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아킬레스건의 재료과학

2017년 03월 07일 14:00

아일랜드, 영국이라는 아킬레스의 취약한 뒤꿈치여!(Ireland, that vulnerable heel of the British Achilles!).
- 사무엘 콜리지


신화를 보면 인간의 운명은 미리 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비극적인 테마를 지닌 이야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킬레우스 이야기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사람(프티아의 펠레우스 왕)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자신처럼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데(신과 사람 사이의 혼혈이라) 상심한다. 결국 테티스는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몸을 담그면 손상에서 지켜준다는 하계의 스틱스 강을 찾는다. 그런데 아기의 몸을 담글 때 발뒤꿈치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물에 닿지 않았다. 자라서 영웅이 된 아킬레스는 결국 트로이 전쟁에서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전사한다.


오늘날 누군가(또는 무언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얘기할 때 ‘아킬레스건’이라는 은유가 진부할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물론 번역어일 텐데 정작 영어를 보면 ‘Achilles tendon’이 아니라 ‘Achilles’ heel’이 이런 뜻으로 쓰인다. 아마도 번역을 할 때 ‘아킬레스의 뒤꿈치’라고 직역하는 게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나 보다. 실제 이런 은유가 처음 등장한 건 앞에 인용한 영국 작가 사무엘 콜리지의 문장으로 1810년이다. 그리고 ‘Achilles’ heel’이라는 표현이 처음 쓰인 건 1840년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리스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추세라 아킬레우스로 쓰고 있지만 유독 아킬레스건에서만 미국식 발음을 유지하고 있다. ‘아킬레우스건’ 역시 좀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아무튼 독일 조각가 에른스트 헤르터의 1884년 작품 ‘죽어가는 아킬레우스’를 보면 아킬레우스는 뒤꿈치 바로 위 힘줄, 즉 아킬레스건에 정통으로 화살을 맞았다.

 

독일 조각가 에른스트 헤르터의 1884년 작품 ‘죽어가는 아킬레우스’. 아킬레우스가 아킬레스건을 정통으로 맞춘 화살을 뽑으려하고 있다. - 위키피이아 제공
독일 조각가 에른스트 헤르터의 1884년 작품 ‘죽어가는 아킬레우스’. 아킬레우스가 아킬레스건을 정통으로 맞춘 화살을 뽑으려하고 있다. - 위키피이아 제공

인체에서 가장 큰 힘줄


아킬레스건은 다리 뒤쪽의 장딴지근과 가자미의 힘줄이 하나로 합쳐진 힘줄로 뒤꿈치뼈에 달라붙어 있다. 아킬레스건은 우리 몸에 있는 힘줄 가운데 가장 커서 엄지와 검지로 발목 뒤에 있는 아킬레스건을 쉽게 집을 수 있다. 참고로 힘줄은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조직이고 인대는 뼈와 뼈를 연결하는 조직이다.


의학서적에 아킬레스건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필립 베헤옌의 1693년 저서 ‘인체 해부학(Corporis Humani Anatomia)’이다. 인류의 이족보행은 잘 발달된 아킬레스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걷고 달리고 뛰어오르는 게 모두 강력한 아킬레스건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유인원들은 아킬레스건이 보잘 것 없고 따라서 두 다리로 걷고 뛰는 게 편할 리가 없다.


아킬레우스처럼 전쟁터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칠 일은 없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생겨 고생한다. 사고나 지나친 운동으로 탈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염증이나 파열이지 힘줄이 뼈에서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다른 힘줄에서도 마찬가지다. 힘줄이 찢어질 정도로 힘을 받았다면 그 전에 힘줄과 뼈 사이가 먼저 떨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벽에 본드로 붙여놓은 옷걸이가 무거운 옷을 걸면 못 견디고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아킬레스건은 장딴지근과 뒤꿈치뼈를 이어주는 힘줄이다. 무리한 힘을 받으면 파열될 수 있지만 힘줄과 뼈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 www.fairview.org 제공
아킬레스건은 장딴지근과 뒤꿈치뼈를 이어주는 힘줄이다. 무리한 힘을 받으면 파열될 수 있지만 힘줄과 뼈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 www.fairview.org 제공

콜라겐 구조뿐 아니라 조성도 달라져


학술지 ‘네이처 재료’ 최근호에는 힘줄과 뼈 사이에서 이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논문이 실렸다. 독일 뮌헨공대 연구자들은 힘줄과 뼈가 만나는 지점인 ‘힘줄뼈부착부위(enthesis)’의 자세한 구조를 알아보기 위해 형광현미경, 전자현미경, 마이크로CT(컴퓨터단층촬영) 등 첨단 장비를 총동원했다. 이들은 사람 대신 돼지의 발목 시료를 써서 아킬레스건과 뒤꿈치뼈를 잇고 있는 부위를 촬영해 분석했다.


논문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힘줄의 구조를 살펴보자. 힘줄은 주로 콜라겐(collagen)이라는 섬유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콜라겐 하면 피부 주름과 관련해 익숙한 이름이지만 사실 피부뿐 아니라 뼈, 힘줄, 연골, 치아 등 많은 신체조직의 주성분이다. 실제 우리 몸에 있는 단백질의 30%가 콜라겐이다. 콜라겐은 구성 아미노산에 따라 28가지 유형이 알려져 있는데 힘줄과 뼈를 이루는 건 주로 유형1 콜라겐이다. 그럼에도 힘줄과 뼈가 겉보기에 크게 다른 건 칼슘 같은 미네랄의 함량 때문인데 뼈의 경우 미네랄이 많아 석회화가 되면서 단단해졌다.

