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선 56] 세 사람이 함께 여행하는 재미

2017년 03월 11일 18:00

지난 연초엔 논개가 적장(敵將)을 휘어 감고 꽃처럼 남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진주 촉석루에서 만나기로 했었지만, 최근 내 마음이 심란하여 산바람, 바닷바람에라도 머릿속을 헹구고 싶어 애초 여행을 제안했던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2박 3일 일정의 첫날 여행지를 양산 통도사로 바꾼 것이다. 나와 선배 시인은 경기도 일산에서, 친구 시인은 경남 마산에서 출발하여 통도사 입구에서 반갑게 만났다. 난생 처음 찾아간 그곳 매표소 앞에 당도해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정각. 친구는 그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여 한구석에 노인처럼 쭈그려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도사로 향하는, 수백 년 간 자란 소나무 숲길에 드문드문 내려앉은 이른 조각 봄볕이 우리가 싱겁게 주고받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는지 나뭇가지 사이로 희끗희끗 웃었다. 길게 트인 솔 숲길엔 평일이어서인지 행인이 거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우여곡절을 겪듯이 그 평온해 보이는 숲길에도 곧게 자란 소나무는 거의 없었다. 물가의 많은 소나무는 계곡 물속이 궁금했는지 그리로 가지를 뻗어 있었고, 길가의 소나무들은 통도사를 드나드는 행인들의 사연이 궁금했는지 길을 향해 나뭇가지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통도사의 홍매화 - 윤병무 제공
통도사의 홍매화 - 윤병무 제공

20여 분간의 그 안온한 솔 숲길이 끝나는 게 아쉬웠지만, 통도사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자 진분홍 봄이 먼저 와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락보전 근처에서 150여 번째 활짝 핀 두 그루의 홍매화가 그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내가 통도사로 여행 일정을 바꾸자는 제안에 친구의 경남 사투리의 대꾸가 생각났다.


“그래? 통도사 좋지. 그럼 홍매화 보러 가자마!”

햇수를 헤아려보니 내가 홍매화를 본 지는 어느덧 15년이나 되었다. 만개한 진분홍 꽃잎이 무채색 일색인 겨울 산과 단청을 입히지 않은 사찰 풍경에 유독 도드라져 있을뿐더러 그 꽃향기는 봄바람을 타고 바로 옆 계곡 물결처럼 통도사 경내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꽃잎마다엔 벌써 꿀벌들이 찾아와 분주히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홍매화 벌꿀은 살짝 슬픈, 제사상에 오른 분홍색 사탕 맛일까.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져 있다는 금강계단의 개방 시간(11:00~14:30)이 30분 전에 마감돼 아쉽게도 대웅전의 남동서쪽 둘레만 둘러볼 수밖에 없었지만―대웅전의 적멸보궁(寂滅寶宮) 편액 아래 맞닿은 곳에 금강계단이 있고 그곳에 진신사리가 모셔 있단다.― 사방(四方)의 지붕 모양이 똑같은 대웅전의 독특한 건축 양식은 거리를 넓히고 좁히며 우리 발걸음을 그곳에 붙잡아두었다. 잠시 후, 선배와 친구 두 사람이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 나는 석가모니의 옷과 그릇을 받들어 둔 곳이라는, 고봉밥 모양의 봉발탑(奉鉢塔) 둘레를 돌며 앞으로 먹고살 일을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통도사 숲길을 걷는, 함께 여행한 두 시인 - 윤병무 제공
통도사 숲길을 걷는, 함께 여행한 두 시인 - 윤병무 제공

그렇게 일행과 떨어져 혼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세 사람이 여행할 때에야 가능하다. 혼자 하는 여행은 마냥 자유롭지만 문득문득 외롭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은 외롭지는 않지만 서로를 위해 늘 붙어 있게 되는 반면, 셋이 같이하는 여행은 함께 어울려 있다가도 한 사람은 슬쩍 해찰을 해도 두 동행인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 혼자 화장실에 다녀올 때조차도 두 사람은 함께 재담을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또 시외버스 편으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중 졸린 사람은 외따로 앉아 꾸벅꾸벅 낮잠에 드는 사이 두 사람은 붙어 앉아 조용히 수다를 떨며 다음 행선지에선 어디를 가볼 것이며 무엇을 먹을지 의논하고 검색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이 함께한 이번 여행에서 추억에 남을 장면은 친구의 말 한마디였다. 통도사 앞에서 1박을 한 우리는 이튿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경주 불국사를 둘러보고 다시 택시 편으로 감은사지 석탑을 지나 시퍼런 동해가 펼쳐진 읍천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자갈 해변으로 500m쯤 떨어진 주상절리를 보러 걸어가려는데 거센 바닷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왔다.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며 국경을 도보로 건너다녔다는 선배 시인은 물론이고 나 역시 바람막이 옷차림이라 그 거센 바람이 대수롭지 않았지만, 어지럼증이 있는 데다 재킷 차림의 친구 시인은 바람을 일부 막아주는 관광 안내판 뒤에서 이미 몇 걸음 앞서간 우리를 향해 마치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둘이 다녀오이소. 나는마 틀렸소.”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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