이 부분적으로는 이렇게 나타나는 것인가 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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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오랜 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기의 집단 정체성을 싫어하게 된다는 연구들도 있었다. 예컨대 “흑인이지만 나도 흑인이 싫어”, “여자지만 나도 여자가 싫어” 등 이렇게 사회 전체가 오래 쏘아 온 부정적인 시선이 ‘내면화’된 사람들의 경우 노화의 한 지표가 되는 세포의 텔로메어 길이(leukocyte telomere length)가 짧은 등 ‘노화’가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었다(Chae et al., 2014).


약한 것보다 강한 것이 끌리기 마련일 것이다. 자신이 약하다면 강한 무엇과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본능적일지 모른다. 약자들과 연대하기보다 나는 쟤네들과 다르다며 선을 긋는 게 더 손쉬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그랬겠지만 앞으로의 과제는, 이런 각자도생의 길보다 연대를 선택할 유인을 주는 것, 더 쉽게 연대할 길을 열어주는 것, 약자지만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서로 지지해 주는 것, 약자들이 승리하는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참고문헌
Craig, M. A., DeHart, T., Richeson, J. A., & Fiedorowicz, L. (2012). Do unto others as others have done unto you? Perceiving sexism influences women’s evaluations of stigmatized racial group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8, 1107-1119.
Chae, D. H., Nuru-Jeter, A. M., Adler, N. E., Brody, G. H., Lin, J., Blackburn, E. H., & Epel, E. S. (2014). Discrimination, racial bias, and telomere length in african-american men. 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46, 103-111.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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