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 ‘불안’

2017년 02월 11일 09:00

▶ 고민

이런저런 불안으로 밤잠을 자기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안감. 그러나 사실 불안의 이유는 대개 하잘것 없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 혹은 이미 일어나서 어찌할 수도 없는 일들이죠. 불안만 잡을 수 있다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불안해서 너무 괴롭습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불안은 인간뿐 아니라 포유류 전반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감정 반응이다.
2.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으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심지어는 병원을 찾는다.
3. 물론 불안은 괴로운 감정이지만, 또한 아주 유용한 감정이다.
4.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연습을 통해 통제할 수는 있다.

 


▶ 답변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인간이 동물이나 천사라고 할 것 같으면 불안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인간은 불안을 가지는 자요, 그가 가지는 불안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만큼 그 인간은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불안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포유류(천사는 모르겠습니다만)가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불안을 담당하는 중추는 뇌의 아주 깊은 심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의식으로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모든 정신적 고통은 불안과 관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GIB 제공
GIB 제공

프라임 감정, 불안


만약 다양한 감정 중에서 ‘프라임 감정’을 꼽는다면, 불안을 들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 중에서도 이성적 판단에 큰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안위에 유리하도록 진화되어 온 감정이 바로 불안(그리고 공포)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생존과 안전이 위협받을 때 느껴지는 핵심적인 감정이죠. 그래서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불안은 뇌의 안쪽에 위치한 아몬드 크기의 편도핵(amydgala)에서 관장합니다. 다른 부분도 관여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편도핵이죠. 불안 외에 분노, 기쁨 등 다양한 정서 반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간질을 앓던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이 편도핵을 제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환자는 간질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를 ‘클뤼버-부시 증후군(Kluver-Bucy syndrome)’이라고 합니다 (환자 이름이 아니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불안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아주 양순해졌습니다. 그래서 너무 폭력적인 범죄자에게 편도핵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적도 있습니다. 효과는 아주 좋아서 공격성이 줄어들었죠. 하지만 성욕과 식욕이 너무 증가해서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수술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도 있었죠). 불안이 없어지면 마냥 좋을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편도핵. 옆머리 안쪽에 위치한 작은 편도핵은 불안과 공포 반응을 매개하는 핵심 중추이다.  - http://www.memorylossonline.com/glossary/images/amygdala.jpg  제공
편도핵. 옆머리 안쪽에 위치한 작은 편도핵은 불안과 공포 반응을 매개하는 핵심 중추이다.  - http://www.memorylossonline.com/glossary/images/amygdala.jpg  제공

불안의 효과


불안은 다가오는 상황을 미리 준비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일이 시험인데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낙방할 것입니다. 불안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신체적 반응과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혈압을 높이고 맥박을 빠르게 하죠. 그래서 뇌에 혈액을 보내줍니다.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 것이죠. 또한 근육에도 혈액을 보내줍니다. 재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죠. 주로 도망가는 반응이겠습니다만.


또한 불안은 전염력이 강합니다. 금새 사람들에게 퍼져서 집단적인 불안이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집단 공황이 문제가 되곤 하지만, 과거에는 아주 유리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집단 내에서 가장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것입니다. 사자 무리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눈치챈 누군가가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곧 이 불안은 주변에 퍼집니다. 아마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혼자 태평한 사람은 사자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공포도 불안의 일종입니다. 공포가 너무 심해지면, 공포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개 공포증보다 고양이 공포증 환자가 훨씬 흔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맹견이 더 많죠. 사실 맹묘(?)라는 말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고양이 공포증 환자가 더 많을까요? 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사바나를 누비면서 만나던 포식자들이 주로 고양이과 동물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불안의 경계는 어디인가?


불안은 분명 유익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전에 진화했고 (최소 6000만 년 전), 뇌 깊은 곳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서 종종 큰 문제가 됩니다. 의지와 노력으로 조절할 수 없는 불안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불안증이 없으면 정신과 의사들은 밥을 굶을 지도 모릅니다. 음. 불안해지네요). 공포증,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광장 공포증, 분리 장애, 사회 공포증 등이 다 이러한 불안 장애의 일종입니다.


일단 건강하지 못한 불안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반응의 수준을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안 장애시에 흔히 하는 인지행동요법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치료가 아니라,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스스로 통제하는 치료입니다. 내적 불안의 원인과 그 자동적인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면, 불안이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심해지는 것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적절한 불안’의 수준을 어떻게 결정할까요? 정신의학적인 면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불안이 과연 건강한 삶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앞두고 책을 붙잡게 하는 수준의 불안이나 운전을 하면서 전방 주시를 게을리하지 않게 하는 불안은, 건강한 (비록 힘들지만) 불안입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거나, 회사 면접을 받는 중이라면 더 높은 수준의 불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어느 정도의 불안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스스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불안과 싸우지 않고, 불안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게 길들이는 것이죠.

 

뭉크의 불안. 불안은 거의 모든 정신장애에서 관찰되는 증상이지만, 또한 생존과 적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불안은 너무 많아도, 너무 없어도 곤란하다.  - Edvard Munch (1894) 제공
뭉크의 불안. 불안은 거의 모든 정신장애에서 관찰되는 증상이지만, 또한 생존과 적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불안은 너무 많아도, 너무 없어도 곤란하다.  - Edvard Munch (1894) 제공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길들이는 연습


불안을 조절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심한 불안 장애 환자의 경우에는 집중적인 인지행동요법, 혹은 심층적인 정신 분석이 필요할 수도 있죠. 적절하게 약도 같이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불안이라면 조금 다릅니다. 대개의 경우 불안감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이 불쾌하고 불편해서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불안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불안한 상황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배고픔과 음식과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허기의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아마 2-3일 정도 굶어본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죠’. 정말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고통스러운 허기를 경험하지 않습니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뿐 아니라, 약간 허기의 징조가 오면 음식을 바로 먹기 때문입니다.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험생이라면 약간 불안해질 때, 공부를 미리미리 해야 합니다. 가끔은 불안하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처럼 말이죠. 직장인이라면 업무를 미리미리 처리해야 하죠. 평소에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시험 전날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면서, 약을 달라고 병원을 찾는 분이 간혹 있습니다. 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허기감이 진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리 위험한 상황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불안감이 진화한 것입니다.


불안은 감정 중에 가장 강력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강력한만큼, 잘 길들이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주 거친 야생마일수록 길들이기만 하면 훌륭한 명마가 된다고 합니다.
 

 

에필로그


물론 불안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또한 사회적인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만 틀면 끊이지 않는 한심한 뉴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미래, 각종 재난과 전염병, 테러까지…… 이런 상황이라면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합니다.

 


※ 참고문헌
박한선 (2012), 네이버 정신건강 프로젝트-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Cartwright, John (2008),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Cambridge, Mass.: MIT Press.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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