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48] 개성 음식의 매력

2017년 01월 14일 18:00

십여 년 전, 서울 변두리의 주택가 골목길에 있던 서점에 갔다가 근처 식당의 상호에 이끌려 그 식당에 들어섰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던 양곰탕을 그곳에서 만났다. 그 후로도 나는 일부러 점심시간에 맞춰 여러 차례 찾아가 나름 단골이 되었지만 근래엔 그 동네에 갈 일이 없어서 몇 해 발길이 끊어졌는데 작년에 갑자기 그 집의 심심한 음식이 생각나 일부러 친구 부부와 함께 찾아갔다. 그 ‘ㄱㅅ집’은 한국전쟁 때 월남했던 분이 할머니가 되어 별세하기까지 한자리에서 개성 음식으로 손님상을 차리다가 며느리에게 전수해 진수를 이어온 소박한 한식당이다.

 

Kars Alfrink(F) 제공
Kars Alfrink(F) 제공

작년 그날에 그곳을 다시 찾아가기 전에 검색을 해보니 역시 그 식당은 인기 음식 프로그램 ‘ㅅㅇ미식회’ 첫 해 방송에 소개된 바 있었다. 그런데 식당 문 앞에 도착해 여기저기 훑어보았지만 어디에도 방송 사실을 알리는 문구 한 줄 없었다. 전에는 혼자 방문했기에 늘 곁눈질로만 즐겼던 ‘4人기본상’을 드디어 주문했다. 겉절이와 무생채와 양파간장이 차려지고, 곧이어 이등분해서 동치미국 같은 김칫국에 담근 아삭한 오이소박이, 가시 하나 씹히지 않는 촉촉하고 졸깃한 북어구이, 찹쌀과 야채와 선지로만 채워진 정통 순대, 쪽파 양파 오징어만으로 피자 두께로 구운 정갈한 파전, 소량의 야채를 넣고 다진 소고기에 계란만 얇게 입힌 와인 빛깔 속살의 동그랑땡, 돼지고기 숙주 호박 두부를 도톰하지만 보드라운 만두피로 감싸서 끓는 물에 삶아낸 이북식 만두, 한우 양지를 찢어 얹은 사골 조롱이떡국까지 분주히 수저로 맞이했으니 입은 호강에 겨웠고 배는 허리띠를 압박했다.


우리 넷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 포만감에는 느끼함도 자극성도 없어 입가심 맹물마저 생각이 안 날 만큼 그야말로 개운했다. 그 모든 음식은 다소 싱겁게 느껴질 만큼 심심했고 입속에서 사라진 음식들의 뒷맛은 덛더디(한결같이) 담백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정통 평양냉면뿐만 아니라 모든 이북 음식 맛은 슴슴하고 담박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맛이 내겐 꽤 매력적이었다. 밍밍하게 느껴지는 슴뻑한 맛, 투명할 정도로 연하면서도 누룽지처럼 구수한 여운이 남는 그 맛은 흔히 자극적이어서 입과 뱃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맛에 익숙해진 우리 입맛에 자장가를 불러주고 귀밑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Eugene Kim(F) 제공
Eugene Kim(F) 제공

왜 개성 음식은 김치마저 그토록 심심할까. ‘기후 환경’ 때문이지 않을까. 음식 전문가가 아닌 나의 판단에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이런 유추의 논리는 가능하지 않을까. 즉 나의 경험상, 이북보다는 중부지방의 음식이, 중부지방보다는 남부지방의 음식이 더 짜고 매운 걸로 봐서는 지역의 위도에 따른 음식 조리의 척도는 ‘부패’ 가능성 여부에 있지 않을까. 한여름 시장에서 굵은소금에 싸여 절여진 생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이처럼 기온이 높을 때 소금간이 약하면 음식은 쉬 상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또한 북쪽에 비해 기온이 높으니 남쪽 사람들은 땀도 더 흘릴 것이고 더불어 염분 섭취도 더 해야 될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게으르고 태만한 나는 그만큼 땀도 덜 흘리기에 염분의 필요를 덜 느껴 심심한 음식을 더 맛있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심심한’ 맛은 그저 밍밍하고 싱겁기만 한, 간이 덜 된 맛과는 다르다. 후자인 경우에 우리는 ‘개떡’ ‘개살구’ 등의 낱말에서처럼 대상을 하찮게 여겨 보통은 ‘개심심하다’고 말하는데, 북한어로 ‘슴슴하다’라고도 쓰는 ‘심심한’ 맛은 ‘개-’라는 접두어의 ‘헛된, 쓸데없는’의 뜻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맛이 심심하기 때문에 음식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식재료의 맛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입안을 자극하는 짠맛과 매운맛으로 식재료의 본연의 맛을 지우지 않는다. 그러니 식감이 더 섬세해지는 개성 음식을 먹으면 입속과 뱃속이 소란스럽지 않고 평온해지는 것 같다. 그것이 개성 음식의 매력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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