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크무비] 레고, NASA의 숨은 여성 주역들에 경의를 표하다!

2017년 04월 11일 11:00

국내에서는 별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지만, 전세계 장난감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한 때 컴퓨터 게임에 밀려 나락으로 빠질 뻔 했던 덴마크의 레고(LEGO)가 눈부신 성장을 매년 기록하며, 전세계 1위 장난감 회사 자리를 차지하기 일보직전에 이른 것이다.

 

아마추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중 레고가 공식적으로 출시하기로 결정한
아마추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중 레고가 공식적으로 출시하기로 결정한 'NASA의 여성들' - LEGO Ideas 홈페이지. 

바비 인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마텔(Mattel)이 누가 뭐라 해도 범접할 수 없는 1등의 자리를 지키고, 그 뒤를 트랜스포머와 모노폴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하스브로(Hasbro)가 견고하게 추격하는 것이 원래 장난감 산업의 구도였다. 그 두 회사에 비해 제품군이 다양하지 못하고 미국 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은 레고는 다른 체급의 기업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지난해 레고는 전년보다 25% 성장한 약 6.1조원($5.38B)의 매출을 기록하여, 전년보다 4% 감소된 6.2조원($5.46B)의 매출을 기록한 마텔의 턱밑까지 추격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는 드디어 왕좌에 오를 것이란 예측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3위를 차지한 하스브로의 매출은 약 5.7조원($5.02B)으로 레고와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레고의 실패와 재기를 분석한 책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 이철민 제공
레고의 실패와 재기를 분석한 책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 이철민 제공

창사 이래 지속적으로 수익성을 기반한 성장만 하다가 1998년 최초로 약 540억원($48M)의 적자를 기록하고, 이듬해 10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시작된 긴 흑역사를 가진 레고의 이러한 전례를 찾기 힘든 재기의 스토리는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다루어져 왔다. 국내 출판본 번역의 질이 너무 낮아 아쉬웠던 책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는 그 대표적인 사례.


레고의 그러한 재기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 이른바 전세계에 퍼져있는 수 많은 성인 레고 팬들(AFOL, Adult Fans of LEGO)과 깊은 교감을 가지면서 그들로부터 새로운 성장의 아이디어들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그 기반이 된 것이 바로 팬들이 자신들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평가받을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인 레고 아이디어스(LEGO Ideas)다.


레고 아이디어스는 자발적으로 공유된 창작물들에 대해서 레고의 공식 제품으로 출시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원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렇게 후원한 이용자 수가 1만명이 넘으면, 레고에서 공식적으로 해당 창작물을 검토하여 그 중 일부를 실제 제품으로 출시하고 그 수익을 창작자와 나누는 것이다.

 

레고에서 공식 출시를 결정한
레고에서 공식 출시를 결정한 'NASA의 여성'들과 그 창작자 마이아 와인스톡

이런 과정을 통해 연 3~5개 정도의 제품이 실제 출시되어 왔는데, 그 중에는 영국 드라마 ‘닥터 후’,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 등 대중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2월 말 레고는 마이아 와인스톡이라는 미국의 여성 과학 저술가이자 레고 창작가가 만든 ‘NASA의 여성들’(Women of NASA)이라는 독특한 창작물을 출시하기로 결정해 큰 이목을 끌었다.

 

‘NASA의 여성들’은 과거 나사에서 일했던 여성들 중 공적이 큰 5명의 여성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폴로 프로젝트의 온보드 비행 소프트웨어를 만든 마가렛 해밀턴,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자 물리학자인 샐리 라이드, 허블 망원경의 어머니로 불리는 낸시 그레이스 로만,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인이자 물리학자인 메이 제미슨이 그 중 4명이다.

 

NASA에서 각종 차별을 겪으며 일했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 - 20세기 폭스 제공
NASA에서 각종 차별을 겪으며 일했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 - 20세기 폭스 제공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학자로서 그 유명한 아폴로 11호를 포함하여 머큐리와 아폴로 프로그램의 궤도를 계산했으나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그러나 분명 숨은 주역이었던 캐서린 존슨이 포함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것은 얼마 전 국내에도 개봉되어 호평을 받은 ’숨은 주역’이라는 뜻의 제목의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타라지 헨슨이 연기한 주인공이 바로 그녀라는 사실이다.

 

NASA에서 일할 당시 실재 캐서린 존슨의 모습
NASA에서 일할 당시 실재 캐서린 존슨의 모습 - NASA 제공

1960년대 당시의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견디며 미국의 우주 개척에 지대한 기여를 한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보그한 그리고 매리 잭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개봉에 연이어, 레고가 ‘NASA의 여성들’을 출시하기로 결정하자 NASA는 두 가지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많은 뉴스 미디어들이 앞다투어 다루었음은 물론이다.

 

레고의
레고의 'NASA의 여성들' 출시 결정을 알린 NASA의 공식 트위터 계정 중 하나인 Hubble

잘 생각해보면 레고가 극히 비상업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품을 매우 시의 적절하게 정식 제품으로 출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 레고가 보여주는 놀라운 성공의 원인을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뼈아픈 실패를 기반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거기에서 끊임 없는 파격을 통한 작은 성공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레고의 사례가 전하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그것이다.

 

 

※ 참고
레고 아이디어스 ‘NASA의 여성들’ 프로젝트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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