 

콜라겐섬유는 콜라겐단백질이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콜라겐 사슬 세 개가 삼중나선을 이룬다(위). 이 단위가 종횡으로 반복돼 콜라겐원섬유를 만들고(가운데), 원섬유 여러 가닥이 모여 콜라겐섬유가 된다(아래). - 위키피디아 제공
콜라겐섬유는 콜라겐단백질이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콜라겐 사슬 세 개가 삼중나선을 이룬다(위). 이 단위가 종횡으로 반복돼 콜라겐원섬유를 만들고(가운데), 원섬유 여러 가닥이 모여 콜라겐섬유가 된다(아래). - 위키피디아 제공

콜라겐단백질은 대략 아미노산 1000개로 이뤄진 사슬 세 개가 서로 꼬여있는 ‘삼중나선’ 구조다. 따라서 지름이 1.5㎚(나노미터)에 불과하고 길이도 300㎜ 정도다. 이런 콜라겐 단위체들이 서로 엮여 지름 20~100㎜ 크기의 콜라겐원섬유(collagen fibril)를 만든다. 그리고 콜라겐 원섬유가 뭉쳐 지름이 수십~수백㎛인 콜라겐섬유(collagen fiber)가 된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고래심줄(힘줄)처럼 질기다’는 말이 나왔다.

 

돼지 아킬레스건의 힘줄뼈부착부위 부근의 확대 이미지. 가운데 육면체는 마이크로CT 영상으로빨간 네모를 확대한 왼쪽 위 사진을 보면 경계면에서 콜라겐섬유가 갈라져 있다. 왼쪽 아래는 공초점현미경 사진이다. 녹색 네모를 확대한 오른쪽 위 사진은 경계면 너머 힘줄의 콜라겐섬유로 굵다. 왼쪽 아래는 주사전자현미경 사진이다. - 네이처 재료 제공
돼지 아킬레스건의 힘줄뼈부착부위 부근의 확대 이미지. 가운데 육면체는 마이크로CT 영상으로빨간 네모를 확대한 왼쪽 위 사진을 보면 경계면에서 콜라겐섬유가 갈라져 있다. 왼쪽 아래는 공초점현미경 사진이다. 녹색 네모를 확대한 오른쪽 위 사진은 경계면 너머 힘줄의 콜라겐섬유로 굵다. 왼쪽 아래는 주사전자현미경 사진이다. - 네이처 재료 제공

돼지 아킬레스건의 힘줄뼈부착부위를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뼈와 닿는 힘줄말단 500㎛ 영역이 나머지 힘줄과 구조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힘줄의 콜라겐섬유 지름이 평균 105㎛인데 반해 말단은 평균 13㎛에 불과했다. 즉 힘줄의 콜라겐섬유가 뼈에 들러붙기 전에 수십 가닥으로 갈라졌다는 말이다. 또 힘줄이 붙는 뼈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콜라겐섬유와 뼈가 닿는 표면적이 크게 늘어났고 따라서 접착력도 강해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질량분석기로 힘줄과 힘줄말단(힘줄뼈부착부위)의 단백질 조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둘 사이에 꽤 큰 차이를 보였다. 즉 힘줄말단 500㎛ 영역에서는 유형1 콜라겐 대신 유형2 콜라겐이 주를 이뤘다. 즉 콜라겐 섬유의 구조만 바뀌는 게 아니라 조성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히알렉탄(hyalectan)과 SLRP 같은 단백당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당백당(proteoglycan)은 단백질과 당으로 이뤄진 복합분자다.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한 결과도 이런 분석 결과와 잘 맞았다. 

 

힘줄뼈부착부위 부근을 도식화한 그림으로 왼쪽부터 뼈, 경계면(힘줄뼈부착부위), 힘줄이다. 최근 연구결과 힘줄뼈부착부위는 강력한 접착력을 내는데 최적화하기 위해 힘줄과 콜라겐섬유의 구조뿐 아니라 조성도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 아래 설명은 위로부터 유형1 콜라겐 함량이 높은 섬유, 유형2 콜라겐 함량이 높은 섬유, 히알렉탄 단백당, SLRP(단백당의 일종), 석회화 정도다. - 네이처 재료 제공
힘줄뼈부착부위 부근을 도식화한 그림으로 왼쪽부터 뼈, 경계면(힘줄뼈부착부위), 힘줄이다. 최근 연구결과 힘줄뼈부착부위는 강력한 접착력을 내는데 최적화하기 위해 힘줄과 콜라겐섬유의 구조뿐 아니라 조성도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 아래 설명은 위로부터 유형1 콜라겐 함량이 높은 섬유, 유형2 콜라겐 함량이 높은 섬유, 히알렉탄 단백당, SLRP(단백당의 일종), 석회화 정도다. - 네이처 재료 제공

그렇다면 힘줄 말단의 조성변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힘줄은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조직으로 일종의 스프링이다. 즉 발걸음을 내디딜 때 당겨진 아킬레스건이 발을 뗄 때 수축되면서 장딴지근의 일을 많이 덜어준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게 바로 콜라겐섬유의 점탄성 때문이다. 반면 힘줄말단의 경우는 힘줄과 뼈가 서로 달라붙어 엄청난 힘에도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하므로 섬유가 나란히 배열된 구조(점탄성에 최적화) 대신 그물망 구조를 이뤄야 한다. 실제 유형2 콜라겐은 관절연골의 주성분으로 그물망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단백당은 큰 힘을 받는 조직에 많이 존재해 완충 역할을 한다. 표면이 음전하이기 때문에 힘을 받아 조직이 수축되면 단백당 분자들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정전기적 반발력이 커져 버티는 것이다. 힘줄뼈부착부위가 큰 힘을 받아도 짜부라지지 않고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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