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주식회사’에서 인류 멸망 바이러스 제조?

2014년 08월 24일 18:00

게임

게임 '플레이그 Inc'. 앱스토어와 구글 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받아 플레이할 수 있다. - 게임 '플레이그 Inc' 캡처 제공

  라이베리아에서 의료봉사 활동중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2일 미국으로 이송된 켄트 브랜틀리 박사가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신약 ‘지맵’을 투여 받고 완치됐다고 미국 CNN이 21일 밝혔다. 여전히 서아프리카에서는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지만(8월 20일 기준 2473명 확진, 1350명 사망) 이전까지 백신은 물론 치료제가 없다고 알려진 에볼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스마트폰 게임 중에는 바이러스와 인간의 싸움을 소재로 다룬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영국 게임 제작자가 개발해 iOS와 안드로이드에 2012년 출시한 게임 ‘플레이그 Inc(질병 주식회사)’가 바로 그것이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가 돼 지구에서 전 인류를 멸종시킨다는 설정은 섬뜩하지만 그것이 이 게임의 목표다.

 

난이도 설정을 보면 손씻기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다. 의사들이 일을 하면 병원체 전파가 어려워진다. - 게임
난이도 설정을 보면 손씻기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다. 의사들이 일을 하면 병원체 전파가 어려워진다. - 게임 '플레이그 Inc' 캡처 제공

 

● 易地思之로 바이러스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게임을 시작하려면 먼저 난이도를 골라야 하는데, 이때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름 아닌 ‘손씻기’다. ‘쉬움’ 난이도에서는 게임 속 사람들이 아무도 손을 씻지 않는다. 손을 씻지 않기 때문에 일단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간다.

 

  ‘보통’ 난이도에서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손을 씻는데, 막상 게임을 해보면 전염병이 확산되는 속도가 확실히 더뎌짐을 알 수 있다. ‘어려움’ 난이도에서는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손을 씻기 때문에 전파가 더욱 어렵다. 독감이나 눈병 같은 전염병이 실제로 유행할 때 보건당국이 손씻기를 권장하는 이유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난이도를 고른 뒤 박테리아, 바이러스, 균류, 원생동물(protozoa) 등에서 인류를 종말(!)로 이끌 병원체를 선택한 뒤엔 처음 발생할 국가를 정할 수 있다. 어떤 기후를 가진 나라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병원체가 친숙해 하는 기후가 결정된다.

 

  만약 아프리카처럼 덥고 습한 국가에서 시작한 전염병이라면 러시아나 캐나다 같은 춥고 건조한 국가에서는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염자 수가 늘어날수록 ‘DNA 점수’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점수를 이용해 특정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공기전염은 병원체를 빠르게 전염시키기 위한 좋은 수단이다. - 게임
공기전염은 병원체를 빠르게 전염시키기 위한 좋은 수단이다. 공기전염 외에도 물이나 혈액을 통해, 또는 동물(조류, 가축, 설치류, 모기 등)을 통해 병원체를 널리 퍼뜨릴 수 있다. - 게임 '플레이그 Inc' 캡처 제공

● 공기전염 가장 빨라…인수공통 전염병이 되면 국경도 넘을 수 있어


  감염자 수가 늘어날수록 돌연변이나 진화를 할 수 있는 ‘DNA 점수’가 늘어나는 것은 과학적으로 봐도 꽤나 타당하다. 바이러스 학자들이 바이러스를 임의로 돌연변이 시키려고 할 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계대감염’이다. 숙주를 옮길 때마다 바이러스는 해당 종의 숙주에 더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곤 한다. 실제로 포유류 사이에서는 공기전염이 일어나지 않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H5N1을 10회에 걸친 계대감염을 통해 공기전염이 일어나도록 돌연변이 시킨 연구결과가 화제가 된 사례가 있다.


  공기전염은 감염환자 수를 빠르게 증가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 공기 중에서도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특성과 함께 건조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특성까지 얻으면 전염능력은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해진다. 감염 시 나타나는 증상으로 기침이나 재채기를 일으키도록 선택하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진다.


