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약 사이 위험한 ‘케미’

2017년 04월 16일 13:30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음식과 약을 함께 먹어도 될까. 최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서는 먹는 약과 음식 사이의 상호작용을 정리한 안내서를 발간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음식과 약 사이의 ‘케미’를 알아봤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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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분 요약

음식은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효과를 떨어뜨리거나 과하게 부추길 수 있다.
약을 먹을 때에는 특히 자몽주스와 술, 커피를 피해야한다.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할 음식을 알아둬야 한다.

 


몇 해 전 수술을 하고 나서 건강염려증이 생긴 K씨. 지난해 가을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아 심혈관질환을 주의해야 한다’는 결과를 받고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건강을 너무 염려한 탓일까. 요즘 들어 피부도 거칠어지고 조금만 집중해도 쉽게 피로해진다.


K씨는 병원에서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꾸준히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압에 좋다고 알려진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매일 아침마다 먹고, 피로 회복과 피부에 좋다는 자몽주스를 끼니마다 챙겨마셨다. 하지만 두 달 뒤 병원에 갔더니, 오히려 저혈압이라는 더 나쁜 결과가 나왔다.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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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혈관질환자는 자몽주스를 피하라


K씨의 신변에 변화가 생긴 이유는 습관적으로 먹었던 음식이 혈압을 낮추는 약의 작용을 과하게 부추겼기 때문이다. 범인은 바로 자몽주스다.


자몽은 오렌지와 귤, 한라봉, 포멜로 등과 함께 감귤속(citrus)에 속한다. 비타민C와 구연산이 풍부해 피로를 회복하고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감귤류에 비해 자몽에는 강한 쓴맛을 내는 플라보노이드 색소인 나린진이 많이 들어 있다. 나린진은 물질대사를 느리게 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에 좋다는 이유로 ‘자몽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약을 장기적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자몽이 독이 될 수 있다.


영국 런던 로슨헬스리서치연구소의 데이비드 베일리 박사팀은 실험을 통해 자몽주스가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의 종류가 80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약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다.


연구팀은 고혈압과 심장질환, 고지혈증 치료제를 먹는 사람이 자몽주스를 하루에 세 번 200mL씩 마시면, 마시지 않을 때보다 약효가 3.3배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약물을 대사하는 효소로 CYP3A4가 있는데, 나린진이 이 효소를 방해해 약이 분해되고 배출되는 과정을 늦췄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혈액 중 약물 농도가 증가하고 오랫동안 지속됐다. 베일리 박사는 특히 “자몽주스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85가지 중 43가지는 면역계가 약한 사람이 약과 함께 먹으면 호흡곤란이나 위출혈이 일어날 수 있고, 신장이 손상되기도 하며 심각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DOI:10.1503/cmaj.120951).


이와 반대로 항히스타민제를 자몽주스와 함께 마시면 약효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소장에서 약물을 흡수해 혈관으로 보내는 효소인 OATP1A2를 나린진이 방해해 흡수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베일리 박사는 “자몽과 포멜로, 마멀레이드로 만들어 먹는 세빌오렌지 등 나린진이 많이 든 과일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몽주스를 아예 끊어야 할까. 김형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약리연구과 박사는 “심혈관질환 등으로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다면 자몽주스를 피하라”면서 “약을 먹은 지 2시간쯤 뒤에 약 200mL 정도 가끔 마시는 것은 괜찮다”고 조언했다.

 


