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일란성쌍둥이는 얼굴도 똑같이 생겼을까?

2017년 04월 25일 10:00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 깜짝 놀랐다. 한 배우의 얼굴이 옛날 직장동료와 꽤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찬찬히 비교하면 여기저기 차이가 보이겠지만 눈매나 전체적인 인상, 표정, 심지어 말투까지 앞에 인용한 프루스트의 표현을 쓰면 ‘같은 유형’이었다.


앞의 인용구는 영국에 사는 스위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서 뤼시엥 도데가 친구 프루스트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한 부분에 나온다. 프루스트는 유화 속에 그려진 인물들을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날도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1480년대 작품 ‘노인과 소년’을 보고 파리 사교계의 명사인 마르키 드 로와 꼭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어디서 구했는지 그림과 비슷한 각도에서 찍힌 마르키의 사진도 실었는데 두 사람이 분명히 비슷하게 보였을 것이라며 “그들은 나라와 수세기의 시간에 의해 극적으로 갈라진, 오래 전에 잃어버린 형제였다”고 쓰고 있다.

 

일란성쌍둥이인 류효영(왼쪽) 화영 자매. 최근 두 드라마에서 각자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 동아일보 제공
일란성쌍둥이인 류효영(왼쪽) 화영 자매. 최근 두 드라마에서 각자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 동아일보 제공

쌍둥이도 얼굴 측정해보면 차이 작지 않아


십여 년 전 이 책을 읽을 때 이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필자는 누군가와 닮은 사람을 볼 마다 이 구절이 생각났는데 이날도 그랬던 것이다. 아무튼 그 뒤 종종 이 드라마를 보곤 하는데 어느 날 문득 ‘도대체 이 배우가 누구지?’(주인공임에도 이 드라마에서 처음 본 배우라 이름을 몰랐다)라는 궁금증이 생겨 드라마제목으로 검색을 해봤다. 류효영이라는, 발음이 쉽지 않은 이름의 탤런트로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관검색어로 ‘류효영 류화영’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자매인가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일란성쌍둥이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주연급 연기자 가운데 일란성쌍둥이인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흥미를 느낀 필자는 이 검색어를 클릭해 나온 이미지들을 봤는데 개중에는 두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운 사진들도 있었다. 여기 소개한 사진에서는 두 사람이 별로 안 닮게 나왔다.


한편 쌍둥이 동생(류화영)도 최근 한 주말드라마에 나온다고 해서 얼마 전 유심히 봤다. 아무래도 사진은 일면적이기 때문에 일란성쌍둥이가 얼마나 닮았는가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극중 캐릭터가 워낙 달라 그런지 몰라도 무척 닮았지만 동일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유전자가 같다고 해서 생김새도 100% 똑같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 같은 다른 신체 특성도 그렇지만 얼굴 역시 유전과 환경의 합작품이다. 류 자매의 경우도 언니는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고 동생은 없는데 바로 환경(우연)의 영향이다.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일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얼굴의 특징을 측정해 유전의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을 해왔다. 그 결과 당연히 유전의 영향이 있었지만 의외로 실제 얼굴에서 느껴지는 유사함에 비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얼굴 부위에 따라 유전의 영향력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조사한 사람 숫자가 너무 적거나 실제 얼굴이 아닌 사진(2차원)을 갖고 측정을 하거나 사람이 일일이 재면서 오차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 연구마다 결과가 들쑥날쑥했다. 

 

곡률을 분석해 산출한 유전도를 보여주는 얼굴의 3D 이미지다. 파란색이 유전도가 낮고 빨간색이 높다. 코끝과 입술 위쪽과 아래쪽, 눈 안쪽, 코입술주름(팔자주름) 부근이 유전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곡률을 분석해 산출한 유전도를 보여주는 얼굴의 3D 이미지다. 파란색이 유전도가 낮고 빨간색이 높다. 코끝과 입술 위쪽과 아래쪽, 눈 안쪽, 코입술주름(팔자주름) 부근이 유전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얼굴 정체성 부여하는 영역은 유전 영향 커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4월 19일자에는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3D 스캔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얼굴 곡률의 수치를 분석해 얼굴 부위에 따른 유전의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결과부터 말하면 앞서 연구들처럼 얼굴 부위에 따라 유전의 영향이 달랐는데 코와 인중, 윗입술, 턱, 광대뼈가 특히 유전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런던대 연구자들은 일란성쌍둥이 197쌍, 이란성쌍둥이 279쌍 도합 952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대규모 분석을 진행했다. 일란성쌍둥이는 유전자가 100% 같고 이란성쌍둥이는 평균 50%가 같기 때문에 이들 쌍둥이 사이의 수치 차이를 비교분석하면 유전의 영향력을 산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란성이나 이란성에서 수치 차이가 비슷한 부위는 유전의 영향력이 작은 것이고 일란성에서 수치 차이가 훨씬 작다면 유전의 영향력이 큰 것이다. 연구자들은 유전의 영향력을 유전성(heritability)으로 지수화했는데 0(영향력 없음)에서 1(100% 기여) 사이의 값이다.


