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참을 수가 없는 나, 어떡해야 하죠?

2017년 02월 04일 07:30

▶ 고민

화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애꿎은 부하직원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부하가 잘못한 것이 있긴 하죠. 돌이켜보면 그렇게 화낼 일까지는 아니었는데, 막상 그때는 도저히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주차 위반을 했다고 징역형을 내린 식입니다. 이런 일이 늘 반복되다 보니, 주변에서 저를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쉽게 분노하고 쉽게 화내는 것일까요?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분노는 독립된 감정이 아니라, 불쾌하고 괴로운 감정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행동 양식이다.
2. 종종 분노는 우울감의 다른 형태, 즉 외부를 향한 우울이라고 할 수 있다.
3. 물론 사회적 불의와 차별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4. 화를 웃음으로, 욕설을 노래로, 폭력을 춤으로 바꾸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 답변

화와 분노는 특정한 하나의 감정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이 부정적 방법으로 표출되는 일종의 행동 양식 혹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분노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별 도움이 안됩니다. 결국 분노를 유발한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게 될 뿐이죠. 또한 세상에는 ‘마땅히’ 분노할 만한 일이 도무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예 분노를 없애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길이 소리를 지르며 성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모조리 쏟아내면, 기분은 후련할 지 모르지만 도리어 문제는 더욱 악화됩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 관계만 나빠지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네가 화낸 날들을 헤아려보라. 나는 매일같이 화를 냈었다. 그러던 것이 이틀 만에, 그 다음에는 사흘 만에 화를 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일 너희가 성냄을 한 달 동안 잊게 되거든 그때는 신께 감사의 제물을 올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보다 ‘건강하게’ 화 내는 방법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GIB 제공
GIB 제공

행복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분노, 즉 ‘anger’는 괴로움을 뜻하는 ‘anguish’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는 괴로움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임상적으로 잘 조절되지 않는 분노 장애는 종종 은폐된 우울 장애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상태로 보입니다(사실 분노 장애라는 말은 정식 정신과 진단명이 아닙니다. 간헐적 폭발장애라는 진단이 있지만, 이는 아주 특이한 경우죠). 그래서 분노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은 종종 우울증에 준해 치료를 받곤 합니다. 즉 괴로운 마음이 자기 자신을 향하면 우울증으로, 외부를 향하면 분노로 나타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장애 편람에는, 각 문화권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정신 장애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관련 증후군이 있는데, 그 중에는 ‘화병’도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는 우울증과 비슷하고, 여기저기 몸이 아픈 증상을 보여서 신체화 장애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또한 억눌린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보면 분노 장애와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 신체화 장애: 특별한 내과적 이상이 없음에도 여러 신체 증상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는 질환

 

고도 성장기를 거치던 한국 사회에서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던 중년 여성에게 흔히 나타났던 장애입니다. 그동안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된 덕분인지 요즘은 외래를 찾는 화병 환자가 꽤 줄었습니다(물론 다른 장애가 훨씬 많이 늘었습니다만).


행복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옳지 못한 일, 부당한 일을 경험해도 파괴적인 분노에 휩싸이지 않죠. 보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제된 분노’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효과적입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은, ‘사람들이 (혹은 이 세상이) 원인을 제공하니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고 항변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화를 낼 만반의 준비를 된 상태에서,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라’라는 식이죠.

 

분노는 내적인 고통을 외부에 전가하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분노를 자주 하는 사람은, 사실 우울증이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 Jessica Flavin (2008) 제공
분노는 내적인 고통을 외부에 전가하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분노를 자주 하는 사람은, 사실 우울증이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 Jessica Flavin (2008) 제공

