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폭력, 어떤 경우에 더 많이 일어날까?

2017년 03월 12일 09:00

성폭력은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 없이 신체적 힘 또는 권력 등을 이용해 원치 않는 성적 관심을 쏟거나,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성적 행위를 강요하는 모든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행위”.

 

성폭력은 욕구의 해소 못지 않게 타인의 몸과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통제감 또는 권력감(자신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얻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일례로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꽤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높은 권력감) 남성들보다 그렇지 않은 남성들이 이전에 사귀었던 여성들에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성적 요구를 더 많이 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Lisak & Roth, 1988).


이와 함께 왠지 부인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하는 남성들이, 또 부인의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남편보다 더 높은 가정의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더 ‘가정폭력’을 많이 보인다는 결과들이 있었다(Kaukinen, 2004).


또한 최근의 연구에서는 ‘온라인 게임’에서 실력이 나쁜 남성일수록 여성 플레이어에게 언어적 성추행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Kasumovic & Kuznekoff, 2015).


이렇게 성폭력은 많은 경우 ‘힘’의 추구와 상관을 보이며 특히 자신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다던가 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약자’를 제압해 보임으로써 내가 아직은 이런 사람이라는 우월감과 권력감을 재획득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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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권력을 얻었는데 나와 사귀지 않겠다니!!


그리고 최근 이러한 권력감 획득 수단으로서의 성폭력에 관한 자세한 연구가 나왔다.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윌리암스(Williams) 등의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견을 했다(Williams et al., 2016).


처음부터 권력을 가지고 있던 남성들보다 갑자기 급(急) 높은 권력감(acute high power)을 갖게 된 남성들이 더 자신에게 매력적인 여성에 대한 접근권한이 있다고 (허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을 많이 보였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권력이 없다가 주어졌을 때, 즉 권력에의 갈망이 한창 높을 때 권력을 갖게 되면 힘의 ‘짜릿함’을 더 잘 알기 마련이다. 또 힘들게 얻은 권력으로 뽕을 뽑아야겠다는 (힘으로 섹스를 착취할 수 있는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모드가 된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을 통제해 보임으로써 자신의 힘을 더 공고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총 5가지의 서로 다른 연구를 했다. 사람들에게 평소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꽤 영향력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묻고(평소의 권력감), 그 다음 자신이 ‘리더’가 되었던 경험 등을 떠올리게 해 권력감을 급 높였다. 통제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얼마 전 마트에 갔던 경험을 떠올려보라며 권력과 상관 없는 처치를 했다.


그리고 나서 한 매력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활발해서 다른 남성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던 여성인데 이 여성이 당신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 이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상황을 상상해 보게 했을 때 권력감이 원래 높았던 사람이나 통제집단의 사람들에 비해 ‘권력감이 낮았는데 급 권력감을 느낀’ 사람들이 ‘이 여성은 남성을 통제하려 드는 나쁜 여성이다’, ‘이 여자랑 사귀게 되면 잡혀살게 될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반응은 ‘적대적 성차별(hostile sexism)’의 일종으로, 적대적 성차별을 보이는 사람들은 본인은 여성을 평가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인다. 남성이 여성을 통제해야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여성을 좋은 여성과 나쁜 여성으로 이분하고 그 기준이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섹시한 여자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 고분고분 ‘통제 가능’해야 좋은 여성이라고 보는 반면 섹시해도 자기를 거부하면 남자를 통제하려 드는 나쁜 여자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매력적인지의 여부보다 통제가 가능한지 여부에 의해 여성을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만성적으로 낮은 권력감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권력감을 느낀 남성들이 이러한 경향을 더 많이 보였다. 여성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긴장, 걱정, 두려움 등 다른 부정적 감정에 비해 ‘공격’적 정서인 화, 분노, 짜증, 복수심 등의 감정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드디어 권력을 얻었는데 감히 네가 나와 사귀지 않겠다니!!”라고 하는 듯한 반응이다.

