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기자의 온도차 ⑥] 트럼프와 美 과학기술비서관

2017년 01월 31일 19: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열흘이 지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주요 글로벌 이슈들에 대해서 강경 입장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 미국 안팎으로 시끄럽습니다.

 

1월 30일 현재 미국 내 뜨거운 감자는 국경 장벽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대표 공약 중 하나인 멕시코와의 국경지대 장벽 건설을 추진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중동의 7개 이슬람국가(시리아, 예멘, 리비아, 이라크, 수단, 소말리아, 이란) 난민 및 국민에 대한 미국 입국 비자 발급을 제안하는 ‘여행금지령 (travel ban)’에도 서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퇴임 전부터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날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은 오바마 정부의 2011년 이라크 제제와는 다르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대통령 과학기술비서관을 지낸 존 홀드런 박사(왼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홀드런 박사를 이너서클에 두며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대통령 과학기술비서관을 지낸 존 홀드런 박사(왼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홀드런 박사를 이너서클에 두며 중요한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참여시켰다. - 사이언스 제공

●홀드런 박사 다음은 누구?

 

시끄러운 정치경제 분야와는 대조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과학정책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조직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대통령 과학기술비서관(Science Advisor to the President)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이 자리는 대통령의 과학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동시에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을 이끕니다. 미국 대내외 과학기술정책이 결정되는 핵심 요직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미국의 경우 실질적인 정책 결정력이나 파급력에서 대통령 과학기술비서관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는 하버드대 환경정책학 교수였던 존 홀드런 박사가 8년간 과학기술비서관 자리를 지켰습니다. 친(親) 과학기술 성향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식 전에 이미 홀드런 박사를 이 자리에 임명하기로 결정해놓고 있었습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취임식 일주일 전 인수위 위원 한 명이 과학기술정책국과 1시간가량 회의를 진행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과학기술비서관이나 과학기술정책국과 관련한 공식적인 언급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홀드런 박사가 30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확인됐습니다. 

 

미 예일대 컴퓨터 과학자인 데이비드 지런터 교수.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미 예일대 컴퓨터 과학자인 데이비드 지런터 교수. 그는 기후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임명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 유튜브 캡처 

●기후변화 거부하는 과학자 임명?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무관심’에 더해 최근 미국 과학계를 걱정시키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과학기술비서관으로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입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예일대 컴퓨터 과학자인 데이비드 지런터(David Gelernter) 교수와 프린스턴대 물리학자인 윌리엄 해퍼(William Happer) 교수 등 2명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런터 교수의 경우 병렬연산 분야 연구로 두각을 드러냈고, 1992년 자신의 저서 ‘미러 월드(Mirror Worlds)’에서 기술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컴퓨터에 쌓이는 데이터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스코프웨어(Scopware)’를 개발해 IT 기업인 미러월드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에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테러리스트인 존 카진스키, 일명 유나바머의 우편물 폭탄 테러에 당해 오른손과 오른쪽 눈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미 프린스턴대 물리학자인 윌리엄 해퍼 교수.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미 프린스턴대 물리학자인 윌리엄 해퍼 교수.  그는 미 의회에서 기후변화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바 있다. - 유튜브 캡처

올해 78세인 해퍼 교수의 경우 저명한 원자물리학자로 원자시계 연구 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91년부터 2년간 미 에너지부에서 연구비 30억 달러(약 3조5000억 원)를 움직인 책임자를 맡아 정부 일을 한 경험도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는 인정받는 과학자들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09년 해퍼 교수는 미 의회에서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기후변화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원인이 아니라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석유와 석탄 등 에너지 산업 활성화를 내세우며 오바마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을 시종일관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유사해 보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 과학계는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특정 입장을 고수하는 과학기술비서관이 임명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1969년 설립된 미국 비영리 과학자단체인 UCS(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회장인 케네스 키멜은 30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책 발표는 자료나 전문적인 자문보다는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며 “과학기술비서관을 가능한 빨리 임명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등 미국 내 최대 과학단체 미국과학진흥회(AAAS) 대표인 러시 홀트 박사는 17일 MIT 테크놀로지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과학, 기술을 둘러싼 이슈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만큼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국가 안보와 경제, 민주주의를 위해 조언할 수 있는 자문위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과학기술비서관이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쯤 과학기술비서관을 임명할까요. 물론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2001년 1월 취임 이후 6월이 돼서야 과학기술비서관을 임명한 사례가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도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 과학계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홀드런 박사를 형식적인 과학기술비서관이 아니라 자신의 이너서클에 두면서 기후변화부터 ‘정밀의료 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등 국가의 중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참여시킨 것처럼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비서관이 선임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얼바인=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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