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겪은 사회 독재자 등장 우려...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법은?

2015년 11월 18일 16:03

※ 편집자주
이달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IS(이슬람국가)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가 일어나 130 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문명 사회라고 하지만, 이러한 야만적인 사태가 왜 계속 일어나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저희는 어떠한 테러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앞으로  테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테러가 발생하는 이유’,  ‘대책’ 등을 정신과 전문의의 분석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GIB 제공
GIB 제공

 
테러는 희생자와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큰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이뿐 아니라,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서 테러를 경험한 사람들도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습니다.

 

● 테러 피해자, 초기에는 상황 파악도 힘들어해
 
테러 생존자란 일반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의 트라우마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을 말합니다. 테러의 직접적인 피해자와 가족을 각각 1차 피해자, 2차 피해자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이 신체적 부상이나 죽음, 경제적 손실 등을 겪기 때문에,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보입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테러 피해자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장애가 앓기도 합니다.
 
테러 피해자들은 테러 후 일주일 동안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도 힘겨워 합니다. 정신이 멍해지거나, 주변이 낯설게 느껴지는 등의 증상을 느낍니다. 이는 심한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입니다. 
 
어떤 피해자는 테러 사건을 아예 부정하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종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합니다. 
 

(아리시/이집트=신화/포커스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집트 북부 아리시의 하사나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잔해들을 조사하고 있다.  - 2015.11.05 신화/포커스뉴스 photo@focus.kr 제공
(아리시/이집트=신화/포커스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집트 북부 아리시의 하사나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잔해들을 조사하고 있다.  - 2015.11.05 신화/포커스뉴스 photo@focus.kr 제공

 

● 공포, 무기력, 죄책감에 고통 받는 테러 피해자들
 
피해자들은 이후 3개월 동안 심각한 불안과 공포반응을 보입니다. 테러 장면을 다시 떠올리거나 경험하고,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또 테러를 연상시키는 모든 자극을 회피합니다.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가까운 사람에게 사소한 문제로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아집니다.


테러로 가까운 사람을 상실한 경우에는, 삶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부정적 애도반응이 나타납니다. 식욕저하와 불면, 무기력감 등 신체적 증상도 동반됩니다. 또한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고, 술과 약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3개월 이후에도 일부 피해자는 불안과 초조, 짜증이 지속됩니다. 신체적 후유증이 심하거나 삶의 기반을 상실한 경우에는 절망감에 매몰되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도 처음처럼 큰 관심을 보여주지 않게 되고, 심지어는 피해자의 연약함을 나무라는 상황도 겪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서 점차 심리적 증상이 악화되고 만성화 됩니다. 특히 테러 1주기를 전후해 급격하게 악화되기도 합니다.
 

2015.1.21 수도서울 대테러 민관군경 통합방위훈련  - flick(대한민국 국군) 제공
2015.1.21 수도서울 대테러 민관군경 통합방위훈련  - flick(대한민국 국군) 제공

 

● 테러 겪은 사회, 집단 무력감과 불안감에 빠지기도
 
테러는 국가나 사회 전체에도 큰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테러 사건은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집단적 반응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도 전해집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외적의 침입을 받은 국가는 수백 년이 지나도 이에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 혹은 분노 등을 공유합니다. 국가적 상처는 여러 세대가 지나도 사회적인 무력감과 불안감을 가져오며 문화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대규모 테러를 경험한 사회 구성원은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를 상실하게 됩니다. 특히 한 국가의 수도와 같이 상징적인 곳에서 일어난 사회적 재앙은 ‘죽을 수 있다’는 강력한 실존적 불안감을 사회 전체에 퍼트립니다.
 

테러 겪은 사회 독재자 등장 우려...사회적 트라우마 치유하려면? - GIB 제공
테러 겪은 사회 독재자 등장 우려...사회적 트라우마 치유하려면? - GIB 제공

 

● 테러 겪은 국가에 파쇼적 독재자 많아 
 
일방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테러를 경험한 국가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종교적, 이념적 원인에 의한 테러를 입은 국가는 점점 집단주의가 강화됩니다. 적대적인 세력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격하시키거나, 악의 화신으로 매도합니다. 무자비한 복수를 시도하기도 하고, 힘이 부족할 경우 만성적인 집단적 무기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국민들은 자신이 희생자라는 손상된 정체감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됩니다.
 
