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동물들은 얼마나 똑똑할까

2017년 02월 28일 12:00

학술지 ‘사이언스’는 매년 마지막 호에 ‘올해의 연구 성과’와 입상작 아홉 건을 선정해 소개한다. 지난해에는 예상대로 중력파 검출이 올해의 연구 성과로 뽑혔고 알파고 등 화제가 된 연구들이 입상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입상작 가운데 필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게 과연 열 가지에 뽑힐 연구인가?’라는 의문이 든 성과가 하나 있었다. 바로 유인원의 약간 수준 높은 ‘마음의 이론’에 대한 발견이다.


마음의 이론은 말 그대로 상대의 마음(생각)을 유추해 그에 맞춰 대응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유인원은 상대가 ‘틀린 믿음을 갖고 있을 경우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침팬지와 보노보, 오랑우탄이 모니터에서 펼치는 상황을 지켜본다. 등장인물은 사람과 킹콩(물론 사람이 분장한 것이다).


킹콩은 사람이 방에 둔 물건을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오른쪽 벽돌 뒤에 숨긴다. 그 뒤 상황1에서는 역시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물건을 왼쪽 벽돌 뒤로 옮기고 사람이 떠난 뒤 킹콩도 물건을 갖고 퇴장한다. 상황2에서는 사람이 떠나고 나서 물건을 왼쪽 벽돌 뒤로 옮기고 잠시 뒤 물건을 갖고 퇴장한다. 이제 사람이 돌아와서 물건을 찾으려고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본 유인원들은 어느 쪽 벽돌을 먼저 볼까.


유인원과 사람 모두 마지막 위치를 알고 있는 상황1의 경우 예상대로 왼쪽 벽돌을 보는 쪽이 많았지만(10마리 가운데 8마리), 유인원만 마지막 위치를 알고 있는 상황2에서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위치인 오른쪽 벽돌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12마리 가운데 9마리). 사람이 틀리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유인원이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만이 상대의 ‘잘못된 믿음’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 종이라는 기존 이론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이 실험의 의미가 ‘2016년 10대 연구성과’로 뽑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 동물들이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걸 보여주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지명도 높은 학술지에 실리고 대중매체도 즐겨 다루는 것 같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지난해 출간된 저서 ‘우리는 동물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 만큼 똑똑할까?’에서 동물 인지연구의 역사를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 서술하고 있다. - amazon.com 제공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지난해 출간된 저서 ‘우리는 동물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 만큼 똑똑할까?’에서 동물 인지연구의 역사를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 서술하고 있다. - amazon.com 제공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미국 에모리대의 저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2016년 저서 ‘우리는 동물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 만큼 똑똑할까?(Are we smart enough to know how smart animals are?)’를 보면 오늘날의 이런 훈훈한 분위기가 거져 얻어진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지난 세기 내내 동물의 인지능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힘겹게 투쟁해왔다. 그리고 연구자들도 제대로 된 방법론을 찾지 못해 잘못된 결과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즉 21세기 들어 동물 인지 연구가 꽃을 피운 건 지난 세기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사람들이 ‘동물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똑똑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얼굴 인식은 사람에 고유한 능력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는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도 ‘입증’됐다. 즉 침팬지에게 한 사람의 얼굴사진을 보여준 뒤 그 사람의 얼굴사진(같은 건 아니다)과 다른 사람의 얼굴사진을 나란히 제시할 경우 침팬지는 같은 사람의 사진을 고르지 못한다. 따라서 침팬지는 얼굴 인식 능력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드 발이 “왜 침팬지에게 침팬지 얼굴이 아닌 사람 얼굴로 실험했냐?”고 묻자 연구자들은 “생김새 차이가 뚜렷한 사람 얼굴을 식별하지 못한다면 비슷비슷한 침팬지 얼굴은 당연히 구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설명에 의문이 든 드 발은 미국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리자 파와 함께 침팬지 얼굴 사진으로 같은 실험을 해봤다. 침팬지는 사진을 보자마자 즉각 앞에서 본 얼굴을 골라냈다. 다음에 연구자들은 앞에 제시한 침팬지가 낳은 어린 침팬지의 얼굴사진과 혈연관계가 없는 어린 침팬지 얼굴사진을 보여줬다. 그 결과 침팬지들은 새끼 얼굴사진을 집어 들었다. 즉 얼굴사진으로 친척까지 골라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연구결과가 발표된 게 1999년이다. 책에서 드 발은 “우리에게 두드러진 차이라도 다른 종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동물들은 많은 경우 알 필요가 있는 것만 안다”고 쓰고 있다.

 

세가락갈매기는 자신의 새끼를 식별하지 못한다. 가파른 절벽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100% 자기 새끼일수밖에 없어 굳이 식별할 능력을 지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위키피이아 제공
세가락갈매기는 자신의 새끼를 식별하지 못한다. 가파른 절벽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100% 자기 새끼일수밖에 없어 굳이 식별할 능력을 지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위키피이아 제공

인지능력은 생태적 필요의 결과


한편 까마귀과(科) 새들도 얼굴 인식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다른 종인 사람의 얼굴도 잘 식별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 속담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사람 왕래가 별로 없던 옛날 시골에서 낯선 사람을 보고 까치가 경계 신호를 보낸 셈이다. 반면 까치 연구가가 아닌 다음에야 “못 보던 까치네...”라는 식별능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관심이 있으면 다른 종의 얼굴도 식별할 수 있다. 드 발은 책 곳곳에서 오늘날 동물 인지 연구의 확립에 일본 영장류학자들이 큰 기여를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일본 영장류학자들은 서구인 중심의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놀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즉 일본 연구자들은 침팬지나 일본원숭이에게 사람처럼 각자 이름을 지어줬는데 서구의 저명한 영장류학자들은 “이런 싸구려 감상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참고로 이들은 동물들에 번호를 붙여 불렀다.


