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의 목소리 (10)] 내가 꿈꾸는 과학관

2017년 02월 13일 15:00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명호 작가 제공
김명호 작가 제공

 

 

나는 과학관장이다 . 그것도 무려 역사상 처음으로 세워진 서울시립과학관의 초대 관장이다. “관장이 무슨 꿈만 꾸냐, 그냥 자기가 꿈꾼 대로 당장 만들면 되지.”라고 말씀하시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시립과학관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립과학관은 시민의 것이다. 하여, 시민의 필요에 부응해야 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가 꿈꾸는 과학관은 어떤 곳일까?


런던 이야기 좀 하지 마라 : 연구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가봤어요?”
“샌프란시스코 익스폴로라토리움은 정말 어마어마 하죠!”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아직 미국 물을 못 먹었다. 캐나다와 미국 국경 역할을 하는 세인트로렌스 강 중간에 있는 미국령 하트 섬에 두 차례 가봤을 뿐이다. (그 섬에서는 캐나다 물을 판다.) 그래서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유럽 얘기만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런던의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을 관람하고 오면 칭찬을 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처지에 대한 탄식을 늘어놓는다. 탄식은 우리도 그런 대규모 과학관을 지어야 한다는 열변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런던의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 같은 게 우리에게도 필요할까? 만약에 영국 사람들에게 새로운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앞으로는 간단히 통칭하여 과학관이라고 하자.)을 지을 기회를 준다면 다시 또 그렇게 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규모는 웅장하지만 그리 좋은 곳이 아니다. 너무 많은 표본과 오브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널려 놓았을 뿐이다. 거기는 그냥 구경하면서 사진 찍고 감탄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런던과 파리의 과학관이 아무 것도 아닌 게 절대로 아니다. 그곳들은 과학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를 잘 수행하고 있다. 과학관의 기능이란 첫째, 표본의 수집과 전시, 둘째 교육, 그리고 셋째 연구다. 해외의 대형 과학관들은 연구의 기능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으며 분야에 따라서는 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기관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박사학위를 직접 수여하기도 한다.


과학관의 기본 기능은 연구다. 연구를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쌓인 표본을 어쩔 수 없이 전시관을 지어 전시를 하게 되고, 전시를 하다 보니 시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도 하게 된 것이다.


외국 유수의 과학관이나 박물관을 구경하고 온 사람들은 전시관의 뒤편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연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도대체 과학관에 벤치마킹 하러 간 사람들이 거기에서 몇 명의 과학자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 이유가 뭐냐!) 뜬금없이 화려하고 거창한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온갖 화려한 전시물을 들여놓기 원한다. 그리고 결국 비슷하게 짓고, 비슷한 전시물을 가져다 놓는다.


건물은 작아도 전시물은 보잘 것 없어도 그 안에서는 과학 활동이 일어나야 과학관이다.

런던과학관의 에너지홀 모습. - 런던과학관 제공
런던과학관의 에너지홀 모습. - 런던과학관 제공

과학은 어렵다 : 교육


“과학은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과학은 신나고 재미난 것이잖아요.”


과학 책을 쓰고 과학 강연을 하고 과학관을 지을 때 꼭 듣는 말이다.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과학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는 과학이 어려워서 일찌감치 포기했으면서 왜 아이들에게만 과학이 신나고 재미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가. 다 어렵다. 역사도 어렵고, 영어도 어렵고, 지리도 어렵다. 그리고 과학은 더더욱 어렵다. 세상에 쉬운 게 어디에 있겠는가? 그나마 음악과 미술, 운동이나 무용처럼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는 게 아니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과학은 쉬운 게 아니다. 쉬워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깨달을 때 그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만들었을 때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과 지식이 이 세상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재밌으면서 의미가 있고 또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있는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불확실성이란 애매모호함이 아니다 될 것 같기도 하고 .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 아슬아슬함을 말한다.


1970년대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서는 굽쇠 던지기로 ‘호연지기’를 설명했다. 굽쇠를 아주 가까운 곳에 던져서 성공 확률이 매우 높다든지, 터무니없이 멀리서 던져서 실력이 아니라 운으로 성공여부가 결정되도록 하는 것은 호연지기와 상관이 없고, 연습과 집중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거리에서 도전하는 게 바로 호연지기의 자세라는 것이었다. 적절한 불확실성과 호연지기를 경험하기 제일 좋은 게 바로 과학이다.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과학강연에 다녀와서는 신나서 아빠에게 설명했다.


“아빠,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를 알아요?”
“뭔데?”
“음, 옛날에 시라쿠사 섬에 아르키메데스가 살았어요. (어쩌구 저쩌구)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깨달았어요. 유레카! ‘유레카’는 ‘알았다’라는 뜻이에요. 신이 난 아르키메데스는 발가벗고 유레카를 외치면서 달려갔대요. 너무 재밌어요.”
“그래? 재밌구나. 그런데 부력은 뭐야?”
“그건 이야기 안 해주던대요.”


