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나이가 들수록 잠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

2017년 04월 11일 17:00

산업혁명 이전의 잠에 대한 현대의 개념에는, 우리 선조들이 가난한 삶 속에서 잠만은 평온하게 잤으리라는 안타까운 믿음이 깔려 있다.
- 로저 에커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얼마 전 동네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제목이 눈길을 끄는 책을 발견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사학자 로저 에커치 교수가 2005년 펴낸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지난해 번역서가 나왔다. 에커치 교수는 이 책에서 산업혁명 이전 서구사회의 밤을 재현하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이 남긴 편지, 일기, 책, 신문, 법정기록 등 일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왕조 위주의 역사책에는 없는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책의 4부 ‘사적인 세계’는 잠을 다루고 있는데 지금까지 옛날 사람들의 수면에 대해 막연히 품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고 전기가 깔리면서 사람들이 밤을 빼앗기고 따라서 수면부족에 시달리게 됐다는 기존의 도식은 학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시나리오였다.

 

네덜란드의 화가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의 1621년 작품 ‘벼룩 사냥’. 당시 사람들은 벼룩과 빈대 같은 기생충으로 숙면을 방해받는 경우가 잦았다.
네덜란드의 화가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의 1621년 작품 ‘벼룩 사냥’. 당시 사람들은 벼룩과 빈대 같은 기생충으로 숙면을 방해받는 경우가 잦았다.

책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사람들 대다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숙면에 방해를 받았고 그 결과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먼저 동물로 이, 벼룩, 빈대, 모기 등 밤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벌레들 때문에 잠자기 전 이들을 잡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쥐까지 득실거렸다. 집의 방음도 형편없어서 도시에서는 밤새 이런저런 소음이 끊이지 않았고 시골에서는 가축들이 울어대며 정적을 깼다.


날씨도 문제여서 여름의 더위와 특히 겨울의 추위가 잠을 방해했다. 제대로 된 단열재가 없고 난방도 부실했던 당시는 겨울밤에 잠을 자는 게 고역이었다. 18세기 영국의 한 사람은 “발과 다리가 시려서 몇 시간이나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옷을 껴입고 자도 소용없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의 숙면환경은 상당히 쾌적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여름 몇 주 동안 열대야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풍기는 있지 않은가. 겨울밤 추위로 발이 시려 잠들지 못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벼룩과 빈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인들 대다수가 수면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십대 청소년들은 구조적으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상황이고 이삼십 대 청장년들은 이런저런 일과 놀이로 너무 바빠 역시 만성적인 잠 부족 상태에 있고 지나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중년에 접어들어 이제 그다지 바쁠 것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수면의 질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모든 여건이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맞춰졌음에도 이번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잠을 푹 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오히려 하루하루 밤을 보내는 게 고역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마흔을 넘기면서 잠을 자는데 문제가 생기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수면시간이 줄어들 뿐 아니라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수면의 구조를 단계에 따라 보여주는 그래프로 젊은이(위)와 노인(아래)에서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을 참조하라. - 뉴런 제공
나이가 들수록 수면시간이 줄어들 뿐 아니라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수면의 구조를 단계에 따라 보여주는 그래프로 젊은이(위)와 노인(아래)에서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을 참조하라. - 뉴런 제공

잠의 양보다 질이 더 문제


신경과학 분야의 학술지 ‘뉴런’ 4월 5일자에는 ‘수면과 인간 노화’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이 실렸다. 나이가 들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내년에 오십이 되는 필자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면과 노화의 관계를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지는 거 아냐?’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잠은 안구의 움직임 여부에 따라 렘(REM)수면과 비렘(NRAM)수면으로 나뉜다. 비렘수면은 잠의 깊이에 따라 네 단계로 세분되는데 뇌파을 측정해 분류할 수 있다. 일단 잠이 들면 비렘수면 1단계로 들어가 잠이 깊어지면서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는 3단계와 4단계에 이르고 다시 잠이 얕아지다 렘수면에 돌입한다(주로 이때 꿈을 꾼다). 이 사이클을 몇 번 돌다보면 아침이 온다.


그런데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의 시간에 따른 수면단계 그래프를 보면 큰 차이가 난다. 젊은이는 잠드는데 시간이 얼마 안 걸리고 수면 전반기에 가장 깊은 잠인 4단계 비렘수면에 몇 차례 머무르는 반면 노인은 잠들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4단계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또 잠을 자다 깨는 일도 젊은이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랬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두 번 잠깐 깨는 반면 나이든 사람은 수시로 깨고 지속시간도 꽤 돼 이를 다 합치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즉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잠의 질이 나빠지는 게 본질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들수록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되는 걸까.


