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45] ‘스팸 전화’의 딜레마

2016년 12월 24일 18:00

언제부턴가 나는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 받지 않는다. 대부분 스팸 전화이기 때문이다. ‘스팸’(Spam: spiced pork and ham)이라는 말은 80년 전에 미국의 한 식품 업체에서 훈연한 햄을 통조림으로 만든 제품 이름이다. 당시에 이 신제품을 엄청나게 광고하면서 ‘광고 공해’라는 비난을 받았고 그 후 그 뜻이 상징화되어 오늘날에도 스팸 메일, 스팸 전화 등으로 쓰이는 것이다. 밥반찬이 마땅찮을 때 프라이팬에 살짝 굽거나 김치찌개에 넣어 끼니를 간편하게 때울 수 있는 요긴한 통조림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간섭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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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고 공해’ 전화가 내게는 하루에 보통 네댓 통은 걸려오는데 그 대부분은 대출 안내이거나 인터넷 전환 가입 권유 내용이다. 스팸 전화 차단 어플로 여과시키고 있음에도 그 방패의 크기가 태부족인지 매일같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스팸 화살은 도무지 막을 방도가 없어 보인다. 특히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나 혼자 무언가에 몰두해 있을 때 걸려오는 그 전화는 짜증이 날 정도로 성가시다. 그런 전화번호는 15**-****도 있지만 대개는 070으로 시작되기에 그 발신 번호가 화면에 뜨면 습관적으로 나는 곧바로 지워버린다.


어쩌면 스팸 전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가할 때는 통화 버튼을 눌러보지만 여지없이 여성 음성으로 제작한 기계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쏟아져 나오거나, 수신자와 연결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발신자는 황급히 앵무새 대본을 읽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통화 종료 버튼으로 손가락을 옮겨 가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발신자의 간절하고 집요한 목소리는 계속되다가 마치 라디오 전원이 꺼지듯 이내 닫힌다. 전동 열차 칸들을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팔려는 잡상인들처럼 스팸 전화 발신자들도 매번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데 허탕을 치겠지만 간혹 성과도 있기에 줄기차게 무작위로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런 텔레마케터에게는 전화 통화가 돈벌이의 수단이겠지만 그의 권유에 무관심하거나 소비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는 대다수의 수신자는 짧든 길든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발신자의 성공 확률의 배경이 될 뿐이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수신자는 어떤 서비스 이용 계약을 하면서 개인 정보 사용 동의를 했거나 그곳에서 불법으로 유출된 개인 정보가 누군가의 손끝에서 사용돼 매일같이 다수인의 전화기를 진동시키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많은 이들은 나처럼 ‘070’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다른 피해자들도 있다. 텔레마케팅과 무관하지만 ‘070-’ 번호로 등록한 사업체들이 그렇다. 그들은 이런 기피 현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신용으로는 전화 사용을 하지 않거나 숫제 전화번호를 바꾸기도 한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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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피해와 오해를 최대한 해소하기 위해 이런 통신 제도를 법제화하면 어떨까. 발신처가 사업자라면 통신 과정에서 그 상호를 무조건 노출케 하는 것 말이다. 요즘엔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화기에 화면이 부착돼 있어서 발신자 번호가 드러나니 아예 발신처의 명칭을 노출할 수 있다면 수신자가 통화 여부를 쉽게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발신 사업체의 업태와 종목도 드러내게 한다면 수신자가 상호만으로는 판단되지 않는 난점을 많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개인 명의의 전화로는 텔레마케팅을 못 하게 규제하면 스팸 전화량을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의 끝에서 ‘인색’(吝嗇)이라는 말이 떠오르니 난감하다. 세상에는 감정노동을 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생활인들이 또 많을 테니 이렇게 규제 방법을 떠올리는 것이 고단한 밥벌이에 나선 텔레마케터들에게는 참 야박한 발상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더구나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끼치는 불편함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신자가 발신자에게 일삼는 언어폭력도 있으니 삶이란 이렇게 얽히고설켜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생활의 탄식과 고충은 함부로 단언할 수 없을 테다. 그러니 다시 나로서는, 수신자가 “사양합니다” 하면 “실례했습니다” 하고 서둘러 통화를 종료하길 바랄 수밖에…….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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