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305] 범고래 암컷이 나이 마흔에 폐경기를 겪는 이유

2017년 01월 17일 17:30

istockpho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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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마흔을 앞두고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쉰을 앞둔 올해 새해를 맞으면서는 좀 착잡하다. 필자 친구들도 비슷한 기분인 것 같다. 10년 전만 해도 몸의 노화를 거의 느끼지 못했지만 40대를 지나며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이 오십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심란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시기를 전후해 배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상태인 폐경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자에게 여성이 폐경으로 생식력이 없는 상태에서 30여년을 더 사는 현상은 흥미로우면서도 당혹스럽다. 육상 포유류 가운데 사람만 확실한 폐경기를 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참고로 고래류 가운데 두 종도 확실히 폐경기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나이가 들어 전반적인 노화가 진행되면 생식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영장류학자인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의 저서 ‘Dr. 영장류 개코원숭이로 살다’를 보면 암컷 원숭이에 별로 관심이 없던 늙은 수컷이 어느 날 젊은 암컷과 무리해서 짝짓기를 하다가 도중에 토하고 결국 죽는 장면이 나온다.

 

나이(가로축)에 따른 난소의 미성숙 난포 개수의 변화. 38세를 전후해 하락세가 가팔라진다. 이 시기는 자연 상태에서 임신을 하는 사회에서 마지막 출산의 평균나이이기도 하다. - 인간 생식 제공
나이(가로축)에 따른 난소의 미성숙 난포 개수의 변화. 38세를 전후해 하락세가 가팔라진다. 이 시기는 자연 상태에서 임신을 하는 사회에서 마지막 출산의 평균나이이기도 하다. - 인간 생식 제공

그러나 폐경은 좀 다른 현상이다. 즉 신체의 전반적인 노화와 별개로 생식과 관련된 부분에서 노화가 가속화돼 일어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난소에 저장된 원시 난포(미성숙 난자) 개수의 변화를 보면 노화가 가속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즉 원시 난포는 태어날 무렵 약 200만 개이고 월경이 시작되는 사춘기 무렵 40만 개가 남아있다. 월경이 시작되면 한 달에 하나 꼴로 난포가 성숙해 배란이 되지만 여분의 난포가 일정한 비율로 파괴된다. 이런 식으로 파괴가 된다면 70세까지는 배란을 할 수 있다.

 

그런데 38세를 전후로 해서 난포가 파괴되는 비율이 갑자기 가팔라진다. 그 결과 50세를 전후해 난자로 성숙할 난포가 남아나지 않게 된다. 즉 폐경이 오는 것이다. 이런 생식세포의 노화가속화는 폐경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생겨난 현상임을 시사한다.

 

‘20세기의 다윈’으로 불린 저명한 진화론자 조지 윌리엄스는 서른한 살이던 1957년 노화의 자연선택이론을 발표한 논문에서 폐경기의 진화를 멋지게 설명했는데, 훗날 ‘할머니 가설’로 불리게 된다. - 뉴욕주립대 제공
‘20세기의 다윈’으로 불린 저명한 진화론자 조지 윌리엄스는 서른한 살이던 1957년 노화의 자연선택이론을 발표한 논문에서 폐경기의 진화를 멋지게 설명했는데, 훗날 ‘할머니 가설’로 불리게 된다. - 뉴욕주립대 제공

60년 전 폐경 설명하는 진화 가설 나와


위의 발견은 1992년 학술지 ‘인간 생식’ 보고됐지만 그보다 한 세대 전인 1957년 이미 폐경이 인류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발표됐다. 미국 미시건주립대의 조지 윌리엄스 교수는 학술지 ‘진화’에 노화의 자연선택에 대한 긴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폐경에 대해서도 설명을 시도했다.


윌리엄스는 인간 여성에서 이런 급작스런 임신능력 상실이 진화한 것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즉 나이 들어 임신할 경우 출산 과정에서 엄마나 아이가 죽을 위험성도 높고 설사 무사히 낳았더라도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육기간이 긴 인간은 이런 위험성을 감수하는 대신 남아있는 에너지를 키우고 있는 자식들에게 투자하는 게 번식에 더 이롭다는 말이다.

