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의 신경인류학 에세이] 2016년 당신은 ‘행복’했습니까?

2016년 12월 31일 10:30

▶ 고민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기억만 가득합니다. 이제 2016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해에 세웠던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행해진 것만 같습니다. 직장 일도, 연인과의 사랑도 꼬이기만 합니다. 게다가 나라가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정말 암담한 심정입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2. 행복의 요인, 그리고 행복의 가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
3.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와 공정성은 행복을 위한 필수전제조건이다.
4. 행복은 개인적 경험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결과이기도 하다.

 


▶ 답변

참 힘겨운 한 해였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청년 실업은 이제 어느 정도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고, 젊은 세대는 점점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들은 하는 수 없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있고, 인간 관계도 점점 협소해지곤 합니다. 사회의 문제가 전통적인 삶의 주기마저 뒤바꾸고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해결될 희망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포커스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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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 불행한 나라


올해 3월 16일 유엔 자문기구 중에 하나인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SDSN)는 세계 157개국을 대상으로 이른바 “2016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16)을 발표했습니다.

 

국내 총생산, 건강 기대 수명,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 개인적 자유, 사회적 지지 등 다양한 요인을 평가해서 산출한 이 행복 지수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였습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등도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58위에 불과했습니다. 세계 11위권의 경제 수준 등을 고려하면, 정말 낮은 순위입니다.


유니버섬(Universum)이라는 한 리서치 회사의 직장인 행복 지수조사에서는, 총 57개국 중 49번째 국가로 꼽혔습니다. 직장인의 만족도나, 직장을 타인에게 추천할 것인지, 혹은 곧 이직 계획이 있는지 등의 문항으로 시행된 조사였습니다. 만성화된 실업문제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도 어렵지만, 겨우 직장인이 되어도 그다지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유니세프에서 시행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 지수도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였습니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HelpAge International)에서 측정한 이른바 세계노인평가지수(Glogal Age Watch Index)에 의하면, 우리의 점수는 96개국 중 60위에 머물렀습니다.

 

엘르(Elle)라는 여성잡지사에서 시행한 여성 행복지수(Happiness Index)에 의하면, 한국은 42개국 중 39위를 차지했습니다. 직장인도, 어린이도, 청소년도, 노인도, 여성도, 사실상 모든 한국인이 아주 불행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는 정말 ‘헬조선’인가 싶습니다.

 

유엔 세계 행복 보고서 2016의 두번째 표 상단부분에, 행복 순위 58위에 랭크된 한국이 보인다. - SDSN 제공
유엔 세계 행복 보고서 2016의 두번째 표 상단부분에, 행복 순위 58위에 랭크된 한국이 보인다. - SDS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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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는 믿을 만 한가?


사실 정신과 의사들은 행복이라는 말을 그리 즐겨 쓰지 않습니다. 행복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는 감정적 측면에서의 행복, 즉 ‘행복감’에 다소 치우쳐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약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일종의 인공 행복이죠. 하지만 어떤 삶의 맥락과 연결되지 않은 이러한 행복감은 마치 재료도 없이 조미료만으로 맛을 낸 음식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유익한 영양분을 공급해주지 못합니다.


행복도에 대한 연구나 조사에서는, 그 목적과 대상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척도와 요인을 반영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삶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설문조사은 대개 아래와 같은 개인적 경험에 대한 문항이 핵심적으로 포함됩니다.


1. 당신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정으로 얻었습니까?
2. 그걸 얻는다면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까?
3. 당신 삶의 가치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4. 삶에서 당신이 목표했던 경지에 도달했습니까?


