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식충식물 세팔로투스 게놈을 해독해보니...

2017년 02월 21일 15:00

난 끈끈이주걱을 절대 믿지 못하게 됐어
친구와 그곳에 갔다가
끔찍한 촉수가
모두 휘어지는 모습을 본 뒤에는

 

다양한 식충식물. 끈끈이주걱(A), 포르투갈끈끈이주걱(Drosophyllum lusitanicum, B), 벌레잡이제비꽃(Pinguicula gigantea, C), 파리지옥(D). - Annals of Botany 제공
다양한 식충식물. 끈끈이주걱(A), 포르투갈끈끈이주걱(Drosophyllum lusitanicum, B), 벌레잡이제비꽃(Pinguicula gigantea, C), 파리지옥(D). - Annals of Botany 제공

1875년 66세의 다윈은 ‘식충식물(Insectivorous Plants)’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다윈 진화론의 지지자인 존 러벅 경의 아내인 엘렌 러벅은 책을 읽고 너무 놀라 위의 시를 지어 다윈에서 보냈다고 한다. 끈끈이주걱은 흔한 풀임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식충동물이라는 실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영어로 끈끈이주걱은 ‘sundew’인데, 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사냥무기였던 셈이다. 다윈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책 ‘식충식물’은 이렇게 시작한다.


1860년 여름 서섹스의 들판에서 끈끈이주걱(Drosera rotundifolia)의 잎에 곤충이 꽤 많이 잡혀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발견 이래 다윈은 식충식물에 대한 얼마 안 되는 문헌을 조사함과 동시에 주로 끈끈이주걱을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 15년 뒤 책까지 낸 것이다. 다윈은 식충식물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식물’이라고 썼다. 다른 많은 분야에서처럼 식충식물 연구도 다윈이 원조인 셈인데, 실제 그가 만든 용어들도 꽤 된다. 끈끈이주걱의 잎에 털처럼 난, 끈끈한 점액이 묻어있는 돌기를 촉수(tentacle)라고 부른 것도 다윈이다. 식충식물이 사로잡은 벌레를 분해하기 위해 소화액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처럼 식충식물의 과학이 정립되는 시기에도 사람들의 상상력은 여전히 못 말리는 수준이었다. 1768년 가장 극적인 식충식물인 파리지옥(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만 분포)의 살아있는 개체가 런던에서 공개될 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뒤 괴담이 줄을 이었다. 즉 북미에는 사람도 잡아먹을 수 있는 거대한 파리지옥이 있다는 것. 실제 코난 도일은 1880년 이를 소재로 한 단편 ‘미국인 이야기(The American's Tale)’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거대 파리지옥은 포충엽의 지름이 3m에 이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부엘은 1887년 발표한 책 ‘바다와 육지’에서 중미에 있는 식인나무 야테베오를 소개했다. 책에 나온 삽화. - Sea and Land 제공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부엘은 1887년 발표한 책 ‘바다와 육지’에서 중미에 있는 식인나무 야테베오를 소개했다. 책에 나온 삽화. - Sea and Land 제공

저널리스트들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제임스 부엘이라는 사람은 1887년 발표한 책 ‘바다와 육지(Sea and Land)’에서 중미에 있다는, 사람을 잡아먹는 나무 야테베오(Ya-te-veo)를 삽화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식충식물에서 ‘발전한’ 식인식물 판타지는 20세기에도 이어져 1960년 개봉된 B급 영화 ‘흡혈식물 대소동(Little Shop of Horrors)’ 등 여러 소설과 영화에 영감을 줬다.


2009년 새로운 식충식물이 보고되면서 사람들의 상상력에 다시 불을 붙였다. 필리핀의 밀림에서 찾은 거대한 네펜시스(Nepenthes attenboroughii)로 포충낭의 폭이 16cm에 이르러 쥐 같은 작은 포유동물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같은 해 나온 한 리뷰논문에서는 식충식물에 대한 이런 ‘헛소문’이 여전하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2012년 10월 한 식물학자가 포충낭에서 죽어있는 뒤쥐를 발견했고 두 달 뒤 찾아가 거의 소화된 상태임을 확인했다. 정말 어딘가에는 사람도 들어갈 만한 거대한 포충낭을 지닌 식충식물이 있을까(아니면 있었을까).

 

2009년 보고된 네펜시스 신종은 포충낭이 워낙 커 쥐도 잡아먹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왼쪽). 실제 2012년 포충낭 안에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뒤쥐가 발견됐는데 두 달 뒤 확인한 결과 거의 소화된 상태였다(오른쪽). - 위키피디아 제공
2009년 보고된 네펜시스 신종은 포충낭이 워낙 커 쥐도 잡아먹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왼쪽). 실제 2012년 포충낭 안에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뒤쥐가 발견됐는데 두 달 뒤 확인한 결과 거의 소화된 상태였다(오른쪽). - 위키피디아 제공

잎이 될 것이냐 포충낭이 될 것이냐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진화’ 2월 6일자에는 식충식물 연구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일본 국립기초생물학연구소를 비롯한 다국적 연구팀은 호주에 자생하는 식충식물인 세팔로투스(Cephalotus follicularis)의 게놈을 해독해 식충식물 진화의 비밀을 어느 정도 밝혀냈다. 세팔로투스는 네펜시스처럼 포충낭으로 벌레를 잡는 식충식물이다.