분노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분노의 진화적 이득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를 이른바 무관용 접근(zero-tolerance approach) 가설이라고 하는데, 즉 분노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대적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이론입니다. 조금만 잘못을 해도 ‘일벌백계’를 통해서, 감히 기어오르지 못하게 한다는 식이죠. 사실 이런 전략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적국의 군대에 대한 무자비한 징벌이나, 혹은 야쿠자(ヤクザ) 등 갱 집단에서 부하에게 가하는 가혹한 처벌 전략 등이죠.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전략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과거 일부 심리치료 학파에서는 이른바 ‘카타르시스’ 요법이라고 하는 치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 속의 분노를 모조리 분출하면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정신 증상이 해결된다는 ‘이상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아직도 상당한 공감하는 주장이죠. 우리는 ‘몸 안의 나쁜 것’을 밖으로 꺼내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다소 원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쁜 피’를 빼낸다는 사혈 요법, ‘나쁜 변’을 빼낸다는 하제 요법 등의 심리적 버전이 바로 이 ‘카타르시스’ 요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사실 분노도 일종의 습관입니다. 화는 내면 낼수록 점점 더 쉽게 화를 내게 됩니다. 처음에는 짜증을 좀 부리는 수준에서, 점차 욕설도 하게 되고, 급기야는 물건도 집어 던지는 수준으로 발전합니다. 후련함은 잠깐입니다. 아주 긴급한 상황에서는(예를 들어 이웃 부족의 침략 등), 과감한 분노 표현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서는 분노의 표출이 생존상의 큰 이득을 가져다 줍니다. 배우자를 독차지하거나 혹은 무리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죠. 그러나 현대 문명 사회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분노한 침팬지. 원시적 힘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위압적인 분노가 생존상의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원초적인 분노 표현은 전혀 유리하지 않다.  - Junk Food Monkey (2013) 제공
분노한 침팬지. 원시적 힘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위압적인 분노가 생존상의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원초적인 분노 표현은 전혀 유리하지 않다.  - Junk Food Monkey (2013) 제공

분노는 열정의 증거?


최근 들어 한국인은 아주 열정적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매운 고추의 힘이라고 하기도 하고 반도 문화의 특성이라고(이탈리아와 비슷하다고 하면서)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근거는 희박합니다. 사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미지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공손하고 예의 바른’ 국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10여년 전만 해도, 정부에서는 우리나라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 ‘정적이며 정신적 수양을 강조하는 나라’로 보고한 바 있습니다(국민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논란이 많습니다만).


사실 동아시아에서는 자제심과 차분함이 아주 중요한 덕목이자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논어에서는 ‘유안회자호학 불천노(有顏回者好學,不遷怒)’, 즉 다른 사람에게 당한 화를 옮기지 않았던 안회를 칭송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전통 사회에서도 분노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야 있었겠지만, 절대 바람직한 태도로 간주되지는 않았습니다.


유교 문화권 아니라 다른 문화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문화에서는 분노(Ira)가 칠죄종, 즉 죄악을 일으키는 일곱가지 대죄로 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또 자기 형제 더러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노하는 마음을 철저하게 다스리도록 주문하고 있죠.


아프리카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쿵족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전통이 있습니다. 부족 내에 분노와 갈등이 생기면, 축제를 열어 노래와 춤, 웃음으로 이를 승화시키는 것이죠. 즉 분노과 다툼으로 들끓는 감정을 보다 건강한 틀 안에 넣어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화는 웃음으로, 욕설은 노래로, 폭력은 춤으로 승화됩니다.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분노의 에너지를 협력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것이죠.


물론 세상에는 참 화나는 일이 많습니다.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확 질러버리고 싶곤 하죠. 참고 있으면 손해볼 것 같기도 하고, 또 나를 우습게 여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십시오. 지금까지 ‘화를 내서’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을 진정으로 바꾸어 본 경험이 있나요? 이글거리는 분노는 아주 강력해 보이지만, 그 불꽃에 제일 많이 그을리는 것은 본인 자신입니다. 설령 한국인이 ‘정말’ 열정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열정적인 것이라며’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에필로그


‘그러면 세상이 이 모양인데, 언제까지 참고만 있으란 말이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불의와 차별에 대해서 침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의에 분노하라’는 말을, 내키는 대로 아무에게나 성내도 좋다는 뜻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매주 광화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광장에서 ‘마구 성질을 부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행진도 합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각목과 화염병을 들어야만 강력한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에 ‘분노’하되, 함부로 ‘분노’하지 않는 시민들. 우리 사회는 ‘지혜롭게 분노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참고문헌
박한선 (2012), 네이버 정신건강 프로젝트-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Cartwright, John (2008),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Cambridge, Mass.: MIT Press.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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