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크무비] 컴맹은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도 없는가?

2017년 01월 15일 09:00

2017년의 첫 칼럼의 주제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매년 1월이면 세계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기 마련인 미국의 CES에서 주목을 받은 제품이나 기술들은 어떨까? 커제를 포함한 한중일 고수들과 온라인 대국에서 60승 무패를 기록하고 나서야 비로서 자신의 정체를 밝힌 알파고 이야기는 또 어떨까 하고 말이다.

 

지난해 말 개봉하여 작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나, 다이엘 블레이크 - 영화사 진진 제공
지난해 말 개봉하여 작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나, 다이엘 블레이크 - 영화사 진진 제공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화려한 첨단 기술들은 2017년 첫 칼럼의 주제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기술들이 가져올 화려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우리가 처해 있는 작금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너무 엄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주제가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다. 우리말로는 ‘정보 격차’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디지털 디바이드는 IT 산업이 개인의 일상 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 나타난 신조어로,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정보 기기나 서비스의 이용에 있어서 격차가 발생하고 그 결과 사회적·경제적 격차가 더 벌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빌 클린턴은 인류의 절반이 최첨단 기술을 향유하는데, 나머지 절반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한바 있다... - diane cordell(F) 제공
빌 클린턴은 인류의 절반이 최첨단 기술을 향유하는데, 나머지 절반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한바 있다.  - diane cordell(F) 제공

한 나라 안에서는 개인·계층·지역 간 소득과 교육 격차가, 국가간에는 경제력과 정보산업 기반의 격차가 이러한 디지털 디바이드 이슈를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처음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의 총아로 등극한 스마트폰이 저개발 국가에까지 빠르게 확산되자, 점차 미디어에서 사라지면서 ‘사어’(死語)처럼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국내에 개봉된 영화 한 편이 이 ‘사어’를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 사회파 영화의 거장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두 번째 황금 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가 그 주인공이다.

 

칸느 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번째 황금 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 - Getty Images 제공
칸느 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번째 황금 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 - Getty Images 제공

영화는 영국 중부 뉴캐슬에 살고 있는 59세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가 직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시작된다. 아내가 치매로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일을 못하면 기본 생활이 불가능한 형편이라, 정부에 고용·지원수당을 신청하지만 전화로 진행된 인터뷰 이후 '해당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3점이 모자른다’는 이유로 거절 당한다.


그 결정에 불복하고 재심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다니엘은 ARS로 연결된 전화를 몇 시간 동안 기다려 겨우 몇 분 통화를 하는 지리한 과정을 반복해야했던 것은 기본이고, 컴퓨터나 인터넷을 전혀 다룰 줄 모르기에 각종 신청서를 인터넷에서 입력하지 못해 제대로 된 수속조차 밟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도 않을 일이, 그저 성실하게만 목수로서 살아온 ‘디지털 문맹’ 혹은 ‘컴맹’ 다니엘에게는 커다란 장벽이 되어 버리는 것.

 

컴퓨터를 전혀 쓸줄 몰라 복지 혜택 신청을 못 하는 다니엘은 디지털 디바이드의 전형적인 예다 - 영화사 진진 제공
컴퓨터를 전혀 쓸줄 몰라 복지 혜택 신청을 못 하는 다니엘은 디지털 디바이드의 전형적인 예다 - 영화사 진진 제공

사실 이런 현상은 복지 정책의 역사가 오래되어 그 대상 인구가 많은 반면,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과 인력이 부족한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상의 문제다. 정당한 복지 혜택의 대상자들을 잠재적 무임승차자로 타자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전화·인터넷 기반의 비대면 서비스 확충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시스템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시민이 아니라 점수 평가의 대상이 된 다니엘이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멸시와 위협을 당하는 모습을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결과 관객들은 디지털 디바이드가 어떤 이들에게는 (심지어 선진국에 살고 있음에도)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으며, 똑같은 상황이 언젠가 우리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와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의 항소 절차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니엘은 복지관청의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한다 - 영화사 진진 제공
자신의 항소 절차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니엘은 복지관청의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한다 - 영화사 진진 제공

더 나아가 그런 다니엘의 모습에서 브렉시트가 영국 중부 지방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통과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단초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 다니엘과 같은 입장이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브렉시트가 내포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반감 등 거대 담론을 끌어들여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런던에서 이주해와 두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 케이티와 다니엘이 너무도 어려운 처지에서도 서로를 사심 없이 도와주는 모습이나, 음식 살 돈이 없는 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푸드뱅크 운영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동체의 연대와 지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기 보다, 소외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직시하게 하여 개개인 차원에서의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내려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평가는 적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본 어떤 이가 “당신도 누군가에게 다니엘이 되어주세요”라고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다니엘은 영국 뉴캐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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