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② 남자 없이 살고 싶다!!

2017년 04월 03일 18:00

세줄 요약

1. 오랜 역사동안 여성은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와 대우를 감내해 왔다.
2. 일부 여성들은 소위 남성 공포증(androphobia)에 시달리기도 한다.
3.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4.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남성성’과 따뜻한 반려자로서의 ‘내 남자’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A 씨는 여중, 여고를 거쳐 여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여중, 여고를 다녔는데, 대학까지 여대를 가느냐고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A씨는 무조건 여대를 고집했습니다. 남성과 같이 있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남자와는 손 한번 잡아본 일이 없습니다. 남성이 두렵지만, 또한 이러다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남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성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남성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생물들은 무성 생식을 합니다. 상당수의 암컷은 소위 클론화 과정을 통해서 혼자 힘으로 복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처녀생식(parthenogenesis)라고 합니다. 물론 포유류나 조류처럼 고등 동물에서는 관찰되지 않습니다만, 어류나 양서류에서는 흔히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사실 수컷이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른바 처녀 생식이 아주 유리해집니다.
 

허먼 텐 케이트(1858) 작, 샤프롱. 유럽 사회에서 젊은 여성은 사교계에 나갈 때, 중년 여성이 보호자 역할을 하고 했다. 이를 샤프롱 제도라고 하는데, 젊은 여성을 보호하는 목적이었지만 또한 자유를 제약하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였다. - wikimedia 제공
허먼 텐 케이트(1858) 작, 샤프롱. 유럽 사회에서 젊은 여성은 사교계에 나갈 때, 중년 여성이 보호자 역할을 하고 했다. 이를 샤프롱 제도라고 하는데, 젊은 여성을 보호하는 목적이었지만 또한 자유를 제약하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였다. - wikimedia 제공

인간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상당합니다. 오랜 역사동안 여성은 배우자를 탐색하는 과정 중에 늘 폭력과 강간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권리가 열악한 사회에서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혼인 연령까지 집안에서만 지내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 퍼다(purdah)라고 합니다. 젊은 여성은 반드시 중년 여성을 동반해야 외출할 수 있는 관습, 즉 샤프롱(chaperone)이라는 제도도 있었죠. 여러 목적이 있지만, 분명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서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남성이, 여성에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생명의 세계에 국한해서 말하면, ‘남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여성에게 ‘좋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붉은 여왕 가설, 뮬러 효과 등 다양한 진화적 가설이 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남성과 ‘잘’ 지낸 여성은 그렇지 못한 여성보다 더 우수한 자손을 많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을 옆에 두게 된 이유죠. 성경에는 외로운 남성을 위해 갈빗대를 꺼내어 여성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의 이득을 위해서 남성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종속적인 여성의 사회적 위치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이유를 들어도, 아마 A씨는 크게 공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이나 어려움이 너무나도 분명한데, 고상하게 면역복합체 다양성 확보 가설 등 이해도 잘 안되는 어려운 이론을 들어 남성이 필요하다고 해봐야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만약 남성이 여성에게 그렇게 ‘좋다면’, 왜 여성의 마음 속에는 남성을 꺼리는 마음이 생겨났는 설명하기 어렵죠.


사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불평등했습니다. 약 5~6만년 전에 다른 인류와 갈라진 호주 원주민 관습에 의하면, 사춘기 무렵의 남성은 자신보다 어린 여성과 맺어집니다. 그런데 그 여성은 아내가 아니라, ‘장모’가 됩니다. 나중에 그 장모가 딸을 낳으면, 남성은 집으로 데려가 키우죠. 그리고 나이가 들면 아내로 삼습니다. 즉 여성은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의 남편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로버트 반스(1895년) 작. 토마스 하디의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의 삽화. 영국 어퍼웨섹스 주에 사는 일꾼 마이클 헨처드는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자신의 처와 딸을 한 선원에게 단돈 5기니에 팔아버린다. - wikimedia 제공
로버트 반스(1895년) 작. 토마스 하디의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의 삽화. 영국 어퍼웨섹스 주에 사는 일꾼 마이클 헨처드는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자신의 처와 딸을 한 선원에게 단돈 5기니에 팔아버린다. - wikimedia 제공