연구자들이 식충식물 게놈연구의 표준으로 세팔로투스를 선택한 건 잎이 자랄 때 평범한 잎이 될지 포충낭이 될지 결정하는 조건을 찾았기 때문이다. 주전자처럼 생긴 포충낭은 사실 잎이 변형된 기관으로 세팔로투스의 경우 온도가 주요 변수다.

 

즉 15도에서는 90% 이상이 평범한 잎으로 자라는 반면 25도에서는 90%가 포충낭이 된다. 따라서 각 조건에서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하면 식충식물로 진화하는데 필요한 유전자와 그 변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논문에서 온도에 따른 형태 선호도 차이에 대한 이유를 언급한 부분을 찾지 못했지만 필자 생각에 저온에서는 곤충이 별로 없기 때문에 광합성에 유리한 평범한 잎으로 자라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호주에 자생하는 식충식물 세팔로투스의 게놈이 최근 해독됐다. 세팔로투스의 포충낭(앞)은 잎이 변형된 기관으로 정상적인 잎(뒤)과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해 식충식물 진화에 관련된 유전자를 꽤 찾았다. -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호주에 자생하는 식충식물 세팔로투스의 게놈이 최근 해독됐다. 세팔로투스의 포충낭(앞)은 잎이 변형된 기관으로 정상적인 잎(뒤)과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해 식충식물 진화에 관련된 유전자를 꽤 찾았다. -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연구자들은 전체 게놈의 76%로 추정되는 16억 염기를 해독했는데 단백질을 지정하는 유전자가 3만6500여 개인 것으로 드러났다. 식충이라는 일탈적인 특성을 지녔음에도 전반적인 게놈의 구성은 일반 속씨식물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즉 몇몇 유전자의 변이와 발현 차이가 이런 특성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를 좀 더 명확히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일반 잎이 형성될 때와 포충낭이 형성될 때 유전자 발현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 잎이 만들어질 때는 광합성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많이 발현된 반면 포충낭 쪽은 형태형성과 관련된 유전자와 녹말 및 당 대사 관련 유전자, 왁스 생합성 유전자, 병 발생 관련 유전자의 발현이 높았다.


이는 포충낭의 형태와 기능을 생각하면 예상한 결과다. 즉 식충식물은 먹이를 유인해 포획하고 소화한 뒤 흡수해야 하는데 이들 발현의 변화가 각각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즉 형태형성 유전자 발현으로 잎보다 구조가 훨씬 복잡한 포충낭의 전체 골격이 만들어지고 녹말 및 당 대사 관련 유전자가 발현해 벌레를 유인하는 달콤한 액이 나오고, 왁스 생합성 유전자 덕분에 포충낭 위 테두리와 안쪽 면이 미끄러워져 곤충이 중심을 잃고 빠진다. 한편 병 발생 관련 유전자는 변이가 일어나 소화효소로 기능이 바뀐 것으로 밝혀졌다.

 

속씨식물의 진화과정에서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식충식물이 등장했다. 속씨식물 계통도의 일부로 식충식물 진화가 네 곳에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세로 막대 표시). 이 가운데 네 종(위에서부터 세팔로투스, 네펜시스, 끈끈이주걱, 사라세니아)의 소화효소 관련 유전자와 그 변이를 비교한 결과 수렴진화가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속씨식물의 진화과정에서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식충식물이 등장했다. 속씨식물 계통도의 일부로 식충식물 진화가 네 곳에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세로 막대 표시). 이 가운데 네 종(위에서부터 세팔로투스, 네펜시스, 끈끈이주걱, 사라세니아)의 소화효소 관련 유전자와 그 변이를 비교한 결과 수렴진화가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유전자 비교해 수렴진화 입증


연구자들은 세팔로투스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다른 식충식물의 유전자와 비교해 식충식물의 수렴진화 가설을 검증하기로 했다. 식충식물의 경우 포유동물의 진화과정에서 영장목(目)이 나온 것처럼 속씨식물의 진화과정에서 식충식물목이 나온 게 아니라 여러 지점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즉 식충식물이 지닌 목이 다섯 가지나 된다(벼목, 석죽목, 괭이밥목, 진달래목, 꿀풀목). 지금까지 밝혀진 식충식물은 750여 종이다.


연구자들은 세팔로투스(괭이밥목)와 함께 네펜시스(Nepenthes alata, 석죽목)와 끈끈이주걱(Drosera adelae, 석죽목), 사라세니아(Sarracenia purpurea, 진달래목)에서 소화효소와 관련된 유전자를 조사했다. 네 종 가운데 끈끈이주걱만 끈끈이 타입의 덫이고 나머지는 포충낭 타입의 덫이다. 관련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서로 겹치는 경우가 많았고 스트레스 대응 단백질에서 소화효소로 기능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아미노산 치환까지 동일한 경우도 많았다. 즉 실제로 수렴진화가 일어났다는 말인데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속씨식물이 식충식물이 되는 진화과정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식충식물은 대부분 척박한 환경에서 진화했다. 즉 토양에서 뿌리로 흡수할 수 있는 영양분이 얼마 없는 조건에서 살아남으려다보니 잎에서 직접 영양분을 얻는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따라서 영양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식충식물이 광합성에 뛰어난 평범한 잎만 지닌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오히려 밀린다고 한다. 즉 식물이 벌레에 입맛을 들이게 된 건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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