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달러, 마이크로소프트의 MR 헤드셋 써봤습니다

2017년 05월 12일 18:00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도 가상현실을 강조했습니다. 홀로렌즈는 아직 개발자들 위주로 준비되고 있지만 그 성과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홀로렌즈와 가상현실을 이끄는 알렉스 키프만 수석 부사장은 “홀로렌즈와 관련, 지난 1년동안 2만2000명의 개발자를 통해 7만가지 이상의 콘셉트가 개발됐다’고 밝혔습니다. 홀로렌즈가 당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기기는 아니지만 MR(Mixed Reality, 복합현실)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빌드 둘째날 키노트에서도 홀로렌즈를 이용한 데모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내용이 공개됐는데 첫번째는 ‘태양의서커스’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 서커스 공연의 무대 연출팀이 실제로 홀로렌즈를 공연에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시연이었는데 공연장에 실제 크기로 무대 구조물들을 세우고,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녹여서 미리 살펴보는 것까지 보여주었습니다.


2년 전 빌드2015에서 홀로렌즈가 처음 외부로 공개됐을 때도 주요 시나리오는 이처럼 공간에 무엇인가를 놓아보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게 지금도 가구나 건물 설계, 인테리어 등에 쓰이고 있지만 무대 연출까지 확장되는 것은 새롭지는 않더라도 놀라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아마 실제로 홀로렌즈를 끼고 무대를 봤다면 이 보다 훨씬 놀랐을 겁니다.

 

홀로렌즈를 이용해 계단에 승강기를 붙이는 시나리오입니다. 티센크루프가 직접 운영하는 것입니다. 실제 설계에 대한 결과물을 공유하고 안전에 대한 부분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 최호섭 제공
홀로렌즈를 이용해 계단에 승강기를 붙이는 시나리오입니다. 티센크루프가 직접 운영하는 것입니다. 실제 설계에 대한 결과물을 공유하고 안전에 대한 부분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 최호섭 제공

또 하나는 비디오로 공개된 것인데, 티센크루프가 가정용 승강기를 설계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려운 노인들이 사는 집에 승강기를 다는 과정에 홀로렌즈를 사용하는데, 실제 집 안에서 승강기의 위치를 정하고, 주변 가구들과 부딪치거나 위험하지 않도록 손으로 설계를 바꾸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홀로렌즈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등 재미있고 솔깃한 시나리오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단순히 기술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필요한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아직 3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대중화의 장벽이긴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홀로렌즈의 강점이 저렴하다는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장의 갈 길도, 가능성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날 키노트의 마지막에는 그동안 소문으로 돌던 MR기기가 공개됐습니다. 홀로렌즈처럼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만든 기기는 아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제시한 프레임워크와 기기 조건에 맞춰 에이서, HP를 비롯해 델, 에이수스 등이 각각의 기기를 발표했습니다. 홀로렌즈와는 조금 다르고, VR기기 기반에 카메라를 달아 주변 환경을 콘텐츠에 반영하는 이른바 MR 기기입니다. 그러니까 헤드셋을 쓰면 앞이 안 보이는 오큘러스나 플레이스테이션VR과 기본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카메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VR이나 AR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윈도우10 크리에이터즈 업데이트를 통해 이 기기에 대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발표 직후 개발자킷의 예약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제조사마다 약간 다르지만 300달러 내외로 에이서와 HP 제품이 먼저 공개됐습니다.

 

399달러로 헤드셋과 콘트롤러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HTC 바이브와 비교하면 확실히 가격적으로, 또 성능적으로도 이점이 있습니다. - 최호섭 제공
399달러로 헤드셋과 콘트롤러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HTC 바이브와 비교하면 확실히 가격적으로, 또 성능적으로도 이점이 있습니다. - 최호섭 제공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와 함께 MR 콘트롤러를 발표했습니다. MR기기에 달린 카메라는 보통 손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는 있지만 조금 더 정확하고, 다양한 제스처를 읽어들이려면 아직까지는 콘트롤러가 필요합니다. 이 콘트롤러에는 움직임을 읽을 수 있도록 센서와 카메라에서 읽을 수 있는 마커가 붙어 있고, 아날로그 조작 버튼과 터치패드, 그리고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클릭 버튼도 붙어 있습니다. HTC의 바이브 콘트롤러나 인텔의 프로젝트 얼로이 콘트롤러와 비슷한데 이런 콘트롤러는 다른 구조를 생각하기 쉽진 않긴 합니다. MR 기기와 세트로 399달러 정도에 팔린다니 콘트롤러 값은 100달러 내외로 짚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키노트가 끝난 뒤에 전시 부스에서 에이서의 ‘MR 헤드셋’을 체험해봤습니다. 여러 사람이 쓰기 때문에 기기를 직접 쓰지 않고 부직포로 눈 부분을 뚫어놓은 마스크를 눈에 쓰고 헤드셋을 씁니다. 헤드셋은 생각보다 가볍습니다. 무선 헤드셋은 아니고 기기에서 케이블 하나를 뽑아내고 PC에 화면을 전송하는 HDMI와 데이터와 전력을 공급하는 USB3.0 포트에 연결합니다.


