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자의 문화산책] 찬란했지만 쓸쓸한 숨겨진 인재들, ‘히든 피겨스’

2017년 03월 12일 18:00

※기자 주

본 기사는 3월 23일 개봉 예정인 영화 ‘히든 피겨스’의 주요 내용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인데다, 휴먼 드라마 장르라 이 기사를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해서 흥미를 반감시킬 특별한 ‘반전’은 없기에 부담없이 영화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수학기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주목해 볼만한 영화 ‘히든 피겨스’ 내용을 담았습니다.

 

냉전시대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련)의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데에는,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로 구성된 계산원 들의 공헌이 컸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냉전시대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련)의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데에는,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로 구성된 계산원 들의 공헌이 컸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어머, 이건 써야 해!’

 

영화 예고편을 보는 순간, 직업병(뭐든 기사로 쓰고 싶은)이 도졌습니다. ‘NASA(미 항공우주국)’, ‘유색인(유색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써야 맞지만 본문 일부에서 흑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성 연구자’, ‘천재 수학자’. 딱 4개의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사회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수학기자로 살다보니, 영화를 볼 때 팝콘 말고 챙기는 필수품이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내용을 기억해 기사를 써야 하므로, 늘 종이와 펜을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특별한 기록없이도 기사로 전할 에피소드가 떠올라, 오랜만에 꽤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는 적당히 이공계스럽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절히 감동도 주며, 전달 받은 메시지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구나 싶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는 영화를 본 뒤 “과거 이야기지만 현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기승전 ‘용기’, 기승전 ‘도전’, 기승전 ‘최초

 

백인 남성 과학자들만 가득했던 연구실에서 그들은 당시 여성 직원 복장 규정을 지키며, 800m 떨어진 타 건물 유색인 전용 화장실을 다녀야 했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백인 남성 과학자들만 가득했던 연구실에서 그들은 당시 여성 직원 복장 규정을 지키며, 800m 떨어진 타 건물 유색인 전용 화장실을 다녀야 했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어, 결론을 알고 보는 영화입니다. 영화 배경과 줄거리도 다 공개됐지요. 내용을 간단히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수의 백인 남성이 주도하던 1960년대 미국,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NASA 프로젝트의 숨겨진 천재들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특별히 그들이 ‘흑인 여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극중 이름), NASA 내 유일한 IBM 프로그래머이자 흑인 여성 계산 부서 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극중 이름),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 메리 잭슨(극중 이름), 이 세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세 사람은 영화 내내 NASA가 직면하는 위기의 순간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찬란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리천장에 부딪칩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거절 당하고, 무시 당하며, 부당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도전했고, 결국 실력을 증명했고, 신임을 얻었고, 꿈을 이루었으며, 역사 곳곳에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름을 남겼습니다. 소소한 에피소드는 영화 속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죠.

 

● ‘수학’이 있어야 무사귀환 할 수 있어  

 

연구자들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소통하며, 때론 끄적임 속에서 역사를 바꿀 새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1960년대 NASA 사무실은 과거에도 이런 환경이 조성돼 있었단 사실이 놀랍다. 주인공 캐서린은 벽을 가득 메운 큰 칠판에서 방정식을 풀며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연구자들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소통하며, 때론 끄적임 속에서 역사를 바꿀 새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1960년대 NASA 사무실은 과거에도 이런 환경이 조성돼 있었단 사실이 놀랍다. 주인공 캐서린은 벽을 가득 메운 큰 칠판에서 방정식을 풀며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평소에 수학에 관심이 많은 기자는 장면에서 캐서린 이야기가 나올 때 더 집중했습니다. 캐서린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더니(영화 첫 장면), 대학원까지 공부를 마치고 교사로 지내다 1953년 NASA 랭글리 연구 센터에서 ‘인간 컴퓨터(또는 전산원, 계산원)’로 고용됩니다. 당시에는 NASA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데이터를 분석하며, 인공위성 궤도와 이착륙 위치 등을 계산하기 위한 ‘컴퓨터’라는 계산 담당 직책이 있던 시절입니다.

