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막걸리, ‘미생물 배합’으로 부활할까

2017년 04월 18일 09:00

장○막걸리, ○평막걸리 등 동네 앞 슈퍼에만 가도 맛있는 막걸리가 지천에 깔려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막걸리는 우리 전통주라고 할 수 없다. 일본식 공정으로 발효한 결과물로, 우리 선조가 마셨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술이기 때문이다. 전통주를 살리기 위해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GIB 제공
GIB 제공

쌀을 곱게 갈아 물에 넣고 밀가루와 함께 오랜 시간 치댄다.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어 볏짚 위에 올려 놓는다. ‘누룩’이다. 누룩에 살고 있는 곰팡이와 효모가 발효를 잘 할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를 맞춰준다. 누룩과 물을 섞고 기다려 주면…, ‘뽀글뽀글’ 막걸리 한 잔이 완성된다.

 


고문헌에서 찾아낸 우리의 전통주


조선의 술 맛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3월 10일, 경기 성남시에 있는 한국식품연구원(이하 한식연)을 찾았다. “바로 이게 저희가 개발한 산업용 누룩입니다. 전통누룩에서 발굴한 미생물을 첨가해 만들었죠. 여러 양조장에 공급하고 있어요.” 이장은 한식연 우리술연구팀 선임연구원은 비닐로 포장된, 꼭 시멘트처럼 보이는 물질을 보여주며 말했다. 누룩은 쌀, 밀, 보리와 같은 곡류를 물과 섞어 반죽한 뒤 굳힌 것이다(제조법에 따라 약간씩은 다르다). 이 누룩을 적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발효시킨 게 막걸리다.


이제껏 한 번도 누룩을 본 적이 없는 기자는 막연히 메주 같이 생기고 냄새도 고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쌀로 만든 누룩은 하얗고, 녹두 누룩은 푸르스름했으며, 팥으로 만든 누룩은 고동색에 중간 중간에는 팥이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누룩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어떤 향도 나지 않았다. 이 선임연구원은 “발효를 시작하면 향이 나기 시작하는데, 주로 과일 향이나 알코올 향이 나지 메주처럼 고약한 향이 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식연 우리술연구팀이 보관하고 있는 전통누룩은 200여 종이다. 10년간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전통누룩과, 고문헌에 남겨진 제조 방법을 재현한 것들이다. 지역마다 누룩을 만드는 재료나 방법이 천차만별이고, 각 지역의 환경미생물들이 다르기 때문에 단 한 가지도 같은 것이 없다. 전통누룩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누룩을 부순 가루로만 존재한다고 했다. 연구용인데다가 오래 두면 상하기 때문이다. 전통누룩으로 만든 전통주를 맛보고 싶었던 기자의 바람도 아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한 산업용 누룩이다. 여기엔 전통누룩에서 발굴한 곰팡이가 살고 있다. 왼쪽부터 녹두, 메밀, 보리, 팥으로 만든 누룩이다. - 최지원 제공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한 산업용 누룩이다. 여기엔 전통누룩에서 발굴한 곰팡이가 살고 있다. 왼쪽부터 녹두, 메밀, 보리, 팥으로 만든 누룩이다. - 최지원 제공

아직까지 일본식 공정 따르고 있어


그럼 우리가 슈퍼에서 사먹는 막걸리는 전통주가 아닌 걸까. 엄밀히 따지면 그렇다. 일본식 공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짝 배신감이 들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가양주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다. 전통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장인들이 여전히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증보산림경제, 본초강목, 임원십육지와 같은 고문헌에 남아 있는 수십 가지의 전통누룩 제조 방법은 이제 글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일본식 공정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이다. 원료와 제조 방법은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일본 역시 누룩을 사용한다. 일본의 누룩을 코지, 혹은 입국이라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코지에는 딱 한 가지 종류의 미생물만이 살고 있다. 누룩을 만든 뒤 하나의 미생물을 인위적으로 접종하기 때문이다. 이 미생물은 금세 누룩 생태계의 ‘왕’이 된다. 자연 속에서 자라난 여러 미생물이 혼합돼 술이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양조법과는 전혀 다르다.

 

전통누룩 제조방법 - 일러스트 | 이수현 제공
전통누룩 제조방법 - 일러스트 | 이수현 제공
전통누룩 제조방법 - 일러스트 | 이수현 제공
전통누룩 제조방법 - 일러스트 | 이수현 제공

가장 향기로운 효모는 누굴까


한식연에서는 일본식 누룩이 아닌 우리나라 고유의 누룩을 되살리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첫 성과는 가장 향과 맛이 뛰어난 전통누룩으로부터 미생물을 발굴해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 것. 살구, 바나나, 파인애플과 같은 과일 향을 내는 에스테르 성분을 많이 만들어내는 효모,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 98-5’가 그 주인공이다.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는 알코올을 많이 만들어내는 효모로 유명하다. 와인이나 맥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술에 사용된다. 하지만 맥주를 만드는 효모와 막걸리를 만드는 효모는 엄연히 다르다. 같은 종이라도 DNA가 꽤 차이나기 때문이다.


한식연과 함께 전통주를 산업화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강현아 중앙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 효모의 DNA를 분석해 국제적으로 공인된 효모,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 S288C’와 유전자를 비교했다. 그 결과 유전자의 96%는 동일했지만, 막걸리의 향을 결정하는 대사과정 관련 유전자에 차이가 컸다.


심지어 같은 종의 효모라도 지역에 따라 배체수가 다른 경우도 있다. 배체수는 생물의 염색체 수로, 흔히들 ‘2n’이나 ‘n’ 등으로 표현한다. 세레비지애와 함께 술 양조에 많이 사용되는 또 다른 효모, 사카로마이콥시스 피불리게라(Saccharomycopsis fibuligera )가 그렇다. 이 효모는 전분, 셀룰로오스, 단백질 등을 분해하는 효소가 많아 누룩 속 다른 미생물에게 필요한 영양물질을 많이 공급한다. 그런데 제주도의 전통누룩과 포항의 누룩에 있는 효모를 각각 유전자 분석한 결과, 제주도의 것은 이배체인 반면 포항의 효모는 단배체였다. 강 교수는 “유전자를 분석한 뒤 매우 놀랐다”며 “이배체인 제주도 효모로 만들어진 술이 포항의 것보다 조금 더 향이 풍부했다”고 말했다.

 

한국식품연구원 제공
한국식품연구원 제공

미생물 ‘배합’이 전통누룩 성공 결정


한식연에서 기자가 본 누룩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미생물이 들어 있다. 전통누룩에서 발굴한 미생물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한 종류만 살고 있어 전통누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선임연구원은 “진짜 전통누룩을 만들려면 여러 미생물을 일정한 배합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맛있는 술을 만드는 미생물의 ‘꿀’ 조합을 알아내고, 이 조합을 술이 만들어질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이를 ‘복합 배양 기술’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양한 종의 생물이 한 공간에서 자라게 되면 자연적으로 경쟁하게 된다. 미생물을 원하는 비율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이들의 경쟁 관계를 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온도가 20°C 이상 올라가면 미생물 A가 대사산물로 a 라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 물질이 B에게는 치명적이다’는 식의 관계다. 이 관계를 파악해야 모두 공존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엔 김치와 된장처럼 복합 미생물이 존재하는 음식이 유난히 많다”며 “이런 음식들을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복합 배양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읽을거리
Whole-genome de novo sequencing, combined with RNASeq analysis, reveals unique genome and physiological features of the amylolytic yeast Saccharomycopsis fibuligera and its interspecies hybrid.
doi:10.1186/s13068-016-06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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