유전성의 정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한 얼굴 이미지를 보면 유전성이 가장 큰 부위(붉은색)는 코끝의 모양, 입술 위와 아래의 면적, 광대뼈, 눈 안쪽으로 유전성이 0.7 내외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처럼 유전성이 큰 부위가 얼굴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논문의 저자인 팀 스펙터 교수는 “일란성쌍둥이도 얼굴 특징에 변이가 꽤 클 수 있지만 핵심영역은 유전으로 조절되기 때문에 ‘똑같이 생겼다’고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결과가 얼굴의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얼굴을 20가지 거리로 측정한 뒤 게놈의 변이와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5가지 거리에서 염색체 7곳의 변이가 연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왼쪽부터 양안 간격, 위 얼굴 깊이, 콧방울에서 코끝까지 거리, 코 넓이, 두개골 넓이다. 각각에 연관된 염색체 상의 위치와 유전자 후보가 표시돼 있다. - 플로스 유전학 제공
얼굴을 20가지 거리로 측정한 뒤 게놈의 변이와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5가지 거리에서 염색체 7곳의 변이가 연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왼쪽부터 양안 간격, 위 얼굴 깊이, 콧방울에서 코끝까지 거리, 코 넓이, 두개골 넓이다. 각각에 연관된 염색체 상의 위치와 유전자 후보가 표시돼 있다. - 플로스 유전학 제공

DNA 기반 몽타주 나오나


사실 ‘얼굴 유전자’를 찾았다는 논문이 이미 몇 편 발표됐다. 지난해 학술지 ‘플로스 유전학’에 실린, 3000여 명의 얼굴 3D 데이터와 이들의 단일염기다형성(SNP) 데이터를 분석해 얼굴의 특징과 관련된 자리를 규명한 논문이 대표적인 예다. 연구자들은 얼굴에서 20가지 길이를 측정해 SNP와의 관련성을 조사했는데 5가지에서 관련된 자리를 찾았다.


먼저 두개골 폭과 관련된 자리가 두 곳(14번 염색체와 20번 염색체)이고 양안 간격(두 눈 사이 거리)과 관련된 자리가 두 곳(1번 염색체와 X염색체)이었다. 코 넓이와 관련된 자리가 한 곳(20번 염색체), 콧방울에서 코끝까지 거리와 관련된 자리가 한 곳(14번 염색체), 위 얼굴 깊이(코뿌리(이마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에서 가장 들어간 부분)에서 귀까지 거리)와 관련된 자리가 한 곳(11번 염색체)이었다. 이들 자리 부근에는 형태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여럿 분포했고 돌연변이가 생겼을 때 안면기형이 되는 유전자들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양안 간격이나 코 관련 두 가지 특성은 곡률을 분석해 찾은 얼굴에서 유전성이 큰 부분과 겹친다. 아무튼 유전성이 큰 부위에 작용하는 유전자들의 실체를 규명한다면 ‘얼굴 유전자’의 실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 분야 연구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DNA 기반 몽타주’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즉 범인이 남긴 DNA에서 게놈을 해독해 얼굴 형성 유전자들의 유형을 추출해 이를 기반으로 몽타주를 그린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얼마나 예측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얼굴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부분이 유전성도 크다는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허황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혈연관계가 없음에도 얼굴이 꽤 닮은 경우는 아마도 얼굴의 핵심영역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가운데 같은 형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기이식을 할 때 생판 남이 부모자식과 형제자매보다 면역적합성이 높은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얼굴 유전자들의 조합에서도 우연한 일치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프루스트가 15세기 그림에서 본 인물과 그가 같은 유형으로 지목한 동시대의 신사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