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8) 샤프론 단백질 분야를 개척한 수전 린드퀴스트

2017년 01월 02일 14:00

지난 몇해 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지나갔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2016년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작년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수전 린드퀴스트 (1949. 6. 5 ~ 2016.10.27) 샤프론 단백질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들의 샤프롱

 

수전 린드퀴스트. - MIT 제공
수전 린드퀴스트. - MIT 제공

제인 오스틴이나 레오 톨스토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 사교 모임이나 무도회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런 자리에 막 데뷔한 젊은 여성을 뒤에서 돌봐주는 나이 지긋한 부인을 프랑스어로 샤프롱(chaperon)이라고 부른다.

 

생체분자인 단백질의 세계에서도 샤프롱이 존재한다. 리보솜에서 막 만들어진, 아미노산 수백 개로 이뤄진 사슬이 올바로 된 입체 구조로 접히게 도와주는 샤프론(chaperone, 영어식 철자와 발음)단백질이다. 샤프론 단백질 분야를 개척한 미국 MIT의 수전 린드퀴스트(Susan Lindquist) 교수가 10월 27일 67세로 작고했다.


194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린드퀴스트는 고교선생님의 영향으로 일리노이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고 1976년 하버드대에서 분자생물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1978년부터 2001년까지 시카고대에 몸담았고 2001년 MIT와 화이트헤드생의학연구소(겸직)로 자리를 옮겼다.


린드퀴스트는 단백질 접힘을 연구하다 열충격단백질(Hsp)에 주목했다. 세포에 있는 단백질은 갑작스레 온도가 올라가면(열충격) 변형돼 기능을 잃을 수 있는데, 이때 단백질의 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열충격단백질이란 이름을 얻었다. 훗날 Hsp는 열뿐 아니라 다양한 스트레스로부터 단백질이 변형되는 걸 막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린드퀴스트는 Hsp90이라는 열충격단백질을 집중 연구했는데, 특히 1998년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가 ‘탈수로화’란 진화가설을 입증했다고 주장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파리에서 Hsp90에 문제가 생기면 기형 개체들이 나오는데, 린드퀴스트는 여기에 어떤 패턴이 있음을 간파했다. 즉 임의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변이가 드러난 것처럼 보였다. 린드퀴스트는 문헌을 조사했고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콘라드 와딩턴(Conrad Waddington)이 1942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술한 ‘수로화(canalization)’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와딩턴은 개체발생이 강력한 과정이기 때문에 사소한 유전형의 변이는 묻혀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현상을 물이 수로로 흘러들어 한 줄기로 흐르는 것에 빗대어 ‘수로화’라고 명명했다. 와딩턴은 11년이 지난 1953년 역시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환경이 바뀌면 이처럼 숨어있는 변이가 표현형으로 드러나고 선택이 이뤄질 수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탈수로화(decanalization)’이라고 불렀다.


1998년 당시 린드퀴스트 교수는 자신들의 발견이 와딩턴의 탈수로화의 첫 실제 사례라고 주장했다. 즉 우리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는 초파리들은 실제로 다양한 변이가 숨겨져 있으나 Hsp90의 작용으로 변이가 드러나지 못한 상태인데(수로화), 이 단백질이 고장 나면서 고삐가 풀려 여러 형태의 변이가 나타났다는 것(탈수로화).

 

중미의 작은 민물고기 아스티아낙스 멕시카누스(위)는 어쩌다 강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로 들어와 눈이 없는 동굴물고기(아래)가 됐다. 2013년 린드퀴스트는 이 과정에 열충격단백질(Hsp90)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 사이언스 제공
중미의 작은 민물고기 아스티아낙스 멕시카누스(위)는 어쩌다 강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로 들어와 눈이 없는 동굴물고기(아래)가 됐다. 2013년 린드퀴스트는 이 과정에 열충격단백질(Hsp90)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 사이언스 제공

2013년 린드퀴스트는 하버드대 클리포드 타빈 교수와 함께 동굴물고기가 Hsp90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은 스트레스로 인한 탈수로화의 예임을 밝혔다. 중미의 작은 민물고기 아스티아낙스 멕시카누스는 보통 강에 살지만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들 동굴물고기는 눈이 완전히 퇴화돼 있다. 연구자들은 어느 날 우연히 강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로 들어온 아스티아낙스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로 숨겨진 변이가 발현돼 눈알 크기가 제각각인 개체들이 나왔다고 가정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 안에서는 눈이 필요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구조를 만드느라 부족한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눈알이 작은 개체가 선호됐고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결국 눈이 완전히 퇴화한 오늘날의 동굴물고기가 나타났다는 것. 연구자들은 강물에 비해 이온이 턱없이 부족한 동굴의 물이라는 환경 스트레스가 샤프론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결과임을 입증했다.


린드퀴스트는 광우병 같은 프리온 질병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여러 퇴행성 뇌질환들의 배후에는 변형된 단백질의 축적이 있다며 이 문제의 해결이 치료법을 찾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단세포 진핵생물인 효모를 이런 질환의 모델 생물로 선택해 연구를 진행했다. 효모를 연구해 어떻게 신경계 질환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린드퀴스트는 효모에도 이런 단백질들이 존재하고 변형 단백질이 축적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즉 메커니즘을 빨리 규명하려면 가능한 단순한 생명체를 택해야 한다는 것.


한편 린드퀴스트는 멘토, 즉 젊은 과학자들의 샤프롱으로도 탁월했다. 그녀가 화이트헤드연구소에 있는 15년 동안 100명이 넘는 박사후연구원, 대학원생, 학부생이 지도를 받았다. 린드퀴스트는 특히 언어를 중요시해 실험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논문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즉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명쾌하면서도 쉽게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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