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때문에 부끄럽나요? 양심 혹은 남의 시선?

2017년 01월 29일 10:30

▶ 고민

자다가도 이불을 뻥뻥 찹니다. 낮 동안에 있었던 부끄러운 일을 생각하면 혼자 있을 때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도 있지만, 어떤 것은 이미 십여 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갑자기 마음에 떠오르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수치스러운 일들을 기억에서 싹싹 지우고 싶습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지는 독특한 감정이다.
2. 타인과의 시선은 수치심을, 그리고 내적 양심은 죄책감과 관련된다.
3. 지나친 부끄러움은 (부족한 부끄러움처럼) 건강한 생활을 어렵게 한다.
4. 불필요한 시선에서의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내적 양심이 지키는 삶이 필요하다.

 


▶ 답변

부끄러움, 즉 수치심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조지 버나드 쇼는 부끄러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들은 부끄럽다는 기분 속에 살아간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벌거벗은 피부를 부끄러워하듯이,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서, 친척에 대해서, 수입에 대해서, 의견에 대해서, 경험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

 

GIB 제공
GIB 제공

인간만의 감정, 수치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당 혹은 교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한데, 자신만 옷을 발가벗고 있다면 정말 부끄러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한번쯤은 꿔본 적이 있는 악몽이죠. 사실 성경에는 인류가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신학적 의미가 있겠지만, 진화인류학적으로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유일한 동물입니다(최소한  발가벗었다고 창피해 하는 동물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종종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혼동되어 쓰입니다. 가끔은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댔다가 발각되었을 때의 감정. 이러한 감정은 죄책감이자 동시에 수치심이죠. 하지만 마음에 두고 있던 이성에게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할 때의 감정은 죄책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수치심과 죄책감은 인간 고유의 독특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주로 내적 양심, 그리고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과 관련이 많이 된다. - pixabay 제공
수치심과 죄책감은 인간 고유의 독특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주로 내적 양심, 그리고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과 관련이 많이 된다. - pixabay 제공

죄책감과 수치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 터부시되는 것은 신성하면서 불결한 것이고, 더러우면서 순결한 것이다.” - <토템과 터부>.

 

정신분석학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에게 금지된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대상에 대해서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혹은 무엇을 소망해서는 안되는가? 참 어렵죠. 상당수의 수치심과 죄책감이 성적인 내용과 연관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성적인 내용 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대상에 대해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인류는 진화 초기부터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제도와 질서, 전통, 관습이 생겨났죠. 따라서 개인의 욕망은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되고, 이러한 규제는 점점 사회 안에서 굳어집니다. 다른 이의 재물을 허락없이 가져오면 안된다든가 혹은 사회적 규율에 어긋나게 복장을 하면 안된다는 식의 규칙들이죠.


이런 규칙들은 오랜 시간 내려오면서 우리 마음 속에 내재되어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는 이른바 ‘양심’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죄책감은 이 양심의 활동입니다. 양심은 규칙(터부)을 어긴 자신에 대해 비난하고, 사회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끄러움, 즉 수치심은 죄책감보다 더 원초적인 편입니다. 죄책감은 내적인 양심에 의해서 규제되지만, 부끄러움은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됩니다.

 

예를 들어 아무도 모르게 컨닝을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봅시다.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컨닝을 해서는 안된다는 죄책감은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 즉 부끄러움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흔히 내적 죄책감도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구분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만). 만약 전혀 들키지 않고 컨닝을 성공한 경우에 전혀 감정적인 괴로움이 없다면, 수치심은 발달했지만 아직 죄책감은 미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편안하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사람들이죠.

 


서양의 죄책감, 동양의 수치심


수치심과 죄책감은 문화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종종 서양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언어, 삶의 방식을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는 정말 창피한 수준으로 아무렇거나 사는 것 같아 보이죠. 자유로움에 대해서 감탄하기도 하고 혹은 ‘야만인’이 아니냐며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동양은 수치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물론 베네딕트의 주장은 너무 이분법적이고, 특히 일본을 동양 전체의 문화와 동일시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그녀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일본 사회의 수치(は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이 비해 서양 사회는 죄의 문화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종교적 죄악이 더 중요한 수치심의 기준라는 것이죠. 이런 기준으로 보면 죄책감은 죄의식으로부터 시작하는 부끄러움, 그리고 수치심은 당혹스러움에서 시작하는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쓴 <국화와 칼>은 서구 사회에 일본의 문화에 대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주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 World Telegram staff photographer (1937) 제공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쓴 <국화와 칼>은 서구 사회에 일본의 문화에 대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주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 World Telegram staff photographer (1937) 제공

무엇때문에 부끄러워하는가? 양심 혹은 시선?


인격장애 환자의 일부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하지만, 사이코패스 외에도 다양한 인격장애 환자(그리고 일부 정상인)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행동도 바르고 예의범절도 잘 지킵니다. 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르죠. 부끄러움이 수치심, 즉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불필요한 부끄러움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종종 사회공포증이나 회피성 인격장애 환자로 분류되지만, 사실 정상인들도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상황을 극도로 피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면(도덕적인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아주 힘들어합니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발표를 해도, 청중 중 일부가 딴청을 피우면 “내 발표가 좋지 않아서 그래”라고 하며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심해지면 공황 증상도 경험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상태가 반전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끄러움, 즉 망신과 수치를 갈망하는 것이죠. 피학증, 즉 마조히즘은 독일의 정신의학자 그라프트 에빙(Richard Freiherr von Kraft-Ebing)이 처음으로 이름 붙였는데, 수치심을 추구하는 마조히즘은 이 중 도덕적 마조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을 성애발생적 마조히즘, 여성적 마조히즘, 도덕적 마조히즘으로 구분했습니다). 도덕적 마조히즘이란 무의식 속의 죄책감 때문에 불필요한 벌을 스스로 받고 싶어하는 심리적 경향입니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부끄러움으로 인해서 병원을 찾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으로 병원을 찾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성직자를 더 많이 찾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루스 베네딕트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타인의 시선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는 세켄테이(世間体, せけんてい)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세간의 인식”, 즉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생각이죠.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판이나 인식도 중요하지만, 세간의 평만 맞추면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사람들의 시선으로 너무 힘들다면,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적인 양심에 비추어 떳떳하면, 사람들 시선은 견딜 수 있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책이 현대 한국 사회에 큰 공명을 울리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받고 구속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인데, 곧 들통날 거짓말도 합니다. 내적인 양심은 이미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만,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는 회피성 장애 환자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너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참고문헌
박한선(2012), 네이버 정신건강 프로젝트-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루스 베네딕트(1946),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연재신경인류학 에세이더보기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