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53] 채우고 비우는, 휴일 저녁의 걷기운동

2017년 02월 18일 18:00

휴일이면 평일의 지친 심신을 침대에 뉘고 스마트폰이나 책을 쥐고 있다가 다시 스르르 잠드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휴일이었다. 낮잠에서 깨어나니 마치 밀물처럼 이미 서녘 창으로 들어온 짙은 햇볕이 침구를 지나 방문에까지 정박해 있었다. 비스듬히 누웠던 탓에 뒷목과 허리가 뻐근했다. 그 자세 그대로 통증 같은 한두 가지 생각을 좇다 보니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젖은 빨래같이 늘어진 몸과 마음을 추슬러 주섬주섬 두꺼운 양말을 골라 신고 추리닝 바지도 두 개나 껴입었다. 찬바람까지 불어쳐 체감온도가 영하 13도라니 오리털 파커 속에 목도리를 두르고 손에는 털장갑까지 무장했다. 일체형 모자를 끌어올리며 현관문을 나섰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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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주의보까지 발령했다는 바깥 날씨는 꽤 쌀쌀했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는 달리 추위는 정직했기에 견딜 만했다. 바람을 관통하듯 곧장 빠르게 걸었다. 산책로를 따라 타조처럼 기운차게 걸었다. 산책로 한가운데 자리한 야트막한 동산으로 올라갔다. 한 바퀴, 두 바퀴 반. 오르락내리락하며 동산을 맴돌았다. 뺨과 코끝은 시렸지만 어느새 목덜미엔 땀이 배어났다. 시간을 보니 출발한 지 반시간이 지나 있었다. 뛰듯 걸었기에 다리에 피로가 느껴졌지만 두 바퀴만 더 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울 밤하늘처럼 휑한 산책로를 석양빛 가로등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한 바퀴 더 돌고 나니 다리에 힘이 붙었다. 이미 추위는 가셨지만 기분도 상쾌해졌다. 그대로 한 시간은 족히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내 몸에서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 같은 호르몬이 생성된 듯했다. 운동은 최소한 30분 이상 지속해야 한다는 말의 이유가 이 때문이지 싶었다.


꼬박 한 시간을 빠르게 걷고 나서 운동기구 설치대 앞에서 멈췄다. 철봉 손잡이를 쥐고 상체를 늘어뜨렸다. 턱걸이는커녕 어깻죽지가 찢어질 듯 아팠다. 고등학생 때는 체력장 시험에서 스무 개는 거뜬히 했던 턱걸이를 이제는 매달리기조차 못 하는 신세를 무력해진 몸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벤치에 양손을 뻗어 팔굽혀펴기를 시도했다. 열두 개. 내 상체를 잡아끄는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한계였다. 팔은 팔, 다리는 다리이니 다시 걸었다. 걸을 때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허벅지 굵기와 수명이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지만, 무엇보다도 중늙은이는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성큼성큼’이라는 의태어가 실감났다. 한 바퀴를 더 돌고 우리 집 아파트 입구까지 그렇게 걸어왔다. 누가 봤다면, 저이는 왜 저리 화가 나서 씩씩거리듯 걸어가나 하고 오해할 정도였을 테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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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동을 하는 많은 이들이 평일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느라고 심신이 지쳐 있기 십상이다. 일로써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일의 성격과 상대에 따라서 때때로 보람 있기도 하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몹시 불편하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긴장을 수반한다. 그 긴장은 심신에 쌓이는데 그 무게를 덜어내는 시간이 휴일이 아닐까. ‘스트레스’라고도 일컫는 심신의 그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내 경우엔 최우선이 ‘잠’이다. 수면만큼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주는 게 없는 듯하다. 두 번째는 운동이다. 그것도 혼자 하는 걷기운동이 내겐 제격이다. 혼자 걷는 동안 나를 쓸고 가는 바람에 머릿속을 헹구고 다리와 허리 근육에 힘을 불어 넣어 마음과 몸의 헝클어진 매듭을 동여맬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든 허기 같은 빈곳을 채우거나 체증 같은 막힌 것을 비우는 시간과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람마다, 처한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고단하고 고독한 현대인라면 그 시간과 방법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내고 발견하기 마련일 테다. 최근 내게 그 시간은 휴일 저녁이고 그 방법은 걷기운동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요즘 한산한 휴일 저녁마다 걷는다. 복잡한 생각을 걷는다. 다음 휴일 저녁에는 살아온 인생처럼 또 다른 길이 있을 테니, 다른 길을 걸어가야겠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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