긴 역사 동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0여년 전에 불과합니다. 19세기 무렵 가장 발전된 국가였던 영국에서도, 여성은 자신을 스스로 대변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이 여성의 법적 대리인 역할을 했죠. 아이에 대한 ‘소유권’도 아버지에게 있었고, 심지어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돈을 받고 팔 수도 있었죠.


짧은 기간 동안 여성의 권리는 비약적으로 신장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불평등합니다. 법적인 평등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불평등은 여전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진절머리가 난 여성들은 ‘과연 남성이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하기도 합니다.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서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것은, 생물학적 원인보다는 사회적 원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남성이 두려운 여성을 위해서


사회학자 앨란 존슨은 남성에 대해 가지는 일부 여성의 두려움이 ‘개인으로서의 남성’과 ‘사회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남성’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흔히 ‘남혐’ 즉 남성에 대한 혐오는 페미니스트들이 더 심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자인가?’라는 휴스턴 대학의 도발적 연구에 의하면,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이 더 적었죠. 여성 일부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페미니즘 자체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성 공포증은 특정 공포증의 한 종류이다. 남성에 대한 비합리적인 강렬한 두려움, 주변에 남성이 있을 때 느끼는 과민함, 남성이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이나 악몽, 남성과의 어떠한 종류의 사회적 관계도 꺼리는 태도 등을 보인다. 증상이 심해지면 남성을 피하기 위해서 집 밖을 잘 나서지도 않으려고 한다. - flickr 제공
남성 공포증은 특정 공포증의 한 종류이다. 남성에 대한 비합리적인 강렬한 두려움, 주변에 남성이 있을 때 느끼는 과민함, 남성이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이나 악몽, 남성과의 어떠한 종류의 사회적 관계도 꺼리는 태도 등을 보인다. 증상이 심해지면 남성을 피하기 위해서 집 밖을 잘 나서지도 않으려고 한다. - flickr 제공

정신과 진단명 중, 이른바 남성공포증(androphobia)이 있습니다. 남성을 보면 불편하고 불안하며, 심지어 공포심을 느끼기도 하는 상태입니다. 보통 젊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남성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은 절대 피하려고 합니다. 강간이나 성폭력의 경험이 유발 원인 중 하나지만, 직접적인 트라우마가 없는 경우에도 종종 발생합니다. 아마도 소녀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들어온 ‘낯선 남성을 조심하라’라는 메시지가,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을 강화시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남성공포증을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다룰까요? 다른 공포증의 치료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남성 사진을 보여주고, 남성과 같이 어울리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남성과 대화하는 연습도 하죠. 그러면서 조금씩 남성과 만나고,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적절하고 과다한 공포와 불안을 줄여나갑니다. 인지적 접근도 도움이 됩니다. ‘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남성은 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까’라는 식의 자동적 생각을 ‘나의 두려움은 근거없는 것이다. 나는 남자와도 친해질 수 있다’나는 생각으로 바꿔보는 것이죠.


물론 이는 여성 개인의 책임은 아닙니다. 여성에게 안전한 세상이었다면, 이런 남성공포증도 훨씬 드물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남성을 피하고 늘 조심해라’라는 식의 구시대적 접근을 고수할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공포는 점점 커지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면 오해는 점점 쌓입니다. 남성에 대한 자동적인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조금씩 줄여 나가면서, 여러 남성을 만나게 될수록 남성에 대해 점점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과 이해가 점점 쌓이면 일반적인 남성과의 관계 맺기가 점점 수월해 집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남성’, 즉 이성 파트너를 선택할 때도 훨씬 자유롭고 주도적인 위치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여성의 진화’(2017)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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