식욕이나 성욕 같은 원초적 욕구가 그렇듯이 수면욕도 뇌에서 원시적인(진화적으로 오래된) 영역인 뇌간과 시상하부에서 조절된다. 즉 자려고 하는 의지가 아무리 확고해도 이들 영역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잠이 들지 못한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건 뇌 속 수면회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고 최근 연구결과들은 실제 그렇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수면과 각성의 조절 메커니즘을 간단히 살펴보자. 아침이 되면 외측시상하부영역(LHA)이 활성화돼 신경전달물질인 오렉신(orexin)을 분비해 식욕을 불러일으키고 정신을 깨어나게 한다. 한편 뇌간에 있는 조직인 청반(LC)에서도 뇌가 깨어나게 하는 신호를 보낸다. 반면 시상하부에 있는 시각교차앞영역(POA)에서는 갈라닌(galan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수면의 시작과 유지를 담당한다. 역시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SCN)은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를 관장하며 외측시상하부영역을 자극해 수면시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조직에 있는 신경세포(뉴런)의 숫자가 줄어든다. 그 결과 수면에 대한 압력(수면욕)이 줄어들고 잠을 깨라는 신호도 약해진다. 즉 잘 때 제대로 못자고 깨어나서도 정신이 맑지 못하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낮잠을 자는 비율이 높아지는 이유다.


한편 나이가 들수록 뇌의 여러 곳에 분포하는 아데노신 A1 수용체의 밀도가 낮아지는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각종 생화학반응의 대사산물인 아데노신(adenosine)은 뇌에서 신경조절물질로 작용해 농도가 올라가면 뉴런을 둔하게 만들어 잠을 유도한다. 그런데 뉴런 표면의 수용체 밀도가 낮아지면 아데노신의 신호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피곤해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이 수용체에 달라붙어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하므로 안 그래도 수용체가 부족한 노인은 카페인 음료를 자제하는 게 좋다.

 

뇌에서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회로는 시상하부와 뇌간으로 이뤄져 있다. 시상하부의 시각교차앞영역(POA)에서는 수면의 시작과 유지를 담당하고(파란색) 외측시상하부영역(LHA)과 뇌간의 청반(LC)은 뇌가 깨어나게 하는 신호를 보낸다(빨간색).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SCN)은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를 관장하며 수면시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보라색). 나이가 들수록 이 신호들의 세기가 약해져 잠이 얕아지고 깨어있을 때는 머리가 맑지 않다. - 뉴런 제공
뇌에서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회로는 시상하부와 뇌간으로 이뤄져 있다. 시상하부의 시각교차앞영역(POA)에서는 수면의 시작과 유지를 담당하고(파란색) 외측시상하부영역(LHA)과 뇌간의 청반(LC)은 뇌가 깨어나게 하는 신호를 보낸다(빨간색).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SCN)은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를 관장하며 수면시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보라색). 나이가 들수록 이 신호들의 세기가 약해져 잠이 얕아지고 깨어있을 때는 머리가 맑지 않다. - 뉴런 제공

수면의 질 저하 정도 남녀 차 뚜렷


흥미롭게도 나이가 듦에 따라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은 남녀에서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즉 남성의 경우는 가파르게 진행되는 반면 여성은 완만하다. 수면회로를 봐도 젊었을 때는 남성 쪽이 오히려 수면 압력도 크고 깨라는 신호도 더 강한 반면 나이가 들면 역전이 된다. 이처럼 수면의 질 변화가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건 성호르몬이 관련됨을 시사한다. 실제 연구결과 남성의 경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저하가 잠의 질 저하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40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수면의 질 저하가 시작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수면의 질이 떨어진 결과가 자고 나서도 피로가 덜 풀리는 정도라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최근 연구결과 수면이 건강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즉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면역계와 내분비계, 심혈관계의 기능에 악영향을 줄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가 노인성치매의 전조증상 가운데 하나인 이유다. 어쩌면 남성의 평균수명이 여성보다 수년 짧은 것도 중년 이후 수면의 질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망스럽게도 리뷰논문은 나이 듦에 따라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치중할 뿐 이에 대한 해결책(또는 해결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짤막하게만 언급하고 있다. 즉 비렘수면의 3단계와 4단계인 깊은 잠의 특징은 서파(진동이 느린 뇌파)의 비율이 높은 것인데 뇌에 경두개자극(tDCS)을 줘 서파의 비율을 높일 경우 숙면의 효과를 낸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수준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기초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나이든 사람의 잠의 질을 높여주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해본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에서는 ‘첫잠’과 ‘두 번째 잠’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즉 옛날 사람들은 잠을 자다 중간에 깨서 상당 시간 활동을 하다 다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아 이런 용어까지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대체로 잠이 일찍 들었기 때문에 자정 무렵이나 새벽에 깨는 일이 관행이 된 것 같다. 이 기간을 ‘첫 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전 두세시 쯤 깬 뒤 잠이 안 와 한참을 책을 읽다 다시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은 필자는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큰 위안이 됐다. 아래는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윤리학자인 프랜시스 퀄스가 남긴 말이다.


“첫잠이 끝나면 휴식에서 깨어 일어나라. 그때 당신의 몸이 가장 상태가 좋을 것이다. 그때 당신의 영혼에 장애물이 가장 작을 것이다. 그때 당신의 귀를 괴롭힐 소음도 하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당신의 눈을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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