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맥주생활 (25)] 봄맞이 모임에 어울리는 맥주들

2017년 03월 10일 17:00

봄 기운이 성큼 다가왔다. 겨울 내내 마치 내 피부인양 걸치고 다녔던 패딩이 우중충한 곤충 허물 같다. 점심 먹으러 나간 길에 가지 끝에 맺힌 꽃망울을 목격하고 오랜만에 춘곤증을 만나고 있을 즈음. 
 

“H 뭐하나. 한번 움직여야지?” 계모임 큰 언니가 손수 전화를 주신다. 방학 내내 애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외출도 제대로 못하셨다며 큰 판 한 번 준비해보라는 말씀. 그래, 송년회 이후 오래 쉬었다. ‘계주 안 튀는 모임’의 계주로서 계모임을 소집할 때가 왔다.


의식 있는 여자들의 품격 있는 자리에 잘 숙성된 알코올 음료가 빠질 수 없다. 힙한 모임이라면 당연히 맥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사드 배치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 탄핵 정국의 해법 등을 논하는 가운데 한 병 한 병 개봉해 나눠 마시면서 맛을 음미한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맥주는 모임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여러 맥주들을 한 자리에서 마시면서 맛과 향에 대해 얘기하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맥주에 어울릴 만한 안주를 준비해 맥주와의 페어링을 즐기는 것도 큰 기쁨이다.

 


맥주는 일단 큰 병을 준비한다. 와인과 같은 750ml나 좀더 뚱뚱한 765ml 병이 있다. 평소 혼자 먹기 부담스러운 양과 가격 때문에 큰 병 따기를 망설였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 또 큰 병에 담긴 맥주를 상 위에 올려놓으면 그것만으로도 그럴듯한 비주얼이 나와 인스타그램용 사진이 절로 완성된다.


잔도 일반 맥주잔이 아닌 목이 긴 와인잔 모양의 잔이 좋다. 와인처럼 4분의1 정도만 따라 남은 공간에 들어찬 향을 맡아보자. 맥주가 바뀔 때마다 잔을 물로 헹궈주면 된다.

 


1. 먼저 샴페인 같은 느낌이 나는 맥주를 샐러드와 함께 매치해 입맛을 돋워본다. 미국 시카고의 구스 아일랜드 양조장에서 만든 ‘소피(Sofie)’는 벨기에에서 농주로 마셨다는 세종(Saison) 스타일 맥주다. 농주라는 의미 그대로 팜하우스 에일(Farmhouse ale)이라고도 한다.

 

france44 제공
france44 제공

맥주 이름: 구스아일랜드 소피
도수: 6.5%
스타일: 벨기에 스타일 팜하우스 에일


밝은 노란색의 이 맥주에서는 오렌지 향이 감돌면서 알싸한 맛이 느껴진다. 탄산이 많아 가볍고 상쾌하게 마실 수 있다. 와인을 숙성했던 배럴에 숙성한 맥주로 와인의 풍미도 감지할 수 있다. 맛있는 맥주로 시동을 걸어주니 분위기가 절로 유쾌해진다.

 


2. 다음은 꽃 향기와 허브향을 만끽할 시간. 벨기에 태생인 트리펠 카르멜리엇(Tripel Karmeliet)을 알리오올리오 같은 오일로 만든 파스타와 마셔본다.

 

Belgian Beer Factory 제공
Belgian Beer Factory 제공

맥주 이름: 트리펠 카르멜리엇
도수: 8.4%
스타일: 트리펠


투명한 황금빛의 자태가 곱구나. 바나나와 같은 과일 향과 꽃 향기가 퍼져오고 한 모금 넘길 때마다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의 스파이시함도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3. 신 맛이 특징인 사워(Sour) 맥주와 주 메뉴를 즐길 차례. 스테이크, 버거, 프라이드치킨 같은 음식과 먹으면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조개류나 생선을 담백하게 조리한 메뉴와도 어울린다.

 

벨하게 제공
벨하게 제공

맥주 이름: 두체스 드 부르고뉴
도수: 6.2%
스타일: 플란더스 레드에일


잔에 따르고 향을 맡자마자 “이게 맥주야 와인이야?!”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두체스 드 부르고뉴(Duchesse de Bourgogne)는 벨기에 플란더스 지방에서 유래한 신맛이 나는 맥주다. ‘와인 맥주’의 대표적인 예로 잘 알려져 있다.


어두운 루비 색을 띠고 시큼한 포도향과 체리향을 느낄 수 있다. 새콤한 맛을 기반으로 캐러멜, 초콜렛맛이 균형 있게 어우러져 있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서 오크향도 감지할 수 있다.


신 맥주지만 식초처럼 톡 쏘는 신맛이 아니라 둥글게 다듬어지고 다른 맛들과 조화를 이루는 ‘고급진’ 신맛이다. 모임의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4. 이제 본 식사를 마치고 안주를 치즈와 크래커로 바꿔본다. 강한 스타우트라는 의미의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스타일은 치즈와 크래커의 고소함과 어우러진다.

 

노스코스트 브루잉 제공
노스코스트 브루잉 제공

맥주 이름: 올드 라스푸틴
도수: 9%
스타일: 임페리얼 스타우트


까만 맥주 올드 라스푸틴(Old Rasputin)은 커피, 초콜릿, 오크 풍미가 어우러진 진하고 깊은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모임에 이 맥주가 꼭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를 마지막 왕조로 만든 라스푸틴이라는 요승을 라벨 모델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푸틴은 정권 실세로 국정을 제 멋대로 흔들어 왕조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나라 걱정을 하면서 잔을 기울여본다. 330ml 작은 병으로 판매된다.

 


6. 마무리는 초콜릿케이크와 로슈포르(Rochefort)10으로 달달하게~ 벨기에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만든 이 맥주는 수도원 맥주 중에서 가장 도수가 높은 쿼드루펠(Quadrupel) 스타일이다.

 

로슈포르 양조장  제공
로슈포르 양조장  제공

맥주 이름: 로슈포르10
도수: 11.3%
스타일: 쿼드루펠


검은 색에 건포도, 건자두 같은 어두운 색 말린 과일이 느껴지고 견과류의 고소함, 캐러멜과 초콜릿의 단맛이 있다. 뒷맛은 쌉쌀해서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5시간 동안 먹고 마시다가 결국은 어느 나라 남자가 제일 잘 생겼고 매너가 좋은가에 대한 격렬한 토론으로 모임이 마무리됐지만... 취기도 올라오고 배도 빵빵해졌고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이 맥주들은 750ml 큰 병은 바틀샵에서 대부분 2만~3만원대, 330ml 작은 병은 1만원 안팎에 살 수 있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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