 

윌리엄스의 아이디어는 훗날 ‘할머니가설’로 이어졌다. 여성의 폐경기가 자식의 자식, 즉 손주를 돌보기 위해 진화했다는 말이다. 부모 둘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할머니까지 힘을 보태면 아이가 자라 짝을 만날 때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할머니 가설은 대중매체의 입맛에도 잘 맞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졌고 지금도 폐경의 존재이유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으로 보인다.

 

무리의 구조에 따라 번식투쟁 여부가 결정된다. 무리를 이루는 포유류 대부분은 수컷이 무리를 떠나는데 이 경우 모든 세대의 암컷이 무리의 새끼들을 돌보기 때문에 번식투쟁이 없지만 자기 자녀가 죽을 위험성(세로축)이 높다(위). 반면 암컷이 무리를 떠나는 사람(가운데)과 외부 무리와 짝짓기를 하는 범고래(아래)에서는 젊은 암컷의 번식투쟁(harm)이 존재해 나이 든 암컷의 사망률이 높다. - 영국왕립학회회보B 제공
무리의 구조에 따라 번식투쟁 여부가 결정된다. 무리를 이루는 포유류 대부분은 수컷이 무리를 떠나는데 이 경우 모든 세대의 암컷이 무리의 새끼들을 돌보기 때문에 번식투쟁이 없지만 자기 자녀가 죽을 위험성(세로축)이 높다(a). 반면 암컷이 무리를 떠나는 사람(b)과 외부 무리와 짝짓기를 하는 범고래(c)에서는 젊은 암컷의 번식투쟁(harm)이 존재해 나이 든 암컷 새끼의 사망률이 높다. - 영국왕립학회회보B 제공

시집오는 사회에서 진화


영국 엑서터대의 마이클 캔트 교수와 케임브리지대의 루퍼스 존스톤 교수는 폐경을 설명하는데 할머니가설이 2%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가설에 따르면 무리를 짓고 양육기간이 길고 장수하는 동물에서 폐경이 나타나야하는데 사람을 빼고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경기가 있는지 애매한 침팬지나 고릴라를 빼더라도 코끼리 같은 동물은 확실히 폐경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폐경기를 설명하는 다른 해결책을 찾았고 그 결과인 ‘번식투쟁가설(reproductive conflict hypothesis)’을 2008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즉 폐경기가 생긴 건 할머니가 자손을 돌보는 것과 함께 엄마가 자기 자식에만 매달려 때로는 나이든 여성 이 낳은 자식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나이든 여성은 젊은 여성의 자식들에게 이 정도로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그 결과 나이든 여성 자식의 사망률이 더 높고 결과적으로 차라리 아이를 안 낳고 젊은 여성의 아이를 돌봐 그 아이의 생존율을 높이는 게 무리의 번성에는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무리의 구성형태에 따라 번식투쟁의 적용여부가 결정된다. 무리를 짓는 포유류는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대부분 수컷이 무리를 떠난다. 즉 한 무리에서 암컷들은 서로 혈연관계이지만 수컷은 혈연관계가 없는 개체가 외부에서 계속 유입된다. 그 결과 암컷이 나이가 들수록 수컷들과의 평균 혈연도가 떨어진다(오빠나 남동생은 떠나고 아빠는 죽는다). 따라서 젊은 암컷이 나이 든 암컷보다 무리와 혈연도가 더 높고 따라서 나이든 암컷의 자식을 돌보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실제 이런 유형의 포유류에서는 나이든 암컷이 새끼를 갖고 젊은 암컷은 임신이 억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런 유형에서는 번식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코끼리가 바로 이런 경우다.


반면 사람과 침팬지, 고릴라는 대체로 암컷이 무리를 떠난다. 우리말에 ‘시집온다’는 표현은 있어도 ‘장가온다’는 표현이 없는 이유 아닐까. 이 경우 한 무리에서 수컷은 서로 혈연관계이지만 암컷은 혈연관계가 없는 개체가 외부에서 계속 유입된다. 그 결과 암컷이 나이가 들수록 수컷들과의 평균 혈연도가 올라간다(아들이 생긴다). 따라서 나이 든 암컷이 젊은 암컷보다 무리와 혈연도가 더 높고 따라서 젊은 암컷의 자식을 돌보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반면 새로 무리에 유입된 젊은 암컷은 어차피 자기 새끼만 자기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므로 자기 새끼에 올인한다. 이런 번식투쟁은 양육기가 길고 음식을 공유하는 경향이 큰 사람에서 더 큰 선택압을 행사했고 그 결과 폐경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범고래 새끼들은 암수 어느 쪽도 자라서 무리를 떠나지 않지만 외부 무리와 짝짓기를 함으로써 근친교배를 피한다. 그 결과 암컷은 나이가 들수록 무리 내 수컷과 혈연도가 올라가 폐경이 진화했다는 가설이 있다. - GIB 제공
범고래 새끼들은 암수 어느 쪽도 자라서 무리를 떠나지 않지만 외부 무리와 짝짓기를 함으로써 근친교배를 피한다. 그 결과 암컷은 나이가 들수록 무리 내 수컷과 혈연도가 올라가 폐경이 진화했다는 가설이 있다. - GIB 제공