  동물을 매개체로 이용하는 것 또한 감염을 확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하면 게임 속 각 국가들은 국경을 폐쇄하는데, 조류는 이를 넘어 다른 곳으로 전염병을 퍼뜨릴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게임 초기 인간만을 숙주로 하던 병원체를 인수공동 전염병으로 진화시키면 돌연변이 속도가 더욱 가속화된다. 인간과 야생동물, 가축의 생활구역이 뒤섞이면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이 더 잦아지는 특징을 반영한 결과다. 2009년 전 세계로 퍼진 신종플루는 조류인플루엔자와 돼지인플루엔자가 뒤섞이면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지의 병원체 출현’에 세계 보건당국도 단순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 마치 현실에서처럼 제3세계에서만 병원체가 창궐 중일 때는 남의 집을 불구경하듯 구경만 하고 있다가 자국민들이 감염되기 시작하거나 대창궐(팬데믹)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미국, 유럽 등의 서방국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이번 서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전 세계가 막대한 자본을 투여해 치료제를 개발하기 시작하면 게임 내에서도 꽤나 단기간 내에 치료제가 개발돼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병원체는 인류를 멸종시키기는커녕 거꾸로 멸종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긴 잠복기는 전염병을 은밀하게 확산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지도 위로 보이는 붉은 영역은 감염지역이며, 붉은 경로는 비행기나 배를 통해 병원체가 전염된 경로다. - 게임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긴 잠복기는 전염병을 은밀하게 확산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지도 위로 보이는 붉은 영역은 감염지역이며, 붉은 경로는 비행기나 배를 통해 병원체가 전염된 경로다. - 게임 '플레이그 Inc' 캡처 제공

 

● 전 인류 감염 위해선 긴 잠복기가 필수


  세계보건기구(WHO)의 눈을 속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긴 잠복기다. 이 게임에서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기간을 잠복기로 볼 수 있다. 감염환자가 늘어나다보면 병원체가 무작위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침, 빈혈, 구토 등 다양한 증상이 새로 발현되는 데,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게 이 게임에선 가능하다. 증상이 아예 없거나 감기 이하로 약하다보면 보건당국이 주목하지 않는 사이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긴 잠복기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킨 뒤엔 본격적으로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차례다. 바로 각종 증상의 발현이다. 폐, 면역계, 신경계, 피부, 소화기관 등을 타깃으로 장기부전, 출혈열, 사이토카인 폭풍 등 다양하고 치명적인 증상들을 일으키면 감염환자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드는(사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부터는 WHO 또한 총력을 기울여 백신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인류의 존속을 건 WHO와 병원체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은 감염시킨 뒤 동시다발적으로 치명적인 증상들을 발현시키는 전략이 게임 목표(인류 멸망)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혼수상태, 장기부전, 폐부종 등 다양한 증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감염환자들은 빠르게 목숨을 잃게 된다. - 게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킨 뒤 동시다발적으로 치명적인 증상들을 발현시키는 전략이 게임 목표(인류 멸망)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혼수상태, 장기부전, 폐부종 등 다양한 증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감염환자들은 빠르게 목숨을 잃게 된다. - 게임 '플레이그 Inc' 캡처 제공


  실험실에서 병원체를 배양하기가 까다로워지는 유전특성을 미리 획득했다면 WHO의 연구개발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료제 연구가 어려웠던 까닭도 배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일 때 막무가내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유전정보를 뒤섞는 전략은 치료제 개발이 거의 마무리될 순간에 최후의 보루로 사용할 수 있다.

 

  플레이그 Inc는 2012년 시뮬레이션 부문 GOTY(Game Of The Year)상을 수상했으며, 100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 받은 게임이다. 인류를 멸종시키는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한번쯤은 해봄직한 흥미로운 게임이다. 바이러스 관련 기사를 몇 자 끄적여 본 기자가 보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과학적인 설정들이 많고, 각종 병원체의 특성과 감염 경로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평소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어려운 의학용어와 친숙해지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게임
기자가 만든 '세인트 바이러스(Saint Virus)가 전 인류를 멸종 위기에 몰아넣었다 - 게임 '플레이그 Inc' 캡처 제공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연재과학기자의 문화산책더보기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