또 한 일본 학자가 “100마리가 넘는 일본원숭이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자 서구 연구자들은 ‘거짓말’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어느 영장류연구소를 가도 동물들은 다들 이름으로 불리고 연구자들 역시 ‘연구소 식구들’의 얼굴을 식별한다. 즉 개별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그들의 진정한 능력을 불러낼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드 발은 그럼에도 얼굴 식별 능력의 유무에 따라 그 종의 인지적 우열을 가른다는 건 난세스라고 덧붙인다. 예를 들어 세가락갈매기는 자신들의 새끼도 알아보지 못한다. 물론 다른 갈매기들은 자기 새끼를 잘 알아보고 따라서 둥지에 다른 새끼가 있으면 쪼아 내쫓는다. 그렇다면 세가락갈매기는 어쩌다 이렇게 인지능력이 떨어졌을까.


땅에 둥지를 트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리 이들은 가파른 절벽에 둥지를 짓는다. 따라서 다른 둥지의 새끼가 자기 둥지로 넘어올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즉 자기의 새끼를 식별할 능력이 없어도 남의 새끼에게 먹이를 줄 일은 없다는 말이다. 드 발은 “모든 종은 자신의 생태환경에 맞게 적응돼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놀라운 연구결과가 지난 2011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미국 중서부에 사는 한 말벌(Polistes fuscatus)은 정교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각 구성원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각자 얼굴의 노란색과 검은색 패턴이 다른데 이를 식별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말벌 한 마리를 잡아 얼굴에 점을 하나 찍은 뒤 놓아주자 말벌들이 외부침입자로 인식해 공격했다. 반면 정교한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은 말벌들은 이런 얼굴 식별 능력이 없었다.


드 발은 “생물학자들은 메커니즘과 기능을 구분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동물의 세계에서는 같은 목적(기능)을 이루기 위해 다른 수단(메커니즘)을 사용하는 게 아주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뇌세포를 다 합쳐봐야 100만 개도 채 되지 않는 곤충이지만 이를 어떻게든 활용해 얼굴 인식 능력을 획득한 것이다. 결국 진화계통수로 인지능력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 중서부에 사는 한 말벌(Polistes fuscatus)은 각자 얼굴이 조금씩 다르게 생겼고 이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Michael Sheehan 제공
미국 중서부에 사는 한 말벌(Polistes fuscatus)은 각자 얼굴이 조금씩 다르게 생겼고 이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Michael Sheehan 제공

공을 굴리는 뒤영벌


‘사이언스’ 2월 24일자에는 곤충의 인지 능력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힌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영국 퀸메리 런던대 연구자들은 꿀벌과(科) 곤충인 뒤영벌을 대상으로 융통성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곤충의 인지 능력을 입증하는 실험은 많이 있었지만 이는 유전자에 각인된 정형화된 행동일 뿐이라는 해석이 있다.


연구자들은 레슬링 경기장처럼 생긴 파란색 원형 바닥에 노란 공을 하나 놓고 뒤영벌이 공을 굴려 5분 안에 가운데 원 안에 놓으면 설탕물을 먹을 수 있게 훈련했다. 처음에는 가짜 벌(끝에 벌 무늬를 그린 이쑤시개처럼 생긴 막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줬다. 이렇게 48시간 동안 학습을 마친 아홉 마리를 대상으로 실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아홉 마리 모두 성공했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공을 옮기는데 드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반면 영문을 모르는 대조군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뒤영벌은 공을 특정 지점으로 굴리면 설탕물을 보상으로 받는 학습을 이해할 뿐 아니라 이를 응용해 좀 더 쉬운 길을 찾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사이언스 제공
뒤영벌은 공을 특정 지점으로 굴리면 설탕물을 보상으로 받는 학습을 이해할 뿐 아니라 이를 응용해 좀 더 쉬운 길을 찾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사이언스 제공

다음으로 뒤영벌의 학습능력과 사고의 유연성을 알아보는 실험에 들어갔다. 원형 바닥에는 공이 세 개 있는데 중심에서 거리가 각각 다르다. 첫 번째 그룹은 뒤영벌이 가장 멀리 있는 공을 가운데로 옮기면 보상으로 설탕물을 받는 모습을 보여줬다. 두 번째 그룹은 가장 멀리 있는 공이 저절로 가운데로 굴러가(밑에서 자석으로 조종) 설탕물이 공급되는 모습을 봤다. 세 번째 그룹에게는 가운데 공과 설탕물이 있는 상태만 보여줬다.


실제 벌이 공을 옮겨 꿀물을 얻어먹는 광경을 본 뒤영벌들은 실전에 나서 99% 성공했고 공을 옮기는데 평균 47초가 걸렸다. 게다가 70% 이상은 앞서 지켜본 벌이 옮긴 가장 멀리 있는 공이 아니라 중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공을 옮겼다. 공이 저절로 움직이는 장면을 본 벌들은 78%의 성공률을 보였고 평균 78초가 걸렸다. 역시 대부분 가장 가까이 있는 공을 옮겼다. 공과 설탕물이 가운데 있는 상태만 본 벌들은 35%만 성공했고 평균 96초가 걸렸다.


한편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공을 검은색으로 바꿔도 세 그룹 모두 가까운 공을 가장 많이 선택해 굴렸다. 즉 공의 색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벌이 단순히 행동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원리를 안 뒤 더 나은 경로를 찾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며 “이는 지금까지 곤충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행동의 유연성”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일을 해낸 뒤영벌만큼이나 이런 실험을 고안한 연구자들도 똑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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