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근친혼’ 자손이 알려준 인간 유전자의 비밀

2017년 04월 13일 07:00

근친혼 역사의 대명사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자손들은 대대손손 ‘주걱턱’을 물려받았다. - 위키미디어 제공
근친혼의 대명사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자손들은 대대손손 ‘주걱턱’을 물려받았다.
- 위키미디어 제공

‘근친상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얼굴부터 붉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과거 왕족사회에선 신성하고 고귀한 왕가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근친혼을 선택했다.

 

‘휴먼 녹아웃 프로젝트(Human Knockout Project)’ 국제공동연구진이 파키스탄 내 근친혼 자손에 대한 대규모 유전자 조사 시행 결과를 학술지 ‘네이처’ 13일자에 발표했다. 이 연구엔 원홍희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원 교수도 참여했다.

 

이들이 근친혼 자손에 주목한 이유는 사람이 가진 2만여 개 유전자 각각의 기능을 모두 파헤치기 위해서다.

 

● 유전자 기능 연구, 쥐에서 사람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파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자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기능을 알고자하는 유전자를 제거(녹아웃)한 뒤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 방법을 쓸 수 없어 이제껏 유전자 연구는 초파리나 쥐와 같은 동물실험 결과로 미뤄 유추할 뿐이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1쌍의 유전자를 물려받기 때문에 같은 유전자를 2개씩 갖고 있다. 이렇다 보니 유전자 중 하나에 돌연변이가 생겨도 다른 유전자가 보완해 기능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유사한 유전정보를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은 물려받은 2개의 유전자가 모두 돌연변이를 가졌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1쌍의 유전자가 모두 망가진 경우를 ‘동형접합 녹아웃(homozygous knockout)’이라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생물학적 기능을 평가하면 크리스퍼와 같은 유전자편집 과정 없이도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파키스탄인 1만503명의 유전자 조사를 실시했다. 파키스탄은 지금도 ‘3촌 이내 근친혼’만 금지하는 정책을 가진 나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사 대상자 중 40%는 근친혼으로 태어난 자손이다.

 

원 교수 중심으로 진행된 대규모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연구진은 1317개의 동형접합 녹아웃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는 분석한 전체 유전자 수의 7%에 해당한다. 파키스탄과인과 결혼한 영국인 3222명 대상 연구에서는 781개의 녹아웃 유전자를 발견했다.

 

원 교수는 “동물과 사람의 유전자 기능은 완전히 일치하진 않기 때문에 동물을 이용한 통상적 유전자 연구는 한계가 있다”며 “근친혼 비율이 높은 인구집단이 가지고 태어난 돌연변이를 분석해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직접적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인간실험 통해 6개 유전자 기능 확인 성공

 

통상적 유전자 기능 연구(a)는 약 2만 여개 사람의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같은 유전자교정 기술을 이용해 제거한 뒤 기능변화를 살피는 식으로 진행됐다. ‘휴먼 녹아웃 프로젝트’ 연구진은 이와 달리 돌연변이를 가진 인구를 찾아 기능을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b). - 네이처 제공
통상적 유전자 기능 연구(a)는 약 2만 여개 사람의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같은 유전자교정 기술을 이용해 제거한 뒤 기능변화를 살피는 식으로 진행됐다. ‘휴먼 녹아웃 프로젝트’ 연구진은 이와 달리 돌연변이를 가진 인구를 찾아 기능을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b). - 네이처 제공

실제로 연구진은 이를 통해 6개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우선 ‘APOC3’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체내 중성지방 농도를 낮추고,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POC3 유전자 한 쌍이 모두 망가진 돌연변이는 분석 대상 중 4명에만 나타날 정도로 희귀하다. 연구진이 2014년 진행한 이전 연구에서는 20만 명 중 APOC3 돌연변이가 단 한명도 발견되지 않기도 했다.

 

이들은 정상인에 비해 중성지방 농도가 89% 낮았다. 원 교수는 “이 희귀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지방이 함유된 음식을 먹어도 혈액 속 중성지방 농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며 “APOC3의 기능을 억제하는 표적 약물을 만들면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낮추는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혈압 및 심장질환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진 ‘포스포리파제(LP-PLA2)’ 단백질이 실제로는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2013년 영국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포스파리파제를 표적한 약물 ’다라플라딥‘을 개발해 심혈관계 질환 치료 약물을 만들려 했지만, 임상시험에서 실패한 적 있다. 실제로 유전자 분석 결과 포스포리파제 단백질을 만드는 ‘PLA2G7’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활성이 50~100% 저해돼도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이 줄어들진 않았다.

 

원 교수는 “APOC3와 같이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의 특정 질병 위험도가 낮은 경우, 해당 유전자는 약물 표적의 대상으로 가치가 있다”며 “반면 포스포리파제 사례처럼 기능을 파악해 임상 효과가 좋지 못할 것을 예측, 막대한 임상 시험 비용 소비를 방지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TP2F1’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혈액 속 ‘인터류킨-8’의 농도가 정상인보다 4배 가량 높았다. 인터류킨-8은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A3GALT2’나 ‘NRG4’ 유전자 돌연변이는 혈중 인슐린과 C펩타이드의 농도를 낮추고, ‘SLC9A3R1’은 칼슘과 인산염을 중개해 세포 간 신호 전달을 매개하는 기능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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