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54] 배드민턴 운동의 단맛과 쓴맛

2017년 02월 25일 18:00

지난주에 이어 운동 이야기를 더 해본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국내의 조기축구회의 동호인보다 인원이 더 많다는 배드민턴 동호회의 한 클럽에서 수년간 그 운동을 즐겼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그 재미에 빠져 사십대 중후반의 여가시간을 주로 배드민턴장에서 보냈다.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대체로 초반 적응에 두세 달이 걸리지만 그동안 동호인 클럽 자율로 운영되는 체육관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다면, 이후로는 누구나 시간 여유만 생기면 스포츠 가방을 메고 자주 찾아가게 되는 곳이 배드민턴 체육관이다. 그 짜릿한 재미 때문에 심지어 어떤 직장인은 회사 일을 빼먹고는 체육관에서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배드민턴에 흠뻑 빠진 경우도 드물지 않다.

 

GIB 제공
GIB 제공

흔히들 동네 놀이터나 공터에서 세트에 1만 원짜리 라켓으로 플라스틱 재질의 셔틀콕을 주고받아봤으리라. 운도 좋고 바람마저 도와줘서 서른 번을 채우면 기뻐서 웃었으리라. 하지만 배드민턴 전용 체육관에서 한 자루에 일이십만 원이나 되는 87g 안팎의 얄팍한 라켓으로 거위털이나 오리털로 만들어진 정식 셔틀콕을 타구해보면 그 경쾌한 손맛은 놀이터에서의 투박한 그 느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기분 좋다. 또한 코트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날리는 하이클리어 타법이나 배드민턴 공격 타법의 꽃인 스매시를 날릴 때의 쾌감은 무리한 운동으로 정형외과를 찾는 한이 있어도 배드민턴장을 다시 찾아가게 하는 스포츠 마약임에 틀림없다.


배드민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테니스든 탁구든 라켓으로 하는 구기종목에서 운동깨나 했다는 건장한 삼사십 대 남성일지라도 이 운동에 입문하면서 오랫동안 배드민턴 운동을 해온 오십대 여성들과 경기를 해보면 안다. 얕잡아본 그 경기에서 형편없는 점수밖에 못 낸 그 남성들의 망가진 자존심은 이튿날에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매며 재도전한다. 하지만 긴 공을 기다리다가 나비처럼 천천히 짧게 날아오는 셔틀콕을 향해 코트 마룻바닥에 온몸을 날려도 실점을 거듭하고는 허탈하게 웃으며 실력을 절감하게 된다. 그들은 곧바로 10회에 10만원씩이나 하는 레슨 수강을 신청하면서 “왜 내가 진작에 이 운동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배드민턴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만만해 보이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이 운동의 매력은 폭넓은 속도감과 매우 민감한 섬세함에 있다. 그 두 조건의 작동으로, 모든 구기종목이 그렇듯 배드민턴 역시 공간과 기술을 이용해 상대편을 속이고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득점하면서 쾌감을 얻는다. 그래서인가 체육관에서는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경기 실력이 좋은 동호인이 주목받는다. 또한 그 실력 서열에 따라 경기 파트너가 정해지고 경기가 운영된다. 그러는 동안 동호인들의 성격과 인격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 정도에 따라 가치관이 충돌되기도 해 종종 인내심과 배려심이 요구된다. 그러다 보니 동호인 간에 인간관계는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한다.

 

GIB 제공
GIB 제공

그렇듯, 배드민턴이라는 생활체육의 ‘단맛’은 운동 자체의 재미요, 그 ‘쓴맛’은 자칫 불편해질 수 있는 동호인 간의 인간관계일 테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의 범위는 개인에서 시작해 삼삼오오 집단화되곤 한다. 대부분의 집단성이 그렇듯, 집단은 결속이라는 명분 아래 단체행동을 요구하고 종래에는 집단이기주의를 드러내게 되어 그 안팎을 구분함으로써 배타의 담을 쌓기 마련이다. 그 구조를 익히 알기에 그 어떤 그룹을 선택하거나 소속되길 거부하는 나 같은 동호인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아웃사이드에 자리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태어나고 그 관계에서 살아가는 이상 누구든 그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범위를 좁게 여길수록 인간은 그 범위 바깥에 대해 각박해진다. 그것이 성별이든 인종이든 민족이든 지역이든 집안이든 가족이든, 종교든 문화든 직업이든, 생활체육 종목이든 동호회든 동호회 속의 여러 사조직이든 말이다. 그 범위를 넓게 두면 지구인으로서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범위를 좁게 두면 자기 가족만의 안녕을 위해 매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어떤 범위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태도가 결정되는 것일 테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