양육시기 겹칠 때 나이 든 범고래 새끼 사망률 높아

 
그런데 이런 설명은 사람을 제외하고 확실한 폐경기를 보이는 두 종인 범고래와 들쇠고래에 적용할 수 없다. 이들 무리는 암수 어느 쪽도 성장한 뒤 무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교미철에 다른 무리와 만나 즉석에서 짝짓기를 하는 방식으로 근친교배를 피한다. 범고래와 들쇠고래 새끼들은 아빠 얼굴도 모른다는 말이다.


캔트와 존스톤은 2010년 학술지 ‘영국왕립학회회보B’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무리의 구조에서도 번식투쟁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수학모형을 세워 입증했다. 즉 암컷이 나이가 들수록 무리 내 수컷들과의 평균 혈연도가 올라가므로 젊은 암컷은 자기 새끼만 챙긴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암컷은 아빠가 없고 나이가 들수록 혈연도가 낮은 무리 내 늙은 수컷들이 죽는 반면 혈연도가 높은 어린 수컷들이 늘어난다.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1월 23일자(온라인에 미리 공개)에는 캔트와 존스톤의 가설을 지지하는 범고래무리 분석결과가 실렸다. 캔트와 존스톤도 포함된 공동연구자들은 40년이 넘게 관찰하고 있는 두 범고래무리를 이루고 있는 수백 마리의 혈연관계와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번식투쟁의 예상대로 나이 든 암컷과 젊은 암컷이 동시에 새끼를 키울 경우 나이 든 암컷의 새끼 사망률이 1.7배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범고래는 15년 정도면 다 자라고 30대에서 40대에 폐경기가 오지만 90살까지 사는 암컷도 있다. 즉 사람 이상으로 폐경기가 뚜렷한 종이다. 무리를 조사한 결과 마지막 출산 나이가 39살 이내인 경우가 95%에 달했다. 자연 상태에서 임신을 하는 인류 집단의 평균 마지막 출산 나이가 38살인 점을 감안하면 범고래는 사람보다도 일찍 출산을 접는 셈이다.


그럼에도 양육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한 무리에서 두 세대의 암컷이 동시에 새끼를 낳아 키우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참고로 자연 상태에서 임신을 하는 인류 집단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필자의 부모세대의 경우 삼촌이나 고모가 더 어린 경우가 더러 있다.


조사기간 동안 태어난 525마리 가운데 31%인 161마리가 두 세대 부모가 함께 양육하는 상태였다. 참고로 이 기준은 새끼들의 나이차가 2년 이내일 경우다. 이들이 15살에 이를 때까지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나이든 암컷의 새끼가 젊은 암컷의 새끼보다 1.7배 더 높았다. 반면 무리에서 동시에 양육되는 새끼가 없을 경우 나이든 암컷의 새끼라도 사망률이 더 높지 않았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번식투쟁이 높은 사망률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들이 50세 전후에 폐경기를 겪지만 마지막 출산의 평균 나이가 38세(자연 상태에서 임신을 하는 사회의 경우)라는 사실은 실질적으로 여성의 생식기간이 수명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음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수렵채취사회에서 여성은 보통 십대 후반에 첫 임신을 하는데 38살이면 자식이 자식을 갖는 시기다. 그리고 난포의 파괴속도가 가속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성의 이른 생식력 상실이 번식투쟁을 피하려는 진화의 결과라는 설명이 꽤 그럴듯한 이유다. 물론 요즘은 서른여덟에 첫 아이를 보는 여성도 적지 않지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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