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영화] 신파, 조폭 없는 안재홍 주연 코미디 영화 ‘족구왕’

2017년 02월 11일 10:30

# 영화 ‘족구왕’


감독: 우문기
출연: 안재홍, 황승언, 정우식, 강봉성, 황미영
장르: 코미디
상영시간: 1시간 44분
개봉: 2014년 8월 21일

 

광화문시네마 제공
광화문시네마 제공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몸이 후끈 달아오를 만큼 흥미진진한 스포츠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안재홍, 종목은 ‘족구’다. 야구도 있고, 축구도 있는데 많고 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 하필이면 족구라니! (‘이보시오 필자 양반!) 제목과 소재만 봐도 B급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이 영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파헤쳐보자.

 


# ‘대한민국 대학생들 다 족구하라 그래!’
 

광화문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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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구수한 느낌이 팍팍 드는 주인공 ‘만섭’은, 군 제대 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학교로 금의환향한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밥 대신 다시마를 먹는 고약한 취향의 친구 한 명뿐이다. 입대 전 친구들과 즐겨 찾던 족구장은 테니스 코트로 바뀌어 있고, 동아리 방은 이제 남들의 차지가 되었다.

 

광화문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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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며 충고하는 선배에게 공부 대신 연애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수한 청년 만섭. 찌질하다고 놀림받을지언정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복학생이다. 총장과의 대화 행사에서 꿋꿋하게 족구장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캠퍼스 퀸에게 무턱대고 들이대면서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겠냐’는 순진한 논리를 설파한다.


그런데 이 복학생, 말만 앞서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한다면 한다. 직접 족구장 신설 서명 운동을 펼치고, 급기야 전직 축구 국가대표 선수와의 족구 경기에서 승리해 교내에 족구 열풍을 불러 일으킨다. 덕분에 수많은 참가자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된 체육대회를 앞두고, 만섭은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들과 팀을 꾸려 폭풍 연습에 돌입한다. 캠퍼스 퀸에게도 일대일 영어연극 파트너를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기 시작하는데, 과연 만섭은 족구왕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 ‘군도’, ‘명량’, ‘해적’, ‘해무’를 잇는 5대 블록버스터?!

 

광화문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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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에 ‘‘군도’, ‘명량’, ‘해적’, ‘해무’를 잇는 5대 블록버스터’라는 재기발랄한 타이틀로 홍보에 열을 올렸던 ‘족구왕’.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만 6천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 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폭발적인 반응과 자발적인 입소문을 형성한 덕을 톡톡히 봤다.


스포츠 영화이자 청춘물이기도 한 이 영화, 사실은 엄청 웃기다. 한국 코미디 영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조폭’이나, 성적 농담으로 가득한 영화들만 떠오르던 필자에게는 이 영화가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코믹한 대사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진지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만으로 관객들을 웃긴다. 그 흔한 후반부 신파도 없다. 이렇게 순수한 청춘 코미디 영화가 기존 한국영화계에 있었나 싶었다. 게다가 돌아오는 발렌타인 데이, 혼자서도 집에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로 이만한 영화도 없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신한 작품이 탄생한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굿바이 싱글’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김태곤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같은 제작사의 우문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젊은 영화인들이 모인 영화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들은 품앗이하듯 서로의 작품 활동을 돕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기발한 스릴러 ‘범죄의 여왕’을 선보여 다시금 호평받았다.

 


# 반짝반짝 빛나는 안재홍의 발견
 

광화문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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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관객들을 배꼽을 뺏고 폭발적인 입소문을 이끈 주인공은 만섭 역의 안재홍이다. 잘생기지도 않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낭만만큼은 흥건한’ 복학생 만섭을 연기하며, 안재홍은 관객들이 만섭을 사랑하게 만들 정도로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친다.


족구 경기에서 져 울분에 찬 상대방 앞에서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는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던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겠다며 구시대의 유물인 무스를 바르고 철 지난 비디오를 들고 와 영화를 보자고 청하는 캐릭터를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안재홍은 만섭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석 하나쯤은 있는 사람이라고 관객들을 설득해낸다.


‘족구왕’ 개봉 당시엔 대중들이 잘 모르는 배우였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안재홍은 대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순식간에 유명인이 되었다. ‘소셜포비아’로 주목 받은 류준열, ‘잉투기’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류혜영과 사이좋게 스타가 됐다. 이번 주에 개봉한 ‘조작된 도시’에서도 안재홍을 만날 수 있다.

 


# 쪽팔리면 어때? 뭣이 고상한디!
 

광화문시네마 제공
광화문시네마 제공

족구 열풍이 일어나는 학교, 캠퍼스 퀸과 지질한 복학생의 로맨스, 주성치 영화나 일본만화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난데없는 코미디까지.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들이 난무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된 현실이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만섭이 다니는 대학교의 학생처장은 학생들의 취업률에 목을 매고, 족구가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금지하려 한다. 재단의 이사장은 학생들이 공부하다 말고 반값등록금 투쟁에 참여하진 않을지 걱정한다. 학생들은 영어나 시험 공부는 도외시하고 족구에 열정을 불태우는 만섭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족구를 좋아하면 어떻고, 족발을 좋아하면 또 어떤가? 한 번 살다 가는 짧은 인생,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기에도 벅차다.


언제부턴가 우리 청춘들에게는 사랑하고 노는 것도 사치가 되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지고, 열정보다 열정페이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윤준경 시인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 머리엔 장미를 꽂고 가슴엔 방울을 달고 사랑을 하리’. 과중한 업무로, 취업 스트레스로, 또는 시험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매일 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 종종, 가끔씩, 이따금, 때때로, 간간이, 틈틈이 신나게 족구 한 판 어떨까. 우릴 힘들게 하는 모든 걸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좋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3분 안에 볼 수 있는 영화 소개 코너를 준비했다.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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