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7) 과학자들의 키다리아저씨 조셉 버만

2017년 01월 01일 19: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조셉 버만 (1927. 5.21 ~ 2016.10. 1) 과학자들의 키다리아저씨 잠들다

 

조셉 버만 - 강석기 제공
조셉 버만 - 강석기 제공

2001년 저를 구금과 독방생활에서 풀려나게 해준 버만의 노력을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 이란 물리학자 하디 하디자데

 

갈수록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는 게 힘들어지다보니 누구나 한번쯤 ‘나도 키다리아저씨가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물며 독재국가에서 기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런 나라들의 과학자들이 핍박받지 않도록 돕고 때로는 자유세계로 불러들여 새로운 삶을 살게 도와준 과학계의 키다리아저씨 조셉 버만(Joseph Birman)이 지난 10월 1일 89세로 영면했다.

 

192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버만은 러시아계 유태인 3세다. 유태인 박해를 견디지 못한 할아버지가 조국을 등졌다는 사실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2년 콜롬비아대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버만은 통신기업 GTE의 연구소에서 반도체의 광학특성을 연구했고 뉴욕대를 거쳐 1974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모교(학부)인 뉴욕시립대에서 봉직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버만은 수학의 군이론을 적용해 결정의 상전이와 빛산란 예측 등 이론고체물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중견 과학자로 자리를 잡은 버만은 핍박받는 과학자들을 돕는 데로 관심을 돌렸다. 1970년대 소련과학원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하게 된 버만은 그곳 과학자들의 열악한 실상에 깊은 충격을 받고 이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로 많은 과학자들이 그나마 있던 직장도 잃게 되자 버만은 이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왔다.

 

한편 1960년대와 1970년대 마오쩌뚱의 문화혁명으로 과학연구가 붕괴된 중국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부르주아 사상이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거부했을 정도였던 혁명의 광풍이 가신 1983년 미국물리학회를 대표해 중국을 방문한 버만은 중국의 중견 물리학자 60명을 최대 3년까지 미국에 머물며 연구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중국과학원과 체결했다. 덕분에 중국 물리학은 오랜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미국물리학회의 인권위원회를 맡았던 버만은 독재국가들의 행정수반과 왕, 종교지도자들에게 과학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편지를 수백 통 썼고 부당하게 투옥된 과학자들의 사례들을 공론화해 압력을 넣기도 했다. ‘네이처’ 11월 17일자에 부고를 쓴 뉴욕시립대 물리학과 유진 추드노프스키 교수 역시 1980년대 버만이 구해 준 러시아 과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내가 감옥에서 생을 마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버만과 그의 동료들 덕분이다. KGB의 집요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침내 소련을 떠나도 된다는 허가를 얻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연재강석기의 과학카페더보기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