과학을 쉽고 재밌게만 가르치려다보면 우리는 핵심을 빼놓고 과학자 주변의 일화만을 들려주게 된다. 과학관은 수익을 내야 하는 문화센터가 아니다. 과학관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어렵더라도 과학의 본질에 도전해야 한다. 과학관은 답을 얻어가는 곳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질문을 얻어가는 곳이어야 한다.

 

GIB 제공
GIB 제공

과학자는 실패하는 사람이다 : 전시


“와 멋있다.”
“정말 과학자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아, 나는 과학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과학관에서 보이는 청소년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물론 과학관 전시물을 관람하면서 과학자의 꿈을 꾸는 아이들도 있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는 대부분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 속으로는 과학과 점점 더 멀어진다. 왜냐하면 과학관에는 성공한 연구, 그것도 대성공인 연구 결과만 전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자는 어떠한가?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가설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관측, 관찰, 실험에 실패한다. 자기가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도 실패하고 논문을 쓰고 게재 허락을 받는 데도 실패한다. 매일 실패하다가 어쩌다 한 번 성공한다. 그게 논문으로 남는다. 누가 많이 읽어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쁘다.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나온 그 많은 연구 결과물 가운데 아주 극소수만이 과학관의 전시물로 변하여 화려한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과학관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공, 성공, 대성공의 결과뿐이다. 처음에는 과학자들에게 감탄하고 그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들을 닮고싶다가 어느 덧 그것은 자신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어떤 장벽 뒤의 일처럼 여기게 된다. 그리고 과학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포기한다. 과학은 그냥 관람의 대상일 뿐이다. (내게는 산이 그렇다.)


과학관에 왔다면 구경꾼이 아니라 일시적으로라도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관에서 하는 체험이라는 게 뭔가? 1번부터 10번까지 자세한 안내가 되어 있다. 단지 자기의 손으로 1번부터 10번까지 차례대로 안내에 따라 그대로 반복하면 된다. 그게 요즘 과학관의 체험이다. 망칠래야 망칠 수가 없다. 잘 안 되면 선생님이 대신 해준다. 이런 체험에서는 실패를 경험할 수 없다.


과학관에 왔으면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과학관은 방문객에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방문객은 기꺼이 실패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메이커 활동일 수도 있고 오픈 랩 활동일 수도 있다. 따라하는 게 아니라 뭐든지 직접 고안하고 직접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전부다


대부분의 과학관은 Seeing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곳의 고객은 그야말로 Visitor다. 조금 더 발전한 곳은 Learning을 하는 곳이다. 이곳의 고객은 Learner다. (실제로 몇몇 외국 과학관의 경우에는 visitor와 learner의 통계를 따로 집계한다.) 다음 단계의 과학관은 Doing 하는 곳이다. 이곳의 고객은 Scientist다. 그렇다고해서 Seeing과 Learning은 그만두고 이제 Doing만 하자는 말이 아니다. Seeing의 꺼풀 위에 Learning을 씌우고 그 위에 이제 Doing을 씌우자는 것이다.


도서관은 매주 혹은 매달 가야하는 곳이다. 하지만 과학관은 매년 한 번만 가면 족한 곳이었다. 보면 그만이니까. 미술관과 달리 과학관은 전시가 자주 바뀌는 것도 아니니 당연했다. 이제는 계절마다 아니면 학기마다 과학관에 찾는 청소년들이 있다. 좋은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과학관은 매일, 매주, 매달 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자기가 직접 연구 또는 작업을 하는 곳이면 가능하다.


과학관이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 건물 짓고 장비 사는 것부터 생각하지는 말자. 말이 쉽지, 일반인들이 와서 과학을 한다는 게 얼마나 막연하고 허황된 일인가. 우리가 대학원 실험실에 들어갔다고 해서 자기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 않은가. 대학원에 튜터가 있듯이, 과학관에도 튜터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 전직 교사, 기술자들이 있어야 이것이 가능하다.


건물 건축비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의외로 쉽다. 전시물과 장비를 사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전문가를 고용하는 데는 아주 인색하다. 심지어 인건비는 곧 혈세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관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일을 담당할 사람 이상의 사람이 필요한데 말이다.


내가 꿈꾸는 과학관을 만들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전히 꿈만 꾸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다. 시민들의 이해가 조금 더 커지고 시민들의 필요가 조금만 더 늘어나면 얼마든지 금방 이룰 수 있는 꿈이다. 터무니없이 멀리서 던지는 굽쇠가 아니다. 여전히 재밌고 의미 있으며 적절한 불확실성이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일단은 지금 상태를 ‘행복’이라고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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