그런데 이 문항들은 개인적인 성취나 만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성취를 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과 직결되는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행복감을 선사하는 유일한 경험적 가치는 아닙니다. 사실 지난 수십년 전부터 미국 중심의 성취와 만족 위주의 문화에 의하여 행복의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로날드 드워킨은 현대인의 행복 기준이 단지 쾌락이나 편안함을 기준으로 하는 정서적 행복감에 치우쳐져 있다고 하면서, 행동의 변화 없이 기분만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인공 행복”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 Ronald Dworkin 제공
로날드 드워킨은 현대인의 행복 기준이 단지 쾌락이나 편안함을 기준으로 하는 정서적 행복감에 치우쳐져 있다고 하면서, 행동의 변화 없이 기분만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인공 행복”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 Ronald Dworkin 제공

삶의 결과가 아니라, 목적이 된 행복


로널드 드워킨은 자신의 책에서, “19세기에는 일이 잘 풀릴 때마다 하느님,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공을 돌리고는 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혼잣말로 ‘그냥 일이 잘 안 되는 것뿐이야’ 혹은 ‘난 참 운도 없지’라고 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는 행복, 그리고 불행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삶의 기준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미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인내와 순종을 설교하던 미국의 성직자들은 이제 행복을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행복이 되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행복의 비밀(Secret of Happiness)”나 풀턴 신 주교가 펴낸 “행복에 이르는 길(Way to Happiness)”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습니다.


의료계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의 작업을 통해, 삶의 고통과 고민이 주는 의미를 분석하고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찾아주던 정신치료의 오랜 전통은, 약물치료라는 편리한 수단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보험회사들은 보다 저렴한 치료방법을 강요했고, 불행감을 느끼는 환자들도 값싸고 신속한 치료방법을 원했습니다. 비정신과 의사들의 항우울제 처방량이 급속하게 늘었습니다.


사람들은 역경을 겪어 괴로운 마음에 교회를 찾으면,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괴로움에 병원을 찾으면,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로 취급되었습니다. 드워킨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행복은 삶의 과정을 통해서 얻는 ‘결과’가 아니라, 신앙심이 강하고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삶의 ‘목적’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행복하지 못하다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이죠. 

 

포커스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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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행복을 위한 사회적 조건


행복은 긴 삶의 과정을 통해서 얻는 결과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행복은 단일한 심리적 감정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행복과 관련된 개념으로 경외감, 공경심, 동정심, 이타심, 배려심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가치가 많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거나 배려하는 등의 경험에서 느껴지는 종합적인 감정을 행복감이라고 간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적인 이익이나 사회적 지위를 성취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남보다 가진 것이 많고, 내세울 것이 많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합니다. 반면에 깊은 쾌락이나 혼자만의 평화, 세상과 분리된 자기존중감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위한 사회적 기준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과 신뢰가 유지되어야 하고, 삶에 필요한 재화가 적절하게 공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기준이 채워진 이후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사회적 정의와 공정성입니다. 한국 사회가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수준이 비교적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체감하는 행복 지수가 낮은 것은 아마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2년이 넘게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노란 리본 뱃지를 달며, “잊지 않겠습니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집약된 세월호 사고는 불행의 원인이지만, 이에 대한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은 또한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한겨레신문사 제공
세월호 사고 이후 2년이 넘게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노란 리본 뱃지를 달며, “잊지 않겠습니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집약된 세월호 사고는 불행의 원인이지만, 이에 대한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은 또한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한겨레신문사 제공

● 집단 이타심과 배려를 경험한 ‘행복했던 2016년’


사실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더 행복해야 더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경우에만 행복할 수 있는지’를 규정해 두었고, 행복하지 못하면 ‘실패한 삶 혹은 병든 삶’으로 정의해버리고는 합니다.

 

물론 사회적인 공정성의 수준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경험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기회의 불평등과 같은 기준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아주 불행한 사회입니다. 모두에게 충분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누리게 해주지 못하는 사회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광장에서 벌어진 자발적인 사회적 연대와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 아무리 강력한 권력이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바로 잡으려는 사회적 치유 능력, 그리고 2년이 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이타심과 서로 간의 신뢰, 배려 등은 지난 2016년을 ‘행복했던 한 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비록 행복지수에서는 이런 부분을 반영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2016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참고문헌
행복의 역습: 행복강박증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병들게 하는가(2014), 로널드 W. 드워킨 지음/ 박한선, 이수인 옮김, 아로파(서울)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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