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맥주생활 (11)] 시장에 가면 맥주도 있고

2016년 12월 02일 13:30

어제는 맥주에 치킨, 오늘은 피자, 내일은 소시지…


이게 아니라면 버거와 감자튀김, 나초칩이겠지. 이제 수제맥주 전문점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안주를 주문할 수 있다. 물린다 물려. 이렇게 큰 접시에 안주는 밤톨만큼 주고 가격은 또 왜 이렇게 비싼지…


어제 갔던 수제맥주집이나 오늘 온 곳이나 비슷한 분위기에 한결 같은 메뉴. 좌석이 꽉 찰 때 쯤이면 기름 냄새가 펍 안에 진동해 맥주의 향도 제대로 맡을 수 없다. 지겹다. 아무리 천상의 조합이라지만 ‘치맥’도 ‘피맥’도 더 이상은 못 먹겠다.


매콤한 닭발이나 오돌뼈에 향긋한 페일에일 맥주를 마시면 어울릴 것 같은데… 스타우트와 순대, 간은 어떨까. 접시 위로 푸짐하게 올라와 있는 안주를 배 두드리며 먹고 싶다.

 

 

까마귀브루잉 제공
까마귀브루잉 제공

천편일률적인 안주에서, 펍 분위기에서 이제는 벗어나보자. 답은 수제맥주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전통시장에 있다.


최근 전통시장에 자리잡은 수제맥주 펍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 일환으로 젊은 층의 발길을 모으기 위해 시장과 수제맥주가 결합된 것이다.


특히 이들 ‘시장 수제맥주 펍’들은 주변 상인들이 판매하는 시장 음식을 맥주 안주로 제공해 기존 펍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순대와 인디아페일에일(IPA)’, ‘닭발과 헬레스’와 같은 나만의 ‘맥주+안주’ 조합을 만들어보는 맛이 있다.


게다가 시장이라니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도 적다. 정작 음식보다 그릇이 큰 비싼 안주에 분노할 필요가 없다. 펍이 맘에 안 든다면 시장 골목에서 뜨끈한 오뎅 하나, 호떡 하나 먹고 시장 구경하고 오면 그만.

 


뚝도시장에서 홍어와 수제맥주를


먼저 작은 식당이나 공방, 문화 공간 등이 생겨나 요즘 ‘제2의 연남동’으로 뜨고 있는 성수동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뚝도시장’에는 수제맥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펍 ‘슈가맨’이 있다. 성동구청의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으로 탄생한 일곱 곳의 ‘청춘상회’ 중 한 곳이다.

 

 

서울 성수동 뚝도시장 ‘슈가맨’(좌), 삭힌 홍어와 수제맥주(우) - 슈가맨 제공
서울 성수동 뚝도시장 ‘슈가맨’(좌), 삭힌 홍어와 수제맥주(우) - 슈가맨 제공

지도 앱에서는 고작 몇m 앞에 목적지가 있다고 알려주지만 ‘과연 내가 제대로 온 것일까’ 의문을 품고 한참 주변을 맴돌게 된다. 지도 앱이 알려주는 골목에는 절대 수제맥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의구심을 이겨내고 몇 걸음 더 나아가면 ‘성수제맥주 슈가맨’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슈가맨에는 페일에일, 필스너, 바이젠 등 다양한 수제 생맥주와 50여종의 병맥주가 준비돼 있고 시장 주변 가게들에서 홍어와 순대, 도가니찜, 회, 즉석떡볶이, 돈까스 등을 시켜서 먹을 수 있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들 안주와 맥주의 조합이 놀라울 만큼 좋아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페이스북(www.facebook.com/st.sugarman)을 잘 지켜보면 ‘홍어와 어울리는 맥주 시음회’ 등 특색 있는 이벤트를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다. 펍 옆에는 바틀샵도 있어서 신선한 맥주를 마신 후 양손이 무겁게 맥주병을 들고 보람차게 집에 돌아올 수도 있다.

 


청량리시장에서 장어와 수제맥주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청과물시장. 사방에 산처럼 쌓여있는 과일과 채소를 지나 겨우 발견한 유리문. ‘상생장’이라고 써 있는 이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서울 제기동 청량리시장 ‘상생장’(좌), 중국음식과 수제맥주(우) - 청량사이다 제공
서울 제기동 청량리시장 ‘상생장’(좌), 중국음식과 수제맥주(우) - 청량사이다 제공

빈티지한 분위기의 내부에 높은 천정, 벽과 주변에 전시돼 있는 미술 작품들… 영화에서 봤던 미국 브루클린 같은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진다.


푸드코트에서 민물장어, 중국음식, 미트볼, 치킨 등 안주를 고르고 국내 8개 양조장의 맥주가 모여있는 ‘청량리수제맥주협동조합’의 맥주를 골라 이 곳에서 먹으면 된다. ‘장어덮밥과 맥주’, ‘탕수육과 맥주’… 딱 내가 바라던 조합이다.


이곳에서는 시시때때로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나 공연, 벼룩 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www.facebook.com/sangsaengjang 참고) 동대문구 일대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옥상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은 마음을 뻥 뚫어준다. 

 


오색시장에서 탄생한 수제맥주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 오색시장에는 맥주 양조장 ‘까마귀브루잉’이 들어서 있다. 중소기업청과 오산시의 문화관광형 시장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이 곳에서는 페일에일 맥주인 ‘오로라’와 스타우트 ‘까마귀’가 만들어진다.

 

 

경기도 오산시 오색시장 ‘살롱드공공’(좌), 야시장 먹거리와 수제맥주(우) - 살롱드공공 제공
경기도 오산시 오색시장 ‘살롱드공공’(좌), 야시장 먹거리와 수제맥주(우) - 살롱드공공 제공

오색시장은 밤에 가는 게 제 맛이다. 활발한 야시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야시장에서 오징어 구이 등 간식이나 양꼬치, 팟타이 등을 사서 시장 내 펍인 ‘살롱드공공’으로 가져와 맥주를 주문해 먹으면 된다. 오로라 페일에일은 팟타이와, 까마귀 스타우트는 양꼬치와 만나 조화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맥주 관련 여러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도 오색시장만의 매력이다. 지난 10월에는 다른 국내 양조장들도 참여하는 ‘야맥축제’가 개최됐고 개인들이 만든 맥주로 경쟁하는 ‘홈브루잉 챔피언십’이 열렸다. 살롱드공공 펍에서는 음악인들의 공연도 수시로 진행된다. 자세한 정보는 까마귀브루잉 페이스북(www.facebook.com/crowsbrewing)과 살롱드공공 페이스북(www.facebook.com/salongonggong)을 참고하면 된다.


맛깔 난 시장 음식으로 배도 한껏 채웠겠다, 얼큰히 취기도 올라오겠다 기분 최고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떨이로 파는 애호박이라도 몇 개 담아가면 술주정을 부리더라도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1일 1맥’ 추천맥주>

 

위치우드 브루어리 제공
위치우드 브루어리 제공


이름 : 홉고블린 골드(Hobgoblin Gold)
도수 : 4.5%


1841년 설립된 영국의 위치우드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맥주. 일반적으로 영국의 에일 맥주가 잔잔한 홉향을 드러내는 데 비해 홉고블린 골드는 미국 스타일처럼 오렌지, 포도 등 과일향기와 꽃향기를 뿜어낸다.


위치우드 양조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마녀고, 이 맥주에는 중세 유럽의 요정인 홉고블린 캐릭터가 라벨에 그려져 있어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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