2. 술과 커피는 약에게 백해무익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발간한 안내서를 보면 공통적으로 거의 모든 약과 ‘나쁜 케미’를 일으키는 음식이 있다. 김 박사는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은 약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약효를 떨어뜨리거나 과다하게 증폭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사람도 술을 많이 마시면 결국 취한다. 알코올 성분이 중추신경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약간 떨어뜨린다. 염증이 있는 경우에는 대식세포와 호중성 백혈구 같은 면역세포가 혈관 밖으로 혈장과 함께 빠져나가면서 염증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신경계 질환이나 혈압, 염증 등과 관련 있는 약을 복용할 때에는 반드시 술을 피해야 한다. 또 알코올은 지용성이나 수용성 성분을 둘 다 잘 녹이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물질대사가 빨라진다. 약이 대사되는 속도도 빨라지므로 결국 약효를 충분히 나타내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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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주에 든 티라민도 무시할 수 없다. 티라민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단위물질인 아미노산이 변형된 것 중 하나인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만들 때 꼭 필요하다. 그래서 티라민이 함유된 식품이나 술을 마시면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증가하고 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해 혈압이 급작스럽게 높아진다. 그래서 티라민이 든 음식은 고혈압 치료제를 먹는 사람에게 특히 위험하다. 티라민은 효모가 많은 발효주뿐만 아니라 치즈와 요거트, 커피, 소시지, 육회, 초콜릿 등 발효시키거나 절이거나 훈제한 음식에도 많이 들어 있다.


카페인이 많은 커피도 약을 먹을 때에는 피해야 한다. 카페인은 신경전달물질이나 약물을 구성하는 성분과 닮아 세포 수용체에 들러붙어 비슷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천식을 치료하는 기관지 확장제 성분인 테오필린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이 약을 먹는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 약효가 증강돼 중추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하면서 흥분이나 불안, 심박수 증가 같은 부작용이 일어난다.


녹차와 홍차에 든 카페인은 어떨까. 일부 전문가들은 차에도 카페인이 많지만, 카페인 흡수를 더디게 하는 성분인 탄닌이 들어 있어서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형수 박사는 “카페인을 흡수하는 속도가 달라질 뿐이지 결국 결과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약을 먹을 때는 커피와 차 모두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3. 장기 복용 환자라면 음식과의 케미 알아야


전문가들은 어쩌다가 두통이나 감기로 단기간 약을 먹는 경우에는 음식과의 상호작용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혈압, 암, 골다공증처럼 2주 이상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환자라면 음식도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일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이라도 성분에 따라 몸속에서 작용하는 원리가 다르다. 그래서 약물 성분마다 음식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과 정도가 다르다. 하지만 약 성분마다 어떤 음식과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 일일이 외우기란 쉽지 않다. 또 건강기능식품이나 한약도 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한약은 한의원마다 재료가 조금씩 다르고, 또 어떤 재료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확실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약은 약사에게~’라는 광고 카피처럼 약을 복용할 때에는 전문의나 약사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더 읽을거리
자몽주스 하루에 한 잔이 항암제를 돕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통증 사냥꾼 진통제의 비밀’ (2009년 2월호)


 

약을 먹을 때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


약물마다 몸속에서 작용하는 과정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흡수와 대사, 분포 및 작용, 배설 과정을 거치면서 몸속에서 약효를 나타낸 뒤 밖으로 나간다. 음식과 과정과 비슷하다. 그래서 음식과 약은 몸속에서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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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흡수
약물이 위벽이나 소장벽에서 흡수된다. 용액 > 현탁액 > 분말 > 캡슐 > 정제 순으로 흡수되는 속도가 빠르다. 또 지용성 성분이 수용성 성분보다 흡수가 잘 된다.
장내미생물도 약물 흡수 대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장에서는 장내미생물이
당분을 먹어 수용성 성분이 지용성 성분으로 바뀔 수 있다.


2 대사
소장벽에서 흡수된 약물은 간문맥이라는 혈관을 통해 간으로 이동한다. 대사 과정을 거친 다음,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3 분포 및 작용
혈액을 따라 온몸을 순환하던 약물은 목표가 되는 조직에 도달하면 약효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 들러붙어 세포 내로 신호를 전달해 세포의 활성을 변화시키고,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을 대신하거나 차단해 통증을 못 느끼게 한다.


4 배출
온몸을 순환한 혈액은 신장의 사구체에서 여과돼 세뇨관에서 재흡수, 재분비를 거친다. 그리고 소변과 함께 밖으로 배출된다. 흡수와 대사 과정을 마친 약은 담즙을 통해 대장을 거쳐 변으로 배설된다. 땀이나 날숨을 통해서도 배설된다.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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