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회사에 인공지능 도입, 찬성하시나요?”

2017년 04월 10일 22:40

박기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박사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참여 욕구’, 과학기술정책에도 반영해야 원전, GMO, 광우병소 같은 극한대립 피할 수 있어”

 

박기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박사 - 변지민 기자 제공
박기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박사 - 변지민 기자 제공

제목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을 위한 법체계>. 박기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박사가 올해 2월 출판한 책이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솔깃하다. 과학기술이 어느날 갑자기 ‘점령군’처럼 내 삶에 불쑥 끼어들게 만들건지, 밀당을 하던 ‘썸남/녀’처럼 슬며시 다가와 손을 잡게 할건지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다.

 

‘원자력발전, 유전자변형식품(GMO), 고압송전탑과 전자파….’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주류 과학자들은 ‘안전하다’며 찬성하고 시민사회에서는 ‘위험하다’며 반대한 이슈다. 찬성과 반대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박기주 박사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했을 때 시민사회의 의견을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극한 대립이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중이 과학기술 발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을 위한 법’을 만들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3월 28일 서울 용산구 동아사이언스 사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 박사는 법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뒤 과학기술계로 넘어온, 흔치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제도의 관계 맺기에 관심이 있다.


최근 떠오르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로봇기술에 대해 시민들은 기대를 하면서도 동시에 일자리를 뺏길까 걱정한다. 박 박사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에 대해 함께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생명·신체·재산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최근엔 ‘정체성’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발달하고 있다.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합성생물학’과 ‘줄기세포’ 기술, 유전자를 뒤바꾸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등이 그 사례다.


박 박사는 과학기술계, 정부, 기업, 대학, 시민사회, 인문사회과학자 등이 폭넓게 참여해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논의하는 상시 위원회를 꿈꾼다. 세부주제별로 분과를 나눠 기술발달 현황, 발전 방향, 사회적 파급, 기존 제도의 변화가능성, 기존 제도의 수정을 위한 제언, 입법을 위한 가이드라인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위원회다.


유럽의회가 올해 2월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해 기술적·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사례나, 독일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논의의 장에 노동자를 포함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그웨이나 드론처럼 기존 제도에 가로막혀 발달이 늦어지는 기술도 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


박 박사는 작년 말부터 진행된 촛불집회를 보면서 이런 제도가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시민들은 이제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배치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 하는데, 사회적 파급력이 큰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지금과 같은 의사결정 구조에서 정부와 전문가들이 ‘자율주행차 전면도입’을 결정했다고 합시다.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일자리를 잃는 대중교통과 화물트럭 운전자 입장에선 얼마나 충격적이겠어요. 제2의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가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제도권 내로 받아들여야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개선사항 요구로 바뀔 겁니다.” 

 

자율주행차처럼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시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게 박기주 박사의 생각이다. - GIB 제공
자율주행차처럼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시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게 박기주 박사의 생각이다. - GIB 제공

과학기술이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는데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해당 과학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전문가가 6개월 이상 자세히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과학기술 자체보다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면 됩니다.”


연구하기에도 바쁜 과학자들이 대중을 상대로 사회적 의미까지 설명하려면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박 박사는 “한국연구재단 같은 중간관리기관에 역할을 맡기거나, 과학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해 연구자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쉬운 언어로 과학기술을 해설하는 과학문화 확산도 중요하다. ‘기술영향평가’를 확대 개편해 상시적으로 운영하며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궁극적으론 대중의 관심사에 과학기술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박 박사는 과학기술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잘 모르면 거부감부터 느끼기 쉽습니다. 관련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고 대화하면 문제가 풀립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뀔 것이다. 박 박사는 “헌법 127조에서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더 이상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며 “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높이는 목적으로 다시 정의되도록 헌법개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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