헤드셋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도 헤드셋을 쓰는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에이서의 제품이 저렴해서 그런지, 헤드셋을 조이는 밴드는 얇은 플라스틱으로 조금 싼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썼을 때 느낌이 불편하지 않았고, 무게 중심이 쏠린다는 느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거부감 없이 ‘편안하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잠깐 헤드셋을 벗어야 할 때도 앞부분만 위로 꺾어 올리면 앞을 볼 수 있습니다.

 

에이서의 헤드셋은 꽤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특히 헤드셋 앞 부분을 위로 꺾어 올리는 게 편합니다. - 최호섭 제공
에이서의 헤드셋은 꽤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특히 헤드셋 앞 부분을 위로 꺾어 올리는 게 편합니다. - 최호섭 제공

마이크로소프트의 MR 콘트롤러는 아직 없었고, 대신 엑스박스 콘트롤러를 쥐어주더군요. 곧 헤드셋을 쓰니 데모가 시작됩니다. 데모의 내용은 날씨와 자연 발전을 주제로 한 시뮬레이션입니다. 헤드셋을 쓰면 하늘에서 워싱턴주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3차원 지도는 아주 정밀합니다. 마치 신이 된 느낌입니다. 특정 지역을 바라보고 엑스박스 콘트롤러의 버튼을 누르니 지역 곳곳에 설치된 풍력, 또 태양광 발전소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각각의 전력 발전 정보를 보여줍니다.


모드를 바꾸니 현재 날씨와 해당 지역의 바람과 햇볓의 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데이터는 현재 수집된 것과, 연 평균 데이터를 분석해서 함께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하는 곳에 직접 발전소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에이서의 MR헤드셋이 주목받은 이유는 사실 가격에 있습니다. 오큘러스나 HTC 바이브보다 저렴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 화질은 상당했습니다. 해상도는 양쪽 눈이 각각 1440x1440 픽셀로 보통 1080x1080 픽셀을 쓰는 기기들보다 선명합니다. 디스플레이도 펜타일 방식이 아니어서 VR 기기의 가장 큰 약점이던 해상도 문제가 상당히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반응 속도도 좋았고, 고개를 움직였을 때 잔상이나 이질감도 없습니다.

 

파란색 커버 아래 양쪽으로 카메라가 붙어 있습니다. 이걸로 증강현실 효과를 내거나 주변 사물을 인지해 콘텐츠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 최호섭 제공
파란색 커버 아래 양쪽으로 카메라가 붙어 있습니다. 이걸로 증강현실 효과를 내거나 주변 사물을 인지해 콘텐츠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 최호섭 제공

제가 체험했던 콘텐츠가 직접 외부 환경이 반영되는 MR은 아니었지만 일단 VR 헤드셋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스토어에서 에이서와 HP 제품만 구입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개된 제품들 중에는 에이서보다 HP의 제품이 디자인적으로 나아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두 제품의 하드웨어 조건은 완전히 똑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해상도와 시야각, 그리고 기본적인 구조와 프레임워크는 표준화한 듯 합니다. 다만 케이블에 대한 부분은 가격과 성능, 그리고 편리함의 복합적인 셈법이 따르는데, 아직은 선을 통해 다른 부분들을 잡는 쪽으로 정한 듯 합니다


빌드를 코 앞에 두고 홀로렌즈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의 MR(Mixed Reality, 복합현실)을 이끌고 있는 알렉스 키프만이 스마트폰의 시대는 끝났고, MR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스마트폰은 이미 죽었다”는 말은 사실 직접 스마트폰 시장을 쥐지 못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과격한 언급이었던 것 같긴 합니다. 그럼에도 가상현실은 또 다른 컴퓨팅의 한 환경을 열 것입니다. AR이나 VR, 혹은 MR 등으로 기술이 나뉘는 것 역시 혼란스럽다기보다 각자 그 서비스에 맞는 기술로 발전하고 있고, 그 결과물들도 차분히 나오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에 렌즈로 확대하는 구조는 여느 VR 기기와 비슷합니다. 해상도가 높아서 화질도 좋습니다. - 최호섭 제공
디스플레이에 렌즈로 확대하는 구조는 여느 VR 기기와 비슷합니다. 해상도가 높아서 화질도 좋습니다. - 최호섭 제공

당장 모든 게 뒤집어지고, 사람들이 스마트폰 대신 가상현실 기기를 쓰지도 않을 겁니다. PC 모니터가 MR 기기로 대체되는 것도 아닙니다. 홀로렌즈를 통해 보여준 무대 구성, 엘리베이터 설치 등 가상 현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의 충격과 만족도도 높고 꾸준합니다. 홀로렌즈를 처음 써보고 다리가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게 정확히 2년 전의 일입니다. 2년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입니다. 기술적인 문제나 가격, 표준화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헤드셋과 콘텐츠들을 보면 보급도 이제 눈 앞에 다가온 듯 합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VR 헤드셋을 사세요!”라고 말하는 건 이른 일 같지만 2년쯤 전에 섣불리 저가 헤드셋을 써보고 시장이 VR에 대해 판단을 내려버릴까 우려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의 세상이 열렸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지만 가상 현실은 이제 더 이상 가상이 아닙니다.

 

가상현실은 기술적 한계도 많이 좋아졌고, 가격적인 부담도 줄었습니다.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최호섭 제공
가상현실은 기술적 한계도 많이 좋아졌고, 가격적인 부담도 줄었습니다.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최호섭 제공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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