 

자타공인 인간 계산기로 불리던 그는 미국 최초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를 앞두고 ‘우주 임무 그룹(Space Task Group)’으로 임시 발령이 납니다. 그곳에서  백인 남성 집단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할일을 하며 부당함과 싸워갑니다.

  

그는 결국 수학 고유의 ‘대체 불가능한’ 정확함으로 1962년 2월 20일, 첫 유인 인공위성 ‘프렌드십 7호’를 타고 지구궤도를 3바퀴 돈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존 허셜 글렌의 무사귀환을 돕습니다.

 

캐서린의 실력만이 우주비행사 존 글렌의 무사귀환을 증명할 수 있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캐서린의 실력만이 우주비행사 존 글렌의 무사귀환을 증명할 수 있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인공위성은 고도에 따라 저궤도, 중궤도, 정지궤도위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들은 각각 쓰임새에 맞게 궤도가 설정되며, 위성의 궤도나 무게에 따라 발사체의 궤적이 설계됩니다. 발사체의 궤적을 설계할 때 바로 수학이 필요합니다. 영화에서도 캐서린이 프렌드십 7호의 궤적을 예측하고, 계산하는 장면이 여러번 나옵니다.

 

과학자들은 인공위성이라는 ‘공’을 궤도라는 ‘골대’에 넣는다는 생각으로 발사체의 궤적을 설계합니다. 이때 가능하면 최소한의 연료로 인공위성이 궤도에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야 발사체의 무게나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또 발사체가 어느 정도 높이에 도달하면 인공위성이 지구를 따라 돌 수 있도록 발사체의 진행방향을 바꾸는 일이 아주 큰 일입니다. 만약 발사체의 진행 방향을 ↑ 방향에서 → 방향으로 바꾸지 않으면, 발사체가 하늘 높이 올라가기만 하다가 연료가 떨어져 그대로 지구로 추락하겠지요.

 

오늘날에는 발사체 궤적 설계는 컴퓨터가 주로 계산을 해줍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뉴턴 역학과 기하학, 미분적분과 같은 해석학을 총동원해, 알맞은 방정식을 설계하고 답을 직접 손으로 계산했어요. 물론 지금도 이 일을 진행하는 과학자가 기본적인 수학 지식을 갖춰야 조건에 맞게 수식을 입력하고 계산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우주비행사 글렌이 컴퓨터가 계산한 착륙 지역 좌표가 의심스럽다며 캐서린에게 검토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캐서린의 활약으로 미국 최초 유인 위성 프렌드십 7호는 1962년 2월 20일 14시 47분에 발사돼, 총 4시간 55분 23초 동안 비행하며 지구를 세 바퀴 돌고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비행을 마치고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기 직전 자동 조종장치가 고장납니다.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나기 전 마지막 에피소드로 손에 땀을 쥔 3분이니, 꼭 영화관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 1960년대 NASA를 그대로 들여다 보는 재미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탔던 인공위성 발사체 디자인은 그대로 재현됐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탔던 인공위성 발사체 디자인은 그대로 재현됐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영화 ‘히든 피겨스’ 제작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니만큼, 이왕이면 당시 상황과 에피소드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실존 인물인 캐서린 존슨이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해, 종이와 연필만으로 방정식을 세우고 손으로 방정식을 푸는 장면이나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그대로 나옵니다.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들이 일했던 랭글리 연구 센터 내 구조 역시,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 됐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들이 일했던 랭글리 연구 센터 내 구조 역시,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 됐다.  - (주)20세기폭스사 제공

또 영화 속 NASA 사무실 곳곳의 내부 모습이나, 유색인(Colored) 전용 화장실, 랭글리 연구 센터 내 구조, 주차장에 주차된 트럭, 특히 글렌의 우주선 디자인까지 사소한 소품까지도 완벽 재현해 시각적으로도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 평도 있지만, 도전, 용기, 극복,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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