국가 수준의 테러는 미시적인 가족 사회에도 심각한 손상을 줍니다. 부당한 테러에 대한 굴욕을 감내한 부모세대는, 부정적 정체성을 숨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은밀하게 후대에 전해지게 됩니다.
 
테러로 인해 전해진 부모 세대의 ‘한’은 자식 세대에는 좌절감, 죄책감, 분노 등으로 전개되면서 대를 이어 지속되기도 합니다. 부모 세대가 경험한 피해를 복수해야 하는 정신적 부채를 물려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적 정체성이 악화되면, 파쇼적인 리더가 주도권을 잡고 편집증적인 집단주의를 강화되며, 종종 테러나 침략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실제로 외적의 침입이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많은 국가들은, 이후에 파쇼적인 독재자가 주도권을 잡는 경우가 흔합니다. 외부의 적에 대한 집단적으로 강요된 반응, 그리고 부모세대에 대한 양극화된 평가 등 분열된 정체성이 고착되고는 합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회복이 일어나지 못하면, 점차 사회는 퇴화하고 자기 집단에 대한 공격성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리시/이집트=신화/포커스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잔해들을 현지 구조대원들과 국제조사단이 둘러보고 있다. - 2015.11.06 신화/포커스뉴스 photo@focus.kr 제공
(아리시/이집트=신화/포커스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잔해들을 현지 구조대원들과 국제조사단이 둘러보고 있다. - 2015.11.06 신화/포커스뉴스 photo@focus.kr 제공

 

● 테러 트라우마 치유 방법
 
고통 속에서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프랑스인을 위해서, 세계의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애도의 마음과 지지의 약속을 보내고 있습니다. 파리 연쇄 테러는 프랑스의 수도에서 일어난 대규모 테러인 만큼, 큰 주목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분쟁지역에서는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크고 작은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가 수준에서도 테러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끔찍한 테러의 악순환을 막고, 피해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작은 실천방법을 제시합니다. 
 
1. 경제적, 사회적 지지의 메시지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한 집단은 트라우마에 더 취약하다고 합니다. 테러로 인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입은 집단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원조가 필요합니다. 물론 파리 연쇄 테러를 입은 프랑스는 선진국이어서, 경제적인 사정이 아주 어렵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가적 테러를 경험한 프랑스인들에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국제구호단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세계인의 마음을 담은 지지와 배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신뢰할 수 있는 비영리기구나 비정부기구, 종교적 기구를 통해서 구호와 지원에 힘을 보태는 것은 사회적 회복을 크게 촉진할 수 있습니다.


2. 피의 악순환을 끊는 상호 이해의 노력
 
테러 피해국에 팽만한 사회적 분노로 인해, 상대국의 시민에 대한 무분별한 복수전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해야 합니다. 이는 결국 피의 악순환을 유발할 뿐입니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화해 촉진을 위한 이른바 ‘접촉가설’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개인적 접촉을 경험하면, 갈등 관계의 두 집단 간의 증오가 완화된다는 가설입니다. 특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는 서방국가와 이슬람국가 간의 지리적, 물리적 장벽을 뛰어넘는 접촉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공동의 장을 찾아서(Search for Common Ground, SFCG)’가 바로 이러한 접촉가설에 근거해서 설립된 비정부기구입니다. SFSS는 지난 30년간 27개국의 민족 간 증오를 해소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분쟁 중인 두 집단의 공통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이나 코란에서 사랑에 대한 구절을 서로에게 보여 줍니다. 혹은 가족의 단란한 저녁식사시간을 담은 사진이나, 즐거운 어린 시절 추억을 들려주는 식의 간단한 방법으로, 집단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3. 매스미디어의 건강한 노력

대중매체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언론은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테러의 참혹한 현장을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론단체 등에서 발표한 재난보도준칙 등이 있지만,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테러 상황에 대한 신속한 정보전달이 일차적인 언론의 의무이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사진이나 추측성 기사,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는 테러와 같은 사회적 재난에 의한 피해를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사회적 협력과 상호 이해, 공동의 치유를 위한 기사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관련 시리즈 기사>

[Pray for Paris] 정신과 전문의가 본 테러리즘(1),  순박한 청년이 IS 테러리스트가 되는 이유...혹시 당신도?
☞[Pray for Paris] 정신과 전문의가 본 테러리즘(3), 테러에 종지부 찍을 사람은 ‘어머니’ 뿐인가?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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