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크무비] 외계인 문자 창제기의 숨겨진 이야기

2017년 02월 11일 13:30

 

컨택트에서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문자를 표시하는 모습 -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컨택트에서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문자를 표시하는 모습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에게 가장 큰 혼란의 원인이 된 것은 헵타포드의 ‘글’이었다. 이들의 글은 전혀 글 같지가 않았고, 오히려 정교한 그래픽 디자인의 집합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행(行)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나선형으로 배치된 것도 아닌 그들의 표어문자는 선형적(線形的)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어느 날 거대한 우주선이 상공에 나타나자 인류가 충격에 휩싸인다는 설정은, 너무 많은 SF 소설과 영화 등에서 다루어져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얼마 전 개봉된 〈인디펜던스 데이〉속편의 흥행 참패가 증명하는 것처럼, 그 중에서도 다짜고짜 외계인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는 경우는 아예 호응을 얻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SF소설계의 기린아로 불리는 테드 창의 대표작인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1998년)가 영화화 된다고 발표되었을 때, 많은 SF 팬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앞서 언급된 진부한 설정을 기반으로 하고는 있지만, 네뷸러 상, 스터전 상, 세이언 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은 이 작품이 과연 제대로 영화화될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테크무비] 외계인 문자 창제기의 숨겨진 이야기 - 이철민 제공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가 실린 테드 창의 작품집. - 이철민 제공

다행히 원작 출간 18년만인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된 완성작 〈컨택트〉(원제 Arrival)는,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하는 최상의 결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그을린 사랑〉, 〈프리저너스〉, 〈시카리오〉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드라마의 밀도를 높인 각색,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 몰입도를 극대화한 음향과 음악 등도 매우 뛰었다는 평가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미디어들이 이 영화가 가진 미덕 중 하나로 조금 색다른 면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철저히 독자 각자의 상상력에 의지해야 했던 ‘외계인(헵타포드)의 글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시각화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영화의 제작 과정 전반에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을 깊이 있게 참여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제작진들은 촬영지인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 대학의 제시카 쿤 등 언어학 전문가 세 명을 자문인으로 선정하여 영화의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하여 철저한 감수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문 하에 각 세부 과정별로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별도로 섭외하여 그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취했다.

 

외계인 문자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를 위해 스티븐 울프램 부자가 만들어낸 코드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외계인 문자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를 위해 스티븐 울프램 부자가 만들어낸 코드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표적인 예로 외계인 문자 자체를 시각화하여 만들어낸 과정을 들 수 있다. 처음엔 제작진들이 자체적으로 동양의 고대 문자들을 변형시키는 방법을 시도를 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패트리스 버멧은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마틴 버트랜드를 끌어들였다. 그녀는 잉크가 번진 듯 한 느낌을 주는 원형 덩쿨의 이미지를 도출해냈고, 이 것이 영화 속 외계인 문자의 기초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이미지를 기반으로 패트리스는 자신의 프로덕션 디자인팀과 함께 그 원형 넝쿨의 이미지를 조금씩 변형하여 약 100개의 다른 의미를 가진 일종의 외계인 문자 이미지 샘플들을 제작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어떤 이미지는 한 단어를, 다른 어떤 이미지는 하나의 문장을 나타낸다는 가정을 적용하기도 했고, 유사한 모양의 이미지라도 선의 굵기에 따라 상황의 위급성의 정도를 나타낸다는 가정 등을 적용하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 다음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외계인 문자 이미지 샘플들을 가지고 영화 속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분석하게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아주 기발한 접근 방법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제작진들은 과학·공학 계산용 소프트웨어 매스매티카(Mathematica)를 만들어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스티븐 울프램을 초빙하여 그에게 샘플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스티븐 울프램 부자가 촬영현장에서 제작진 및 배우들과 논의를 하는 모습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티븐 울프램 부자가 촬영현장에서 제작진 및 배우들과 논의를 하는 모습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티븐은 이러한 요청에 매우 흥미를 느꼈지만 시간적 제약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자 역시 뛰어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크리스토퍼에게 주요 작업을 맡겼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울프램 부자의 문자 해독 소프트웨어는 샘플 이미지들을 파이 형태로 분할하여 특정 패턴을 찾는 알고리즘을 그럴 듯 하게 구현한 것이었고, 그 스크린샷들은 영화 속에 그대로 쓰이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전문가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의 핵심 장면들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컨택트〉를 관객들이 훨씬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훌륭한 기반이 되었다. 유사한 설정을 가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년)의 경우, 대형 스피커와 스크린을 통해 음악과 다양한 색의 빛으로 외계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여 즉시 반응을 이끌어낸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1977년작 미지와의 조우에서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모습 - 콜롬비아 픽쳐스 제공
1977년작 미지와의 조우에서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모습 - 콜롬비아 픽쳐스 제공

그런 면에서 〈컨텍트〉는 킵 손 교수가 시나리오 집필에서부터 참여한 〈인터스텔라〉만큼이나, 다양한 전문가들이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과학적인 현실감을 성공적으로 증대시킨 하드 SF의 또 다른 성공 사례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참고
스티븐 울프램의  <컨택트> 제작 참여 과정에 대한 블로그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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