 


권력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폭력


또 다른 실험에서는 본인이 어떤 회사에 높은 직급으로 앉아 있는데 마음에 드는 여성이 면접을 보러온 상황을 상상해보게 했다. 그리고서 이 여성에게 성관계를 대가로 일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겠는지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 급 높은 권력을 갖게 된 남성들이 원래 권력감이 높았던 남성들에 비해 더 그런 성폭력을 저지를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직장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 부하직원이 있는데 그 여성은 자기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여성에게 여러가지 부적절한 행동들(어깨 등 신체부위를 만진다, 여성의 몸에 자신의 팔을 두른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성에게 성관계를 강요한다 등)과 나쁘지 않은 행동(여성을 칭찬한다, 업무를 도와준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을 준다 등)들을 섞어서 보여주고 각 행동들을 얼마나 하겠는지 물었다.


그 결과 이번에도 원래는 권력감이 낮았지만 급 권력감을 느낀 남성들이 원래 권력감을 느끼고 있었던 남성들에 비해 부적절한 행동을 더 기꺼이 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의 약 70%가 성폭력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반면 원래 권력감을 느끼던 남성들이나 통제집단 남성들은 30% 정도만 부적절한 행위를 하겠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여성이 진급을 해서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성이 진급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시나리오 말고 실제로 한 여성 참가자(실제로는 실험자의 조력자)의 ‘상사’가 되어 함께 일하는 상황(채팅으로 여러 평범한 문장들 및 성희롱 문장들 중 몇 개를 골라 여성에게 외우도록 시킴)에서는 이들 남성이 여성에게 더 높은 빈도로 ‘오늘 밤에 나랑 뭐 할래?’, ‘그 옷을 입고도 이쁘니 안 입고 있으면 더 이쁘겠다’, ‘공짜로 산부인과 검진 해줄까?’ 등의 저질스러운 문장을 골라 보내는 등 언어적 성폭력을 더 많이 하기도 했다.


‘나는 더 많은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 ‘나를 이렇게 밖에 취급하지 않는 세상이 나쁘다’에 크게 동의하는 등 권력욕이 큰 정도가 이들 남성이 여성을 추행하는 행동을 일부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연구자들은 "자신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왔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권력감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크고 그 한 가지 수단으로 성폭력을 휘두르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폭력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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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보상물?


또한 힘을 얻으면 섹스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인식(power-sex association)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아래 직급 여성이 자신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보다 성적 존재로 대상화 하며, 자기와 섹스를 하도록 힘을 이용할 의사도 높다는 연구도 있었다고 한다(Kunstman & Maner, 2011).


좋은 학교만 가면, 좋은 직장만 얻으면 여자가 자연스럽게 '보상물'로서 따라올 거라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힘을 갖게 되었을 때 마치 맡겨놓은 섹스 달라는 듯이 여성들을 추행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권력과 성폭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양상이 어떨 때는 매력적인 여성과의 섹스는 나의 ‘권리’라는 생각으로 나타나고, 또 어떨 때는 타인을 통제함으로써 권력감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나는 등 구체적으로 권력 ‘행사’ 또는 권력 ‘추구’(또는 둘 다)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권력을 휘두르고 추구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게 종종 ‘여성’을 향해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행사되곤 한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많은 갑질들이 그러하듯 힘을 가졌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사회의 인식이나 문화 역시 책임질 부분이 커 보인다.


남성이 항상 여성 위에 존재해야 하며 항상 세 보여야 하고 ‘기’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하는 성차별적 인식 역시 남성들로하여금 ‘과도한’ 권력욕을 갖게 만들고 소위 잘 나가는 여성들에게 금세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등 권력 추구형 폭력 행사에 일조할 것 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성폭력에 대응할 때 단순히 ‘성욕’의 문제로 가져가기 보다 ‘권력형 범죄’로서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조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인식이 좀 더 자리잡길 바래본다.

 


※ 참고문헌
Lisak, D., & Roth, S. (1988). Motivational factors in nonincarcerated sexually aggressive me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5, 795–802.
Kaukinen, C. (2004). Status compatibility, physical violence, and emotional abuse in intimate relationships.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66, 452-471.
Kasumovic, M. M., & Kuznekoff, J. H. (2015). Insights into sexism: Male status and performance moderates female-directed hostile and amicable behavior. PLoS ONE, 10, e0131613.
Williams, M. J., Gruenfeld, D. H., & Guillory, L. E. (2016). Sexual Aggression When Power Is New: Effects of Acute High Power on Chronically Low-Power Individu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 201–223.
Kunstman, J. W., & Maner, J. K. (2011). Sexual overperception: Power, mating motives, and biases in social judg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0, 282–294.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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