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가 남긴 스마트폰 시장의 흔적

2017년 03월 01일 15:00

MWC에는 수많은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옵니다. 개막 전 LG전자의 G6부터 화웨이의 P10, 소니 엑스페리아 XZ 등 큼직한 기업들이 제품을 발표했습니다. 이 외에도 레노버, ZTE, 오포, 지오니 등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공개했습니다. 그 중에서 두 회사의 제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노키아가 발표한 2, 5, 6스마트폰과 세일피시OS(SailfishOS)를 쓴 스마트폰입니다.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은 올 초부터 돌았습니다. 노키아는 지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스마트폰 관련 비즈니스를 모두 매각하면서 휴대전화 시장을 떠난 바 있습니다. 노키아는 그 매각 대금을 기반으로 휴대전화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네트워크 시장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노키아는 조용하지만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설마 아직도 노키아가 '스마트폰 사업하다가 망한 회사'라고 생각하신다면 최근 노키아의 주가가 많은 부분을 설명해줄 겁니다.

 

최호섭기자 제공
노키아는 MWC를 앞두고 3가지 스마트폰을 공개했습니다. 안드로이드7.1.1과 금속 케이스 등 솔깃한 구성입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그런데 노키아가 그 지긋지긋한 스마트폰 시장에 발을 또 들였다는 건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일단 두 가지 관점에서 지켜볼 일입니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 문제입니다. 노키아는 모든 휴대전화와 관련된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죠. 하지만 그 약속이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약속 기간이 바로 올해 초에 끝났습니다. 계약상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다시 만들어 팔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노키아가 무엇때문에 스마트폰을 다시 만들었냐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번에 발표된 제품들은 모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입니다. 노키아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윈도우폰'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그와 관련된 부분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겼고, 노키아는 그 동안 생각하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준비한 셈입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이 제품을 직접 만들지 않았습니다. HMD라는 핀란드 회사가 개발과 생산을 맡았습니다. 노키아는 그저 이름을 빌려준 게 전부입니다. 대신 노키아는 스마트폰과 관련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고, HMD는 노키아의 이름을 빌려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벌써 노키아 스마트폰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이 전략은 성공한 것이지요.

 

그럼 노키아는 왜 HMD의 제품을 팔아줄까요? 복잡한 계산이 있었겠지만 표면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HMD의 멤버들이 노키아에서 일하던 직원이라는 점입니다. 노키아를 나가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들고, 그걸 다시 노키아와 협력해서 판매하는 모양새입니다.

 

노키아는 다시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OS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대한 경험과 욕심을 녹여낸 듯 합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노키아는 다시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OS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대한 경험과 욕심을 녹여낸 듯 합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제품도 잘 만들었습니다. 성능도 그리 부족하지 않고, 디자인도 잘 나왔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금속 케이스에 배터리 일체형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워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값은 200달러대로 그야 말로 '파격'입니다.

 

또 다른 기업, 바로 '욜라(Jolla)'입니다. 우리말로는 어감이 별로 좋진 않지만 이 회사는 스마트폰 자체적인 운영체제를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흔치 않은 회사지요. 욜라가 갖고 있는 운영체제는 '세일피시OS(SailfishOS)'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바로 노키아가 심비안의 후속으로 개발하던 ‘미고OS’입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미고를 포기했고, 이 운영체제를 만들던 인력들은 이를 계속 키워갔습니다.

 

욜라(Jolla) C입니다. 1.3GHz로 작동하는 스냅드래곤212 프로세서를 썼는데도 아주 빠르고 매끄럽게 작동합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욜라(Jolla) C입니다. 1.3GHz로 작동하는 스냅드래곤212 프로세서를 썼는데도 아주 빠르고 매끄럽게 작동합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세일피시OS는 아직 시장이 작습니다. 저도 말로만 듣다가 실제 제품으로는 처음 봤습니다. 제품들은 대체로 스냅드래곤 400, 혹은 200 시리즈로 구동됩니다. 으레 이 프로세서들이라고 하면 거들떠도 보지 않겠지만 세일피시OS는 이 프로세서만으로도 아주 가볍고 빠르게 작동합니다.

 

이 운영체제에 맞춘 네이티브 앱도 꽤 많고, 안드로이드 앱도 돌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버튼 없이 화면을 미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을 쉽게 다룰 수 있고, 한 눈에 많은 정보를 살필 수 있는 대시보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간단하면서도 예쁜 운영체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두 회사의 연결고리를 읽으셨나요? 네, 둘 다 노키아의 뜨거운 감자였던 스마트폰이 해체되면서 나온 잔재입니다. '잔재'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긴 한데, 안 좋은 의미라기보다는 노키아가 갖고 있는 경험이나 기술이 기업의 사업적, 혹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빛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 비로소 그 사업을 포기한 뒤에 또 다른 경쟁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세일피시OS는 낯선 디자인이지만 요즘처럼 안드로이드 일색의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합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세일피시OS는 낯선 디자인이지만 요즘처럼 안드로이드 일색의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합니다. - 최호섭기자 제공

 

핀란드도 애초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이 무너졌을 때 나라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샀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봤고, 그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그 동안 지멘스와 합자 사업으로 이끌던 '노키아지멘스네트워크'에 집중하기로 했고, 결국 하나의 부서였던 사업을 회사의 중심으로 전환했습니다. 네, 그래서 노키아는 결과적으로 잘 됐지요. 그럼 핀란드 경제는 무너졌을까요? 아닙니다.

 

2014년 노키아는 그 증거를 보여주고 싶어했고, 본사에서 직접 초청을 받아 핀란드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기자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핀란드 정부가 한국 기자들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레니타 토이바카 핀란드 유럽·통상장관은 노키아의 위기가 핀란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단순히 자국 기업에 대한 홍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하면서 인재들 중 상당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갔지만 또 다른 상당수는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게 지금 전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게임 회사인 '수퍼셀'입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회사지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기반 스타트업이 싹트기 시작한 겁니다.

 

욜라나 HMD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노키아가 지금까지도 끙끙대고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면 회사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겁니다. 전략도 파격적입니다. HMD가 만든 새 스마트폰은 대부분의 요소들을 구글에 맡기고, UX 변경이나 앱 추가는 최소화했습니다. 발표된 제품의 운영체제도 안드로이드 7.1.1입니다. 가장 최신 운영체제지요. 필요한 부분은 이용자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채우고, 하드웨어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만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시장을 잡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변화를 이야기했는데, 그럼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폭탄을 다 맞은 걸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윈도우폰은 썩 좋은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그 덕분에 현재 윈도우10의 얼개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모바일 윈도우는 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폰'을 내놓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지요. 그 기반 기술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 역시 노키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겁니다. 결국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은 해체됐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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