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 그 이후] 갈등과 반목 그리고 중재가 사회를 튼튼히 한다

2017년 03월 11일 12:10


갈등이나 반목과 같은 사회적 관계의 틈이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깨뜨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체계’를 파괴하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체계를 유지하고 쇄신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부족원들이 무엇을 위하여 연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주로 무엇에 대항하여 연합한다. 반목과 갈등이 없다면 집단은 훨씬 더 개별적일 것이고, 서로로부터 훨씬 더 고립되어 있을 것이다


로저 키싱 (Roger Kissing, 전 호주 국립대 인류학과 교수)

 

 

분쟁과 갈등, 반목은 인류 사회가 시작되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된,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갈등의 근원은 인간 정신의 내적 갈등이 외부로 투사되면서 일어나는 것일수도 있고, 척박한 자연 환경(식량의 부족이나 낮은 혼인 가능성 등)과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집단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반목의 일차적인 원인은, 이렇게 고차원적인 심리적 혹은 생태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재산 상의 갈등(가축이 누구의 것인지?), 혹은 명예에 대한 갈등(모욕이나 비난 등), 계약의 위반(약속한 물건을 가져오지 않는 등)과 같이 보다 직접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좀 “유치한” 이유에서 시작됩니다.

 

오랜 시간을 끌어오던 사회적 논란이 겨우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러한 갈등과 반목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가 지불한 비용은 정말 엄청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는 바람에 발생한 직간접적인 사회적 손해는 추산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점점 더 극단으로 향하는 집단 간의 반목은 끝없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이는 어느 쪽이 더 옳다 혹은 더 그르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프리카 수단에 사는 누에르 (혹은 누어, Nuer) 족은 20세기 초까지도 잘 통합된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인구도 수십만 명에 달했는데, 그들을 통치하는 왕이나 지배 계층이 따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에르 족들은 아주 자주 싸움을 벌인다고 합니다. 가축이 어느 부족의 것인지 혹은 재산의 손해나 간음, 자원에 대한 경쟁 등이 주된 원인입니다. 부족 내에서는 맨주먹이나 몽둥이로 싸우던 것이, 부락 간의 싸움으로 커지면 창을 들기도 합니다. 부족 간의 큰 전투가 일어나기도 하고, 피를 흘리는 사람도 생깁니다. 혹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복수전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에드워드 에반스-프리처드 (1936년). 누에르 족의 전투 연습. 누에르 족의 두 남자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 사진은 비록 실제 전투는 아니지만, 누에르 족은 개인 혹은 부락 간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2013년에는 남수단 키르 대통령이 이끄는 딩카 (Dinka) 족과 마차르 부통령이 이끄는 누에르 족의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 영국 피트리버 박물관 제공
에드워드 에반스-프리처드 (1936년). 누에르 족의 전투 연습. 누에르 족의 두 남자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 사진은 비록 실제 전투는 아니지만, 누에르 족은 개인 혹은 부락 간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2013년에는 남수단 키르 대통령이 이끄는 딩카 (Dinka) 족과 마차르 부통령이 이끄는 누에르 족의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 영국 피트리버 박물관 제공

반목과 갈등이 심해지면, 집단 전체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서로 창을 겨누고 있는 두 집단은 무조건 자신들의 집단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와 이성을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할 뿐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는 인지적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에 점점 자기 확신이 강해집니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좋아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자신의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것은 자신의 팀이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팀’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경찰도, 재판소도 없는 누에르 족은 툭하면 일어나는 개인 간,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인류학자 에반스-프리처드의 연구에 의하면, 표범가죽 추장(leopard skin chief)들이 살인자를 숨겨주고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추장이라고 하면 대단한 권력자일 것 같지만, 사실 표범가죽 추장은 아무런 권력이 없습니다. 특권도 없고, 재산도 별로 없습니다. 단지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중재하는 의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표범가죽 추장은 권력의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무리의 주요 세력에서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에반스-프리처드는 표범가죽 추장의 이러한 외부성을 통해서, 오히려 강력한 중재의 힘이 발휘된다고 주장합니다(물론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누가 이러한 표범가죽 추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일단은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의로운 재판관의 역할보다,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중재하는 추장의 역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외에도 수많은 표범가죽 추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소위 ‘찬탄’, ‘반탄’ 진영에 서서 광화문과 시청으로 달려 나가지도 않았고, 이런저런 과격한 의견과 주장을 SNS에 올리지도 않은 대다수의 시민들이죠. 이들은 권력도 없고 강한 주장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무리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누에르 족의 표범가죽 추장. 표범가죽 추장은 평소에는 무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분쟁이 발생하면 강력한 중재력을 발휘한다. 이는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수준의 갈등과 반목을 허용하여 집단의 결속 및 쇄신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https://de.wikipedia.org/wiki/Datei:Chief_Sarili_-_Kreli_-_of_the_Gcaleka_1890 제공
누에르 족의 표범가죽 추장. 표범가죽 추장은 평소에는 무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분쟁이 발생하면 강력한 중재력을 발휘한다. 이는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수준의 갈등과 반목을 허용하여 집단의 결속 및 쇄신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https://de.wikipedia.org/wiki/Datei:Chief_Sarili_-_Kreli_-_of_the_Gcaleka_1890 제공

물론 갈등과 반목은 대단히 위협적입니다. 그래서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서 집단이 무너지고, 사회가 분열로 인해 와해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협력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항하여’ 협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과 동맹은 사회를 보다 진일보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누에르 족에서 분쟁과 갈등은 아주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피를 튀길 정도로, 아주 격렬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무모할 정도의 갈등과 반목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표범가죽 추장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갈등과 반목이라도 결국 추장이 중재하면, 상대방도 승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추장은 아무런 권력이 없지만, 이들의 중재에 방금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던 무리들은 추장의 말 한 마디에 손에 든 창을 금새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된 믿음은 치열한 투쟁과 갈등을 허용하고 보장하는 기능을 합니다. 사회를 무너뜨리는 병적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에 대항하여’ 협력하는 강력한 집단적 힘으로 발전하는 것이죠.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소리치고 싸웠습니다. 그렇게 해야한다는 쪽도 있었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쪽도 있었죠. 자신이 기대한 대로 되었다는 분도 있겠지만, 실망감에 허탈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써서 중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치열한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도, 중재에 순순히 승복한다는 사회적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큰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도 집단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에너지가 사회를 결속,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전체에 정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 최고 지도자 수준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결국 건강하게 해결해 내고 말았다는 소중한 사회적